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여, 우리를 죽이려는가”
  • 왕성상 전문기자 ()
  • 승인 2007.07.09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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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업계, 롯데그룹 시장 진출에 강력 반발..."1만5천여 군소 업체 도산할 것"

 
롯데그룹의 여행업 진출을 둘러싸고 국내 여행 업계가 시끄럽다. 중소 여행 업체들이 ‘대기업의 시장 잠식’ 가능성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사 단체들도 연일 한목소리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와 한국일반여행업협회(KATA)가 롯데그룹에 여행업 진출을 보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롯데가 이를 묵살하고 영업에 나서면서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여행 업계는 롯데의 여행업 진출이 국내 여행업 시장은 물론 항공업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업계가 문제 삼고 있는 롯데그룹 계열 여행사는 지난 7월1일 영업에 들어간 롯데JTB(주). 지난 5월25일 롯데그룹 자회사 (주)롯데닷컴이 연간 매출 약 10조원(2006년 기준 1조3천억 엔)으로 95년 역사의 일본 최대 여행사 JTB(주)와 손잡고 세운 법인체이다.
양국 회사가 50 대 50으로 출자한 롯데JTB 설립 자본금은 50억원. JTB 서포트·인터내셔널 사장을 지낸 사토류타로씨가 대표이사 사장을, 롯데닷컴 총괄이사 출신의 김진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고 있다. 임직원 수는 일본인 5명을 합쳐 59명, 송출 목표 여행객 수는 올 연말까지 2만5천명(예상 매출액 약 1백50억원)이지만 5년 내 1백20만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여행 업계의 반발은 지난 5월부터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5월22일 오전 한국관광협회중앙회와 산하 단체인 국외여행업위원회, 국내여행업위원회는 공동 기자 회견을 갖고 “롯데JTB의 영업이 시작되면 1만5천여 국내 군소 여행사들이 고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좁아지는 등 큰 피해를 입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신중목 관광협회중앙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에게 보내는 성명서를 통해 롯데그룹의 여행업 진출을 유보해 줄 것을 요청했다. KATA도 지난 5월7일 강현구 롯데닷컴 대표이사에게 여행업 진출을 멈추어주도록 공문을 보냈다. KATA는 “롯데의 행보는 대기업 횡포로 비칠 수 있고 그룹 이미지에도 부정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5월17일 오후 서울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KATA 소속 인 바운드 및 아웃 바운드 합동위원회에서도 롯데JTB의 한국 내 영업은 업계 발전을 그르칠 뿐 아니라 국민 정서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질타했다.
연이은 업계 반발에도 롯데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6월12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관광협회중앙회가 주관해 ‘롯데JTB 저지 집회’를 열었다. 100여 여행 업계 대표들은 롯데의 여행업 진출은 재벌 기업의 문어발식 진출로 부당 인력 스카우트, 가격 덤핑 등이 예상된다고 성토했다. 따라서 앞으로 관광 업계의 역기능적 시장 확보가 이루어질 경우 ‘롯데그룹 전체 불매 운동 돌입’에 들어간다고 경고했다.

 

롯데 “기존 업체가 못하는 부분 개척할 것”


이에 대해 롯데그룹은 법적으로 잘못이 없는 데다 규정대로 해서 문을 연 만큼 업계 주장은 자유 경쟁 시장 체제에서 억지 논리라고 맞받았다. 김진익 롯데JTB 부사장은 “롯데JTB 역할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중소 여행사들과 같은 영역에서 경쟁하자는 것이 아니다. 기존 업체에서 하지 못하는 부분을 개척해 여행 서비스 수준을 높이겠다는 뜻이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국내 시장 장악에 대해서도 JTB가 오래전 구상해온 일본-한국-중국을 묶는 패키지 여행 상품 개발을 통해 유럽·미주·중국 등지의 고객을 끌어들일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롯데닷컴을 통해 6년 전부터 온라인 여행사로서 입지를 다졌으나 일본 쪽에서 먼저 제휴 요청이 와서 손잡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롯데JTB는 국내 여행 업계 전체에 대한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지론이다.
그럼에도 롯데JTB를 놓고 왜 이처럼 업계 반대가 거세지는 것일까. 여행 업계가 가장 먼저 내세우는 이유는 롯데그룹의 여행업 진출이 일본계 공룡 여행사 JTB의 ‘본격 한국 상륙 및 시장 장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 해 매출이 10조원에 달하며 세계 31개국, 80개 이상의 현지 여행사를 가진 거대 외국계 기업에 대한 공포감이 짙게 깔려 있다. 또 롯데JTB 사장 또한 한국 쪽 CEO(최고 경영자)가 아닌 JTB 소속의 일본 경영인으로 사실상의 롯데JTB 경영권을 쥘 것이라는 예견도 반대하는 배경이다. 게다가 다른 그룹과 달리 롯데가 여행업에 뛰어든다는 점에서 반감이 더욱 크다. 롯데가 여행 업계 노력 덕분에 호텔롯데, 롯데월드 등 호텔과 테마파크, 면세점·백화점 분야에서 재미를 보고도 외국계 회사를 끌어들여 시장을 통째로 삼키려 한다는 시각이다.
반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관광 수입금의 일본 유출 우려이다. 롯데가 JTB의 막강한 영업망을 통해 인 바운드(외국인들의 한국 관광)를 늘리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아웃 바운드(내국인들의 해외 관광) 사업 우선’이라는 JTB 자료가 잘 말해준다. 정우식 KATA 회장은 “한국 여행 산업 현실에서 사업성을 확인하고 시장에 뛰어들었다면 그것은 100% 아웃 바운드에 욕심을 낸 것으로 보인다. 진출 5년 안에 1백20만명을 송객한다는 목표 설정 뒷면에는 인 바운드 사업 비중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정회장은 또 “롯데JTB를 통해 모아진 여행객들의 인 바운드 수입 절반은 결국 일본으로 흘러갈 것 아닌가. 국가 관광수지를 위한 인 바운드 고객 유치를 들먹이는 소리는 허구에 가깝다”라고 꼬집었다.
중소 여행 업체들은 롯데JTB가 국내 항공사들마저 위협할 것이라고 본다. 일본 항공사의 빈 좌석이 헐값에 팔리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측은 “국내 항공사들의 경쟁력을 깎아내리는 시각이다”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업계가 우려하는 대목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국내 군소 여행사들의 줄도산 가능성과 여행객들의 피해이다. 업계가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실정에서 힘센 외국 기업이 들어와 조직과 자금력으로 밀어붙이면 작은 업체들은 서서히 시들어 죽게 된다는 분석이다.
여행 업계는 이같은 거센 반발에도 롯데가 계획대로 여행 상품 판매에 나서자 대응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이고 있다. KATA는 신격호 회장과의 면담을 독촉하고 있다. 또 신문 광고에 ‘롯데JTB 반대 성명서’나 호소문 등을 싣도록 전국 회원사에 긴급 요청했다. KATA 관계자는 “거대 롯데그룹이 이제 와서 영세한 여행 업계의 경쟁자로 돌변한 것은 상도의 위배”라며 “추가 반격 방안을 마련 중이다”라고 말했다. 롯데와 여행 업계 싸움이 롯데그룹 전체 계열사로 번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롯데관광, 롯데 마크 쓰지 마”

 
롯데그룹의 집안 싸움이 뜨겁다. 일본 대형 여행사 JTB와 합작으로 국내 여행 업계에 뛰어든 롯데그룹은 지난 6월26일 ‘롯데 심벌 마크를 쓰지 말라’며 롯데관광개발(주)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롯데그룹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서비스표권 침해 금지 등 청구 소송을 통해 “롯데와 아무 관련이 없는 롯데관광이 영문 알파벳 ‘L’자 3개가 겹쳐진 롯데 마크를 사용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롯데관광을 롯데그룹 계열사로 오인할 우려가 있다”라고 밝혔다. 롯데그룹측은 “롯데 마크가 새겨진 사무소 간판을 철거하고 명함, 광고물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롯데관광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매제인 김기병 회장이 1971년 5월 세운 회사다. 롯데그룹과는 주식 지분 관계가 없지만 설립 때부터 ‘롯데관광’이라는 상호를, 1978년부터 롯데 마크를 써왔다.
롯데그룹과 롯데관광개발의 갈등은 2000년 롯데그룹이 롯데닷컴을 세워 온라인 여행업을 하면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지난 5월 롯데그룹이 롯데JTB를 출범시켜 국내 시장에 본격 뛰어들면서 틈이 더욱 벌어졌다. 롯데관광의 대북 관광 사업 추진도 그룹을 자극했다. 이런 가운데 롯데그룹이 소송을 낸 6월26일은 롯데관광이 농협과 손잡고 ‘농협롯데관광’을 출범시킨 날이라는 점에서 롯데관광측은 더 큰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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