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고리 대금업 ‘천국’
  • 왕성상 편집위원 ()
  • 승인 2007.06.2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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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은 엄격한 규제·강력한 처벌로 대부 업체 철저히 관리·감독

 
불법 대부 업체들이 말썽을 빚고 있는 가운데 “서민 금융업을 제대로 관리하는 선진 외국들을 본받자”는 목소리가 높다. 주로 야당과 시민단체, 학계가 앞장서고 있다. 줄곧 금리 인하를 외쳐온 민주노동당은 일본·영국·프랑스·독일 등의 엄격한 대금업 규제 실태를 소개하며 당국의 허술한 관리를 질책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의 느슨한 대금업 정책으로 세계 사채 업자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외국계 업체 진출은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는 시각이다. 법 개정이 진행 중이기는 하나 연 66% 금리를 보장해 고수익을 노릴 수 있다는 점과 대부 업체가 금융 당국의 직접적인 감독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면 선진국들은 금융 대부 업체들을 어떻게 관리하며 서민 보호에 나서고 있을까. 대다수 선진국들은 대부업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세계 최초로 사금융을 합법화한 나라는 일본이다. 하지만 일본은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우리가 대부 업체 관리를 신고제(지방자치단체)로 하는 반면 일본·영국·프랑스 등은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 또 일본·프랑스·독일은 체계적 고금리 제한과 관리·감독을 시행 중이다. 미국에도 사금융 제도가 있지만 활발하지 않고 주정부에 따라 이자를 제한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고금리 제한을 위해 이식제한법 등 세 가지 법을 운영하고 있다. 또 지난해 2월21일 일본 금융청은 고금리 대부 업체들로 인해 서민들의 피해가 가중된다고 보고 법정 최고 금리를 100만 엔 이상 대출할 때는 연 15%로 내리는 등 법·제도 정비에 나설 계획임을 발표했다. 금액에 따라 아무리 높아도 연 20%까지다. 이 규정을 어기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되어 벌이 무겁다. 물론 업계 반발이 없지 않다.
일본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고금리 대부업 영역을 더 이상 자율에 맡길 수 없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이자 제한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것을 뜻한다. 학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유명한 등록 대부 업체가 대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불법 추심까지 하다가 회장이 구속된 적이 있다”라며 신고제 및 등록제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대부 업체 규제를 크게 강화하자 후폭풍이 한반도로 불어오고 있다. ‘풍선 효과’에 따라 일본 업체들이 한국 시장으로 본격 진출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3대 대부 업체인 ‘아이후루사’가 한국 시장에 진출할 채비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이미 산와머니·러시앤캐시 등 저금리 자금을 앞세운 일본계 회사들의 텃밭이 된 상태이다. 게다가 이들보다 자산 규모가 10배 이상 되는 아이후루사가 국내에 상륙하면 주 대출 고객인 서민들의 피해가 엄청나게 늘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이후루사가 국내 시장을 넘보는 이유는 일본 정부가 대부 업체 이자율을 20% 이하로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20%가 넘는 이자를 받으면 무효가 되고 29.2%가 넘으면 형사 처벌된다. 또 대부 회사에 20% 넘게 이자를 준 사람이 변호사를 선임하면 채권 추심이 금지되고 회수한 이자 지급액의 상당액이 변호사의 성공 보수로 돌아가 변호사들의 ‘영업 전쟁’도 뜨겁다.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조정·개인 회생 절차·개인 파산 등에 따라 채무 조정을 한다. 변호사회의 법률상담센터에서 신용카드·상공 론·지하 금융 문제, 다중 채무자 문제 등에 관한 상담과 동시에 채무 조정 전문 변호사도 소개하고 있다. 도쿄의 3개 변호사회는 관련 상담 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세계적 금융사, 한국 대부업 진출 러시
일본계 업체들과 더불어 최근에는 메릴린치·스탠더드차타드 등 서양의 세계적 금융사도 한국 대부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진출 배경은 일본계와 별 차이가 없다. 낮은 금리의 현지 자본을 끌어들여 한국에서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다. 영국에서 소비자 신용업을 하려면 공정거래청장 인가를 받아야 한다. 폭리적 신용 거래라고 인정되면 법원은 재계약 체결을 명령하게 된다. 독일은 금전 대부업 면허제를 시행하고 있다. 또 민법 및 판례에 따라 시장 평균 금리의 두 배를 넘는 이자 약정을 폭리로 규정해 무효화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면허제를 채택하고 있다. 자연히 고리 대부 업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또 시장 평균 금리의 약 1.3배를 웃도는 금리는 ‘폭리 대차 이율’로 규정하고 있다. 소비자 법전을 통해 프랑스은행이 발표하는 분기별 시장 평균 금리의 33%를 넘는 금리는 폭리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규제를 어긴 사람은 2년의 금고형 또는 30만 프랑(약 1억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미국은 ‘페이 데이 론’이라고 해서 먼저 돈을 빌려준 다음 한 달 뒤 월급날 대출금에다 이자를 붙여 봉급에서 떼어가는 일종의 사금융 제도가 있다. 그러나 이런 단기 대출조차 부작용이 많다는 비판이 많아 이자제한법 재도입을 추진 중인 주정부가 늘고 있다. 뉴욕 주가 연 16%, 캘리포니아 주가 연 10% 선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선진국들처럼 고금리에 대한 엄격한 규제, 처벌의 실효성 확보, 대부업에 대한 체계적 관리·감독 등의 조건이 충족되면 고금리 횡포는 줄게 된다”라고 분석했다.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은행 ‘대박’

미등록 대부 업체, 금융 중계상, 불법 사채 업자에 따른 폐해가 줄을 잇자 동남아 일부 국가들처럼 ‘서민 은행’을 만들자는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서민 은행은 말 그대로 바닥 생활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기층민들을 위한 금융기관으로 저금리 대출이 주 업무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담보 없는 서민에게 대출해주면 돈을 떼일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다. 과거 ‘카드 사태’ 때 예를 든다. ‘서민들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반대론자들 견해다.
그러나 외국의 예는 이런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서민 은행’의 교과서 격인 방글라데시의 그라민뱅크가 그런 예다. 이 은행은 1976년 무하마드 유너스 방글라데시 치타공 대학 교수가 빈민 구제를 목적으로 사재를 털어 사업을 시작한 이래 1983년 정식 은행으로 전환되었다. 대출금이 42억 달러 이상에 이르고 돈을 빌려간 빈민들만 3백만명을 웃돈다. 세계 58개국에 1천2백여 지점을 둔 대형 은행으로 커진 것이다. 그라민뱅크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은 대출금 회수율이다.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은행에 갚는 비율은 평균 98% 이상. 돈 떼일 위험성이 2%도 안 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은행은 물론 지구촌 정상급 은행들보다도 높은 세계 최고의 회수율이다. 그라민뱅크 관계자는 “빈민일수록 자생 기반만 만들어주면 빚을 성실히 갚는다”라며 기성 은행들 주장을 잠재웠다. 올봄 국내 TV 특집 방송에도 소개될 만큼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라민뱅크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서민 은행인 라키야트 인노네시아은행(BRI)도 눈여겨볼 서민 금융기관이다. 이 은행의 대출금 상환율 역시 인도네시아 대다수 은행들을 파산 수렁으로 몰아넣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도 98.5%에 달했다. 인도네시아 최대 우량 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한 국회의원에 의해 ‘서민 은행법’이 제출되었다는 소식은 주택 등 담보에 기대어 수익을 올리는 우리 은행들에 더없이 부끄러운 일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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