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꾸려면 목숨 걸어라
  • 정락인 편집위원 ()
  • 승인 2007.06.2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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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업체 이자율 ‘살인적’…‘사채=패가망신’ 흔한 일

'아무나, 누구나 대출’ ‘당일 대출’ ‘바로 대출’ ‘저렴한 이율’ ‘직장인·대학생 30분 송금’ ‘돈 필요하면 언제든지 쓰세요’. 서울 명동과 강남 테헤란로를 비롯해 시내 곳곳에서는 대부 업체의 광고가 넘쳐난다. 전봇대와 주차된 차량에는 ‘돈을 쓰라’는 유인물과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남대문시장 등 시장 주변에는 ‘일수’ 스티커가 많다.
생활 정보지의 1면은 대부 업체들의 광고가 장식하고 있다. 대부 업체가 늘어나면서 생활 정보지, 케이블TV, 인터넷 등에서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중파 TV에서도 연예인이 등장하는 대부 업체 광고들이 쉼 없이 나온다. 하나같이 ‘무이자’ ‘무담보’ ‘빠른 대출’을 강조하고 있다.
은행 대출은 까다롭다. 대출 과정도 복잡하고 챙길 서류도 많다. 신용 등급이 낮으면 대출은 꿈도 꾸지 못한다. 당장 돈이 필요한데 금융권의 문턱은 높다. 그래서 찾는 곳이 바로 대부 업체이다. 대부 업체에서는 은행보다 대출받기가 쉽다. 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만 갖추면 곧바로 대출이 이루어진다. 신분증만 내밀면 대출이 가능한 곳도 있다. 그러나 ‘쉽고 빠른 대출’의 유혹 속에는 ‘대부업의 두 얼굴’이 들어 있다. 
경기도 파주에 사는 김혜진씨(21). 그는 올해 초 사채를 잘못 썼다가 낭패를 당했다. 대부 업자 정 아무개씨한테 돈을 빌린 것이 문제였다. 김씨는 1백70만원을 빌렸으나 실제 통장에 입금된 돈은 100만원에 불과했다. 70만원은 수수료 명목으로 정씨가 떼어갔다. 1개월에 89만원씩 2개월 동안 1백78만원을 갚기로 했다. 실제 받은 돈은 100만원인데 수수료와 이자가 1백48만원이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김씨는 제때 돈을 갚지 못해 말로만 듣던 잔혹한 채권 추심(연체 빚을 받아내는 것)에 시달려야만 했다. 대부업자 정씨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휴대전화와 집 전화를 이용해 김씨를 괴롭혔다. ‘당장 빚을 갚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등의 협박이 이어졌다. 결국 참다못한 김씨는 소비자금융협회에 피해 구제를 요청했다.
대부업법이 시행된 뒤 연 66%(월 5.5%, 일 0.18%)의 이자율을 넘길 수 없다. 이를 초과하는 이자는 무효다. 선이자·사례금·수수료·연체 이자 등은 모두 66% 안에 포함된다. 그런데도 법정 이자율을 지키는 대부 업체는 극소수이다. 국내에 등록한 대부 업체 1만7천여 군데 중 상위 1천여 군데 정도만 법정 이자율을 지킨다는 것이다. 미등록 업체 2만3천여 개를 포함해 3만9천여 개는 법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미등록 업체의 연평균 이자율은 2백% 정도. 1천%가 넘는 살인적 이자율을 넘기는 업체들도 부지기수다. 현행법에는 이자율 제한을 어긴 대부업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이자율 1천% 넘는 곳 부지기수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미등록 업체의 문제는 심각하다. 최근 피해 사례의 절대다수가 이들 무등록 업체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등록을 해놓고 불법·편법으로 영업하는 곳도 많다. 불법 영업을 하다가 적발되면 처벌 수위가 낮아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서울 응암동에 사는 김효진씨(29)는 무등록 업체의 피해자다. 지난해 12월 무등록 대부업자 고 아무개씨로부터 10일간 100만원을 빌렸다. 그는 수수료와 출장비 명목으로 35만원을 떼이고 65만원을 받았다. 대출 상환 일자가 지나자 법정 이자율보다 55배가 많은 연체 이자가 붙어나갔다.
채권 추심에 나선 사채 업자들은 돈을 받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욕설·인신 모독·협박 등을 일삼는다. 자산 관리 회사에 채권을 넘기고 법원 압류 통고장, 강제 집행 착수 예정문 등을 보내 겁을 주는 일도 예사다.  
사채를 썼다가 패가망신한 사람은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다. 사채 빚에 쫓겨 노숙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곳곳에서 들린다. 돈을 갚지 못하는 여성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요구하고 인신 매매단에 팔아넘긴 일도 있다. 사채 피해자가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빚을 갚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은 이제 흔한 일이다.
국내에는 빚 갚을 능력이 없는 과중 채무자가 약 5백만명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숫자다. 전국민이 사채 시장에 노출되었다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 정부도 대부업을 양성화시킨 뒤 사금융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여러 방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그래서 현행 66%의 상한 금리를 더 낮출 태세이다.
이에 대해 대부 업체들은 시장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반발한다. 이재선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 사무총장은 “금리가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다. 시장 자체는 더 불법·음성화될 것이다. 금리 인하는 재고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부 상위 업체들은 대출 금리를 조금씩 내리고 있다. 업계 1위인 러시앤캐시와 2위인 산와머니도 대출 금리를 내렸거나 조만간 내릴 방침이다. 어차피 내릴 금리라면 자발적으로 낮추어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판단에서다.
금융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대부업 시장 구조로는 제도권 금융으로 인정받기 힘들다고 말한다. 대부업의 먹이사슬이 존재하는 한 ‘불법 영업’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와 불법 영업은 대부 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대부 업계는 상위 10개 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출 중개 업체를 이용하고 있다. 1개 중개 업체가 관리하는 대부 업체는 10곳 정도. 중개 업체들은 수수료(5~10%)를 챙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고 있다. 대출 스팸 메일이나 문자도 중개 업자들이 보내는 것이다. 이 사무총장은 “대출 중개 업체의 폐해가 크다. 인터넷을 통해 활동하는 제도권 금융기관의 대출 중개인들이 고객을 잡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 대부 업체에 대한 악의적 거짓 소문도 중개 업체들이 퍼뜨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부 업체의 부당 행위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원이나 경찰서 등에 신고할 수 있다. 신고할 때는 신문·전단·벽보 등의 광고 내용과 무통장 입금증·폰뱅킹 기록·영수증 등 이자 납입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와 대부계약서를 첨부해야 한다.
대부 업체 광고 내용을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광고하는 업체들은 반드시 대부업 등록을 해야 한다. 일부 무등록 업체들은 가짜 대출 번호를 표시하고 광고하는 경우가 많다.
‘숲과나무 법률사무소’ 한경수 변호사는 “대부 업자가 사무실에 사업자 등록증·대부업자 등록증·대부거래 표준약관 등을 비치하거나 활용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도 합법 업자를 고르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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