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안에 ‘셋방’ 차린 고시생 없는 고시원
  • 노진섭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7.0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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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족 30만명 이상 ‘거주’…정부, 신업종으로 인정

 
이혼남, 학생, 기러기 아빠, 직장인, 공무원, 수험생…. 요즘 고시원에는 다양한 사람이 몰리고 있다. 글자 그대로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공부에만 몰두하는 장소로 이용되던 고시원이 시대가 변하면서 점차 일반인들의 생활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1년째 생활 중인 직장인 권 아무개씨(29)는 퇴근길에 구멍가게에 들러 장조림과 김치, 계란 등을 샀다. 밥은 고시원에서 제공해주기 때문에 한 끼 반찬을 장만한 것이다. 공동 주방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그는 공동 세탁실에서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공동 샤워실에서 샤워를 마쳤다. 건조기로 말린 빨랫감을 들고 1평 남짓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지방에서 올라와 방을 구할 때까지만 임시로 생활하기 위해 고시원에 들어왔는데 저렴하고 혼자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아 계속 있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고시원 이용자들의 신분도 세월에 따라 변했다. 이혼하고 딱히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잠시 머무르는 사람에서부터 장기 출장 중인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고시원 이용자는 이제 더 이상 고시 응시생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잠잘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필요한 사람들에게 고시원은 더없이 값싼 숙박 시설이 되고 있다. 고려대 부근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손 아무개씨(45)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취업을 해서 서울에 올라온 직장인들이 방을 구할 때까지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제격이다. 여관 등 일반 숙박시설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면서 취사와 빨래도 해결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고시원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수요층의 변화에 따라 고시원도 업그레이드되었다. 과거 1평 남짓한 공간에 간이 침대와 책상만 있던 1인용 방은 크게는 10평 이상으로 커졌다. 컴퓨터와 케이블TV, 냉장고, 옷장 등이 있고 심지어 개인 샤워실이나 화장실이 딸린 방도 있다.
공동 시설도 편리해졌다. 밥은 물론 마른 반찬을 24시간 제공하는가 하면 공동 운동 시설과 DVD룸을 갖춘 곳도 있다. 합판 등으로 만들었던 벽은 방음을 위해 콘크리트 벽으로 바뀌었다. 창문이 없어 답답했던 방에는 모두 창문이 생겼다. 주차 시설은 기본이다.
일반적으로 고시원은 층을 나누어 남성과 여성이 공동으로 생활하지만 최근에는 여성 전용 고시원도 늘고 있다. 혼자 생활하는 여성 직장인이나 여학생들이 좀더 쾌적한 분위기를 원하는 데 따른 것이다.
대다수 고시원은 입실료를 월세로 받는다. 보통 월 20만~25만원 선이다. 그러나 월 70만원이 넘는 곳도 있다. 이쯤 되면 원룸 수준이다. 방이 10개도 안 되는 고시원이 있는가 하면 특정 학원의 기숙사 기능을 하기 위해 5백 개 이상 갖춘 대형 고시원도 있다. 같은 브랜드로 여러 곳에 지점을 둔 프랜차이즈 고시원도 생겼다. 명칭도 고시원에서 고시텔·월룸텔·웰빙텔·레지던스·리빙텔 등으로 다양해졌다. 
고시원이 생긴 것은 약 27년 전. 1980년 서울 강북에 있던 학원들이 4대문 밖으로 옮겨야 한다는 정부 결정에 따라 강남 지역으로 이전할 무렵 고시원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하는 지방 출신 학생들이 고시원의 주 이용자였다. 특히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해서 붙은 고시원이라는 명칭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그러나 고시원은 최근까지 유령 업종이었다. 각 업종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는 건축법 시행령에 고시원이 빠져 있어 당국의 관리·감독 울타리 밖에 있었다. 업주들은 독서실이나 학원으로 인가를 받은 뒤 불법 용도 변경을 통해 직장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숙소를 제공해왔다. 심지어 하숙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허가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건축법과 소방법 등 각종 법에 위반되어 적발되는 경우가 빈번한 배경이다.
그럼에도 고시원은 빠르게 늘어나 현재 전국적으로 4천2백여 군데에 이른다. 서울에 2천여 곳을 포함해 수도권에만 3천여 곳이 몰려 있다. 한 고시원에 평균 40개의 방이 있다. 16만명 이상이 고시원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무허가 고시원까지 포함하면 전국적으로 6천여 곳의 고시원이 영업 중이고 30만명 이상이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앞으로 고시원 이용자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는 지방 출신 학생들이 하숙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교환 학생이 늘어나면서 외국인 학생들의 숙식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항공·와인 등 전문 학원들이 늘어나면서 1~2년 장기 교육을 받는 사람들에게 고시원은 그런대로 거처 역할을 해준다.

 
미흡한 안전시설 개선은 시급한 과제


 
수요와 공급이 늘자 최근 정부는 고시원을 법 울타리 안에 들여놓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25일 고시원업을 신업종으로 공중위생관리법에 포함시킨 개정안을 마련해 5월16일부터 입법 예고에 들어갔다. 그동안 관련 법규 미비로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고시원이 합법성을 찾게 된 것이다. 복지부가 마련한 개정안에 따르면 고시원업을 ‘학생·직장인 등이 저렴한 비용으로 일정 기간 거주할 수 있는 방과 학습·생활 시설 등을 제공하는 영업’으로 정의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고시원을 운영하려면 반드시 위생관리 의무를 지켜야 하고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 배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보증보험에 가입하거나 예치금을 금융기관에 의무적으로 예치해야 한다. 복지부는 준비 기간 등을 감안해 개정법을 2년 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고시원 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한국고시원협회 황규석 회장은 “위생 관리 의무와 소방 안전 의무 등 구속이 생기겠지만 고시원이 다른 업종과 똑같은 법적 감독과 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고무적이다. 고시원은 사회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업종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시원이 신업종으로 인정받고 나름으로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행해야 할 점도 있다. 우선 자칫 충돌하기 쉬운 숙박업과의 차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복지부가 고시원업을 공중위생관리법에 포함시키기 위해 숙박업중앙회와 간담회를 했다. 이때 고시원이 1인1실 운영을 원칙으로 하며 객실에 개인용 화장실이나 샤워실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점, 남녀 혼숙을 불허한다는 점, 1일 이용이 아닌 월 단위 이용 형태를 유지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숙박 업계가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일부 고시원은 여관이나 오피스텔 수준의 규모와 내부 시설을 마련하는가 하면 혼숙할 수 있는 객실까지 갖추어놓고 있다.
다음으로 소방 안전시설을 갖춰야 한다. 고시원은 작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특징 때문에 사소한 부주의로 인한 화재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45평 이상 모든 사업장은 소방시설 완비 증명을 받아야 하는 만큼 고시원도 소방시설을 갖춰야 한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는 지난 3월 서울 시내 노래방·PC방·주점·고시원 등 다중 이용 업소의 소방 안전시설을 점검했다. 본부에 따르면 고시원의 설치율이 33.4%로 가장 낮고 단란주점 41.6%, 유흥주점 42.5%, 노래방 44.9%, 일반 음식점 56.9%, 기타 59.8% 등으로 나타났다. 고시원 10곳 중 7곳은 소방 안전시설을 갖추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시원 개별 방에 개인용 화장실과 샤워실을 갖추면 여관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고시원업 스스로 입지를 좁게 만들 우려가 있다. 고시원의 고급화도 좋지만 타 업종과의 차별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또 “최근 고시원이 노숙자들의 숙소인 양 비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대다수 고시원이 월세를 받기 때문에 노숙자들이 이용하기에는 부담이 따른다. 또 노숙자 한 명 때문에 나머지 이용객들이 떠날 수도 있는 만큼 대다수 고시원은 노숙자의 1일 이용을 불허하는 입장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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