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가 ‘인치’ 강화하다니…
  •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
  • 승인 2007.07.0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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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법과 제도 우회·무시하는 통치 행태 '닮은 꼴'

 
한국 현대 정치는 인치(人治)가 법치(法治) 못지않게 위력을 발휘한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법·제도의 운용이 달라지고 국정의 기조가 바뀐다. 법치, 즉 법의 지배가 근대국가의 근본이다. 그럼에도 유독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인치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인치’라는 것은 법과 제도에 기반한 통치가 아니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판단에 따른 통치 행위 혹은 통치 스타일이다. 영어로는 퍼스널 룰(personal rule)이다. 여기에는 어느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갖는 개인적 특성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주어진 합법적 범위 내에서의 개인적 통치 성향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인치는 엄밀히 말하면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부정적 의미를 함축한 것이다. 법치를 대체하거나 거스르는 의미에서의 인치라는 점이다. 근본 원인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며 행정 권력의 수반인 대통령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헌정 정치의 기본 틀 사이에 마찰과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인치 현상은 민주화 이후에 한국 정치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국정을 파행적으로 이끄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초법적 행위가 자리 잡고 있다. 인치가 심화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이다. 오랜 민주화운동 경력을 가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인치가 문제되었다. 이 당시 대통령의 제도적 권력은 이전보다 약화되었다. 하지만 실질적 권력은 대통령에게 쏠리는 ‘집중 현상’으로 뚜렷이 나타났다. 야당 출신 인사들이 권위주의 시대에 기용된 관료들을 불신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대통령을 중심에 두고 각종 위원회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정책의 결정이 내려졌다. 기존 제도와 법을 우회하는 인치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중심으로 1948년에 제정되었다. 통치자의 권력적 편의에 의해 여러 차례 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에 이르러서는(제9차 개정) 민주적 헌법으로 완전 복원되었다. 당시 국민의 요구인 대통령 직선제 이외에도 이전의 기본권 조항이 강화되었다.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국회 해산권이 폐지되기도 했다.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부활시켜 국회 권한을 강화했다.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신설한 것도 현행 헌법의 특징이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는 어떨까. 민주적 헌정 제도를 잘 활용하고 있을까. 절대로 아니다. 기존의 권력 분립 제도나 견제 균형 원리를 약화시키는 위임 민주주의식 통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대통령의 재량권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기존 헌정 정치의 틀과 과정을 무시하고 직접 대중을 선동하는 민중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이러한 인치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대통령의 통치가 법과 제도를 바탕으로 한 헌정 정치의 틀을 흔들거나 약화시킬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들을 다시 기소한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나 김대중 정부 때의 ‘대북 불법 송금 사태’,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잇단 선거법 무시의 위헌적 발언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인치 방관하는 국민·국회의원도 문제


 
김대중 정부는 급진적 대북 포용 정책인 ‘햇볕정책’을 헌법적 기반 없이 탈법적으로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불법 비밀 대북송금 사건이 발생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법 위반 사실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재발 방지와 사과를 요구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요구를 거부했다. 2004년 3월 초 재적 과반수(1백36명)가 넘는 야당 의원들의 탄핵안이 접수되었다. 노대통령은 국회의원 총선거와 자신의 재신임을 연계하는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 국회에서는 탄핵안을 가결했다.
그러나 그 뒤 실시된 4·15 총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선거법을 위반한 대통령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다수의 유권자들이 대통령의 탄핵에 반발해 여당에 몰표를 주다시피 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어느 때보다도 정치적 중립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노대통령은 사사건건 선거법을 위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자제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통치권자인 대통령 스스로 법을 경시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인치에 의한 통치 사례는 하나 둘이 아니다. 각종 과거사 위원회의 월권 행위도 인치에 의해서다. 실정법 위에 인치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인치에 의한 통치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법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형식적 법치주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자유민주주의를 원한다. 법치주의의 구현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를 민주화 정부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법치보다 인치를 우선한다. 헌법 체계에 의한 제도적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 체계의 미비에서가 아니라 법률 의식 부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초법적인 행위나 월권을 하는 대통령은 문제가 있다. 이를 안이하게 바라보는 국회의원이나 국민들도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법치국가의 틀을 세울 수 있을까. 인치가 아닌 법치가 될까. 이런 점에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면 이렇다. 
첫째, 대통령이 헌정 정치의 원칙과 틀을 잘 이해하며 이를 존중하고 준수해야 한다. 한국의 시민들은 민주화 이후 직선제 선거에 의해 지난 20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모범적인 선거 문화를 정착시켜왔다. 법치국가가 되려면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법을 지켜야 한다. 법의 준엄함을 존중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둘째, 대통령의 초법적 행동에 대한 견제 기능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몰려 있으면 권력 분립이 지켜지지 않는다. 대통령의 인치에 대한 헌법 기관의 강력한 견제가 요구된다. 입법부가 적절하게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고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대해서는 국정조사권을 이용해 점검해야 한다. 사법부의 최고법원 격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셋째, 대통령의 인치 행위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정치 의식과 시민 의식이 높아져야 한다. 특히 선거권을 행사할 때 이런 기준을 가지고 국민의 대표를 뽑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현실적인 법적 제도와 관행을 개정하고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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