행복 향해 내달리는 '아름다운 중독자'들
  • 정재학(<포커스 마라톤> 기자) ()
  • 승인 2007.06.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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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 가족 동반 ·'철녀' 마라토너들의 '인생 역전'

 
석병환씨는 1933년생으로 올해 74세이다. 환갑도 훨씬 지난 66세에 처음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해 3시간44분이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결승점을 밟았다. 69세에는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9시간57분 만에 뛰었다. 2005년 71세에 풀코스 100회 완주를 달성하고, 74세인 올해 풀코스 2백2회째를 완주했다. 거의 매주 대회에 참가하는 그의 완주 횟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가 마라톤 대회에 나가 달리는 것은 주말에 교회에 가거나 외식을 하러 나가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하고 토요일 하루는 푹 쉰다. 그리고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대회에 참가한다. 마라톤이 열리는 곳이면 전국 방방곡곡 안 가는 곳이 없다.
가족들이 오히려 불안해할 정도이다. 특히 분가해서 살고 있는 아들·딸(2남3녀)들은 매주 일요일 저녁에 전화를 해서 아버지의 안부를 물으며 목소리로 건강 상태를 파악한다고 한다. “대회에 못 나가게 하려고 아들들이 주말마다 찾아와 나를 감금하다시피 한 적도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완주 횟수가 더 늘어났을 것이다.”
보다 못한 큰아들은 운동 그만하라는 소리를 듣게 하려고 클리닉에 석씨를 모시고 가서 진단을 받게 했다. 하지만 아들의 기대(?)와 달리, 석씨의 몸은 멀쩡했고 이상한 곳이 전혀 없었다. 의사는 “몸 상태는 30대, 40대보다 더 건강하다”라고 평가했다. 뛰는 횟수를 조금만 줄이라고 권고하는 선에서 끝났다.


풀코스 완주만 2백2회…“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달린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아침이면 집 주변에서 조깅하거나 산을 오르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정작 마라톤을 하게 된 것은 60대 후반이 거의 다 되어서이다. 등산을 하다가 산악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마라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그는 1999년 서울 마라톤대회에서 무작정 풀코스에 도전했다. 66세의 나이에 준비도 없이 무작정 신청을 하는 것을 보고 주최측에서조차 말릴 정도였다. “그땐 42.195km가 그렇게 먼 거리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첫 출전한 대회에서 3시간34분의 기록으로 완주를 했다. 그 이후 100회 마라톤 클럽에 가입해 풀코스만을 뛰어왔다.
“풀코스를 50번 뛸 때만 해도 대회를 앞두면 늘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50회가 넘고 나니까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그냥 연습하는 것처럼 뛰면 되니까.”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마라톤에 대한 그의 정열은 식을 줄 모른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연속해서 풀코스를 완주한 적도 있고,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다음주에 또 풀코스를 뛴 적도 있다. “60세 정도에만 시작했어도 서브3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기록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달리는 거지.”
그는 지금도 풀코스를 3시간50분대에 주파한다. 나이가 많아 인터넷이나 책을 잘 보지 않기 때문에 달리기 정보를 많이 접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냥 자신의 스타일대로 달린다.
하지만 요즘은 나이 때문에 주변의 이야기도 많이 듣고, 잘 하지 않던 운동 후 스트레칭이나 회복 운동 등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마라톤은 절대로 겁나는 운동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달리면 되는 것이다. 80세에 다시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다.”   

 

 
창용찬씨는 1982년 미스터 코리아 출신으로 1989년까지 보디빌딩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을 만큼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던 그가 40대 중반에 접어든 1999년, 아침에 집의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다가 정신을 잃는 일이 몇 번 일어났다.
병원을 찾았더니 혈압이 약간 높고 부정맥이 있지만 특별한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이 상태로는 정말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순환계 지구력을 강화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선택한 운동이 바로 달리기였다. 그리고 달리기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부정맥이 사라지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혈압도 경계성 고혈압이기는 하지만 1백10~1백38로 떨어졌다.


마라톤 하면서 건강 되찾고 인생도 바뀌어
마라톤을 하면서 건강을 되찾고 인생도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만나는 사람들 중 90%가 보디빌딩에 관련된 사람이었지만 마라톤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풀코스를 20회 가까이 완주했고, 보스턴 마라톤에도 참가했다. 최고 기록은 3시간30분대. 달리기를 시작하고 체중이 10kg이나 줄었지만 여전히 ‘근육질’이며 다른 러너들에 비해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편이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분당 검푸마라톤클럽에 가입했다. 보디빌딩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수이지만, 달리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풀코스에 이어 60, 75, 1백5km 울트라 마라톤을 3회 완주한 뒤에는 죽음의 레이스라고 불리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 참가를 위해 이집트로 떠났다. 6박7일 동안 사막 2백37km를 주파하는 죽음의 레이스를 무사히 끝마쳤다. 사하라에 다녀온 뒤 너무 힘들어 다시는 사막 마라톤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였지만 결심은 1년도 가지 못했다. 창씨는 다시 1년 뒤 사하라 사막 마라톤보다 더 어렵다는 2백50km짜리 고비 사막 마라톤에 도전해 완주했다.
창씨의 최종 목표는 남극 마라톤이다.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4대 극지 마라톤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사하라·고비·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에게만 참가 자격을 주기 때문에 참가를 원한다고 아무나 도전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니다. 

 

 
대전에 살고 있는 이석기씨(50) 가족은 마라톤 패밀리이다. 지난 3월 열린 동아 마라톤 대회에서 이씨와 부인 강정열(50), 큰아들 현준(27), 작은아들 종호(24) 씨 등 4명이 풀코스를 완주했다. 지난해 가을 춘천 마라톤에 이은 두 번째 동반 완주였다. 함께 출전해도 달리는 중에는 서로의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다. 아버지는 서브3 주자이고, 엄마는 4시간대를 왔다 갔다 하며 아들 둘은 이제 막 마라톤에 입문한 초보 주자들이기 때문이다.
가족 중 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가장인 이석기씨. 2003년에 마라톤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만 해도 이씨는 체중이 80kg 이상 나갔고 혈압도 높아 건강 관리 차원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연습 후 처음 하프 마라톤 대회에 나갔는데 1시간36분대 기록으로 골인했다. 주변에서 잘 뛰었다고 하기에 달리기에 소질이 좀 있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 뒤 세 번째 하프코스에서 1시간29분대를 뛰었고, 본격적인 풀코스 도전에 나섰다. 풀코스 역시 마라톤 입문 1년 만인 2005년 중앙 마라톤에서 2시간59분대로 첫 서브3를 기록했다. 이씨는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32회 완주했고, 최고 기록은 2시간57분대다.
마라톤에 재미를 붙이자 아내에게도 달리기를 권했다. 아내는 남편과 함께 마라톤 모임에 나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걷기부터 시작해서 점차 거리를 늘려나갔다. 아내도 달리기에 소질이 있었는지 처음 나간 10km 대회에서 53분대의 기록을 세웠다. 아내는 지금까지 풀코스를 6회 완주했고, 최고 기록은 4시간대이다.
온 가족이 달리기 시작한 것은 둘째아들인 종호씨가 제대하면서부터였다.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하고 있는 종호씨는 운동을 좋아해 입대 전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즐겼다. 특히 축구를 좋아했다. 입대 전에는 아버지와 함께 조기 축구회에 나가서 운동을 하곤 했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몸이 건강해지고 삶도 활기차게 바뀌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체대를 다니고 있으니 같은 과 동기들이 여러 가지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마라톤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둘째아들이 입대하기 전부터 마라톤을 권했다. 마라톤 완주를 해보아야 군대 가서 어려운 행군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풀코스 완주는 하지 못했지만 10km 대회를 한 번 뛰어보고 입대할 수 있었다.
2006년 5월 둘째아들이 제대하자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가족 동반 마라톤 완주’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큰아들도 선뜻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둘째아들이 제대한 지 두 달 후인 7월 말부터 본격 훈련에 들어갔다.
목표는 10월29일에 열리는 ‘2006 춘천 마라톤’이었다. 남은 기간은 3개월에 불과했다. 팔팔한 20대 청춘이었지만 단기간에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두 아들의 마라톤 코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동반 완주 후 가족 관계 더 좋아져
8월 말에는 처음으로 하프코스에 도전했다. 간신히 완주한 두 아들은 그 이후 주중에는 훈련, 주말에는 하프 마라톤 대회 출전으로 실전과 거리 감각을 익혔다. 3개월간의 힘든 훈련을 모두 소화하고 드디어 춘천 마라톤 출발선에 섰다.
“처음엔 달리면서도 왜 뛰어야 하는지 몰랐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고, 경련으로 뒤틀려오는 종아리의 고통을 안고 울면서 달려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춘천 마라톤에 도전하기 전까지는 마라톤의 ‘마’자도 모르는 풋내기였다.” 둘째아들 종호씨의 말이다. 출발한 지 3시간이 지나자 가족들이 하나, 둘 순서대로 결승점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버지(3시간22분03)를 시작으로 둘째아들(3시간39분39), 엄마(4시간31분53), 큰아들(4시간33분51) 순서였다. 취업 준비하느라 훈련을 많이 소화하지 못한 큰아들의 기록이 가장 떨어졌다.
마라톤 동반 완주 후 가족 관계는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취미가 같다 보니 함께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훈련도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고, 마라톤에 대해 가족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우리 가족은 특별하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가족 모두가 건강해 모든 일에 자신감이 붙은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이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위한 이벤트로, 마라톤 대회 때마다 인센티브를 내걸고 있다. 완주하면 완주 수당 5만원을 주고,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 기록 수당으로 5만원을 추가로 준다.
지난 4월 초에는 큰아들을 뺀 나머지 세 식구가 광주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다녀왔다. ‘가족 마라토너’로서 매년 봄·가을 두 번은 가족 모두 손잡고 같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취업 준비로 바쁜 큰아들도 그때만은 시간을 내서 가족 축제를 함께 즐길 생각이다. 둘째아들은 내심 아버지가 달성한 서브3를 꿈꾸고 있다.
마라톤 가족의 다음 꿈은 울트라 마라톤 도전이다. 이씨는 올해 안에 아내와 함께 울트라 마라톤 동반 완주에 성공한 후 내년에는 두 아들과 울트라 마라톤을 뛸 꿈을 꾸고 있다.  쭦

 

"심심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라는 평범한 주부의 질주가 무섭다. 풀코스 50여 회에 울트라 마라톤만 20여 차례 완주했다.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고 있다. 100km를 100번쯤 완주하고 싶다는, 평범하지 않은 이 주부의 비결은 도대체 무엇일까.
20대 중반의 두 아들을 둔 올해 52세의 주부 달림이 김순임씨.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인상적이다. 검은 생머리를 하고 수백km 거리의 울트라 마라톤을 하는 모습을 보면 20대 중반의 아들 두 명을 둔 50대 아줌마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1백62cm, 53kg. 군살 없이 쭉 뻗은 다리와 달리기로 다져진 근육질의 체격으로 20대 아가씨도 갖추기 힘든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날씬한 몸매,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달리 그녀의 달리기 기록을 보면 ‘철녀(鐵女)’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거의 매주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며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울트라 마라톤에 재미를 붙여 한 달이 멀다 하고 울트라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한라산 148km 달리기에서 여성 1위
각종 울트라 대회에서 입상을 휩쓴 그녀는 지난 3월31일부터 4월1일까지 열린 ‘2007 한라산 148km 트레일런’에서 24시간3초로 여성 1위를 차지했다. 해안을 따라 제주도를 일주하는 2백km 코스와,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달리는 100km 코스와 달리 1백48km 부문은 한라산 종주 코스로서 그때까지 여자가 한 번도 완주한 적이 없는 난코스이다. 총 20명이 완주한 이 대회에서 그녀는 여성 1위인 동시에 남녀 통틀어 3위를 차지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출발 직후부터 강풍과 비가 몰아치고 짙은 안개가 가득했다. 산 곳곳에 남아 있는 잔설들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아 돌아온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경남 통영에 살다가 2000년 서울로 이사 오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마흔다섯 살 때였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심심해서 그냥 달리기 시작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2000년 4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고 한 달 연습한 후에 겁도 없이 하프 마라톤 대회에 덜컥 신청을 해서 나갔다. 하지만 예상 밖의 선전에 김씨 스스로도 놀랐다. 첫 출전 대회에서 1시간40분대의 기록으로 완주해 여자부 5위로 입상했다.
첫 대회는 서막에 불과했다.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화려한 레이스가 펼쳐졌다. 나가는 대회마다 상품과 트로피를 휩쓸었다. 1년에 20∼30개 대회를 나가는데 이 중 서너 개 대회를 제외하면 대부분 입상권에 든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 토·일요일 연속해서 나가는 때도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울트라 대회에 나간다. 울트라 대회는 자주 열리지 않기 때문에 거의 모든 울트라 대회에 나가는 셈이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달리는 것 같다. 거리는 8∼9km 정도 되고.” 그 밖에 특별한 훈련을 하는 것은 없다. 매주 나가는 대회가 연습인 셈이다. “목표요?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100번쯤 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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