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대학생 잡는 기업들
  • 노진섭 기자 ()
  • 승인 2007.07.0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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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떠는 여대생 마케터 채용 등 아이디어 수집·활용 적극 나서

 
기업들이 대학생들의 아이디어에 주목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경영·마케팅·영업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설문 조사나 이벤트를 통해 대학생들의 구미를 당기려는 과거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크게 진보한 모습이다.
여대생들의 수다를 제품 개발의 동기로 삼는가 하면,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가 계기가 되어 원하던 인재를 채용하기도 한다. 기업으로서는 아이디어 채용, 인재 확보 외에 기업 이미지 제고 효과까지 볼 수 있어 1석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대학생들 역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기회를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잣대로 삼기도 한다.
“타사 제품에 비해 싸면서 양이 많아 경쟁력이 있다.” “용기 디자인은 좋은데 칼로리 표시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난 7월3일 오전 서울 신촌역 부근 한 커피숍에 여대생 5명이 모여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단순한 수다가 아니다. 이들의 수다가 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지난 6개월 동안 유통 업체 GS리테일의 여대생 마케터로 활동했다. 이들의 목표는 20대 여성에게 적합한 제품을 개발해내는 것. 이들은 제품 기획부터 광고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하면서 거침없는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회사는 이들의 아이디어를 제품 제작에 고스란히 반영했다.
최근 여대생들이 녹차와 보리차 등 차를 물보다 더 많이 마신다는 데 착안해 차 음료를 만들기로 한 것도 이들의 결정이었다. 재스민이나 커피 맛 나는 차가 시중에 없다는 점을 들어 틈새 시장도 찾아냈다. 가지고 다니면서 조금씩 마시기 좋아하는 여대생들의 습성에 맞춰 병 모양도 손에 잡기 편한 호리병처럼 디자인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이들의 수다에서 나왔다. 제품명을 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광고에도 이들이 직접 참여했다.
이들이 만든 차 음료 ‘차 마시는 뜰’은 현재 전국 2천6백여 개 GS25 편의점에 깔려 있다. 제품 제작부터 광고까지 참여했던 여대생 이승연씨(23·숙명여대)는 “20대 여성의 입맛에 맞는 차 음료를 개발하기 위해 여대생들이 설문 조사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따라서 다른 제품보다 20대 여성의 입맛과 감성에 맞춘 제품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여대생들의 수다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 회사는 20대 여직원을 담당자로 정하기도 했다. 나이 차이가 나는 직원이나 남성 직원보다 비슷한 또래의 여직원과 격식 없는 의견과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회사 편의점사업부 마케팅팀 장아름씨는 “회사는 여대생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감각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앞으로도 제품 제작에 여대생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 이미 2기 여대생 마케터들이 다른 제품 기획에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도시락, 즉석 식품, 디저트 등에도 ‘여대생들의 수다’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아이디어 제공한 학생 직접 채용도


아예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대학생을 채용한 기업도 있다. 외식 업체 아모제가 운영하는 오므라이스 전문 레스토랑 오므토 토마토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태형씨(27·여)는 지난 2003년 이 회사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신규 외식 브랜드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고생들을 타깃으로 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직접 설문 조사까지 하며 ‘아모제 스쿨’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대상으로 뽑혔고 이를 계기로 이 회사의 정식 사원으로 채용되었다. 김씨는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서 외식산업을 전공했고, 지난 2005년 원하던 기업에 입사했다”라고 말했다.
이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비록 신규 브랜드 아이디어가 실전에 활용되지 않더라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가산점을 부여하거나 특별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기업이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를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수단은 공모전이다. 제품 이름부터 고객 대응 방안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KB국민은행은 지난 5월부터 대학생을 대상으로 신상품 아이디어를 공모 중이다. 이 은행은 지난해 한 대학생의 아이디어를 기초로 해서 중국 투자 상품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은행 마케팅팀 김종란 팀장은 “지난해 대상을 차지한 대학생의 아이디어를 활용해 차이나 펀드를 만들어 KB자산운용을 통해 판매했는데 의외로 많이 팔렸다. 앞으로 대학생 아이디어 공모를 꾸준히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본점 리모델링 디자인을 대학생에게 맡기기로 했다. 1983년 준공된 서울 을지로 본점이 24년이 지나 노후되어 리모델링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내·외관 디자인을 전문 업체에 맡기지 않고 대학생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리모델링인 만큼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고 혁신적인 출발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역발상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젊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공모전만 모아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생겼다. 대학문화신문이 운영하는 공모전 포털 사이트 씽굿(www.thinkcontest. com)에는 1천여 개의 공모전 정보가 올라와 있다. 정부 기관부터 일반 기업에 이르기까지 대학생 아이디어를 구하는 조직도 다양하다.
이 사이트의 신선경 기획관리실장은 “이해 당사자가 아닌 제3의 눈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많아졌다. 3년 전만 해도 1년에 2~3회 소개할 정도였는데 최근 들어 연 3천 건 정도로 그 수가 늘었다. 단순한 이벤트성 공모전까지 포함하면 5천 건을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오프라인으로 가이드북을 낼 정도이다.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를 경영에 반영하는 이유는 젊은 소비층과의 거리를 한층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기업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업 처지에서는 불안감도 있다. 기업이 기대하는 수준의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으면 전문 업체에 다시 의뢰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용과 시간이 이중으로 드는 것은 물론 자칫 경쟁사보다 뒤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방안도 생겼다. 기업에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독립적으로 경영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단순히 아이디어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실제로 시장에 적용한다. 기업은 경제적 지원과 자문 역할만 한다.
성균관대학 국제경영 동아리 사이프(SIFE·Students In Free Enterprise) 회원 대학생들은 올해 초 20%까지 하락한, 서울 계동에 있는 한 장아찌 가게의 매출을 4개월 만에 회복시켰다. 매출을 회복시킬 방안 등 세부적인 것들을 대학생들이 스스로 계획한다. 권병민 회장(경영학부 4년)은 “온라인 판매 등 다양한 컨설팅 아이디어를 세워 실제로 한 매장에 적용해 성공한 사례이다. 보통 학생 5~6명이 한 팀이 되어 수립한 경영 아이디어를 6개월에서 1년 동안 시장에 적용한다. 그 결과를 후원 기업들에게 발표한다”라고 말했다.
2004년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이런 활동에 현재 16개 대학의 학생 4백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을 HSBC, 두산,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10개 기업이 지원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대학생들의 경영 결과에 주목한다. HSBC 정임현 이사는 “대학생들이 독립적으로 경영 아이디어를 만들어 시장에 적용한다. 기업은 대학생들의 경영 활동을 적극 후원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대학생들의 뛰어난 경영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 기업 경영에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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