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행 ‘좁은 문’이 활짝 열리면...
  • 서종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7.0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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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면제 후 발급 비용 절감·여행 증가 기대...미국 의회 법안 처리에 촉각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는 비자 없이 여권만 달랑 들고 미국을 마음대로 방문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미국이 90일 이내 단기 체류자에 대해 적용하는 상용·관광 비자 면제 프로그램(VWP:Visa Waver Program) 대상국에 한국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비자 면제국 명단에 오른 나라는 모두 27개국으로 대부분 서유럽 선진국이다. 따라서 한국이 비자 면제국 대열에 낀다는 것은 국력이 그만큼 신장되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나 재계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7대 교역국이라는 점을 들어 VWP 적용을 줄기차게 요청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VWP 가입 심사에서 자격 요건이 미달되었다며 한국을 번번이 탈락시켰다. 그러다가 이번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계기로 인적 교류 확대를 위한 정책적 차원에서 한국을 가입시키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미국 행정부는 추가 가입을 추진하는 한국, 체코, 그리스, 헝가리, 폴란드 가운데 한국을 1순위 후보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30일 한·미 FTA 합의문 서명식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지난해 11월 우리의 가까운 파트너인 한국과 중·동구권 일부 국가들의 VWP 가입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회에 계류 중인) 법안 통과를 위해 의회와 협력을 계속하겠다”라고 말했다. 미국 국토안보부도 비자 거부율, 공항 보안 시스템, 여권 발급 시스템, 분실 여권에 대한 관리 시스템 등을 점검하기 위해 적절한 시점에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는 전했다.
우리나라가 VWP에 가입하게 되면 우선 연간 수백억원에 이르는 비자 발급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보인다. 매년 미국 비자를 신청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40만명에 이른다. 1인당 수수료와 인터뷰 비용은 12만5천원이다. 따라서 한 해 줄잡아 1천억원대가 미국 비자 발급을 위해 지불되는데, VWP가 모든 비자를 면제하는 것이 아니므로 절감 효과는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미국 비자 면제의 최대 수혜자는 여행 업계이다. 미국으로 떠나는 여행객이 크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전체 출국자의 6.7%에 불과한 미주 지역 관광객 수가 30% 수준으로 늘어나 업계 전반의 새로운 성장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비자 거부율이 높았던 자영업자나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북미 지역 여행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미국 VWP 가입은 국내 여행 시장과 대형 업체들에 장기적인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빠르면 2008년 하반기, 늦어도 2009년 상반기에는 미국 단기 무비자 입국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자 발급에서의 제약으로 인해 미국 지역 상품 판매 비중이 상대적으로 하락해왔으나, 단기 무비자 입국이 허가되는 시점부터는 이익률이 높은 미국 지역 상품의 판매 비중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우리보다 먼저 대상국이 되었던 일본의 경우 VWP가 시행된 첫해 미국으로 출국한 인원이 전년 대비 27%나 증가한 바 있다. 다소 경우가 다르지만 한국과 일본의 비자 면제가 본격 시행된 지난 2003년에도 일본으로 떠나는 관광객 수가 24% 늘어났다.
미국 여행 붐과 함께 여행 상품 다양화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현재 북미 관광 상품은 20년 전이나 별 차이 없는 상태로, 여행사 패키지 상품에서 북미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4.4%에 불과하다. 하지만 앞으로 상품이 다양해지면 관광객이 급증해 하나투어, 모두투어, 롯데관광개발 같은 대형사들의 매출이 급증하리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캄보디아 항공기 추락 사고로 증시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던 하나투어 주가는 6월28일부터 7월4일까지 8만6천9백원에서 9만7천3백원으로 뛰었고 롯데관광개발은 같은 기간 2만4천3백원에서 2만8천7백원, 모두투어는 4만8천4백원에서 5만1천원으로 각각 상승했다.
여행사와 더불어 항공사 실적도 큰 폭의 증가세가 예상된다. 한국 방문객들에 대한 미국의 비자 거부율이 3.5% 정도임을 감안하면 비자 면제시 항공사들의 북미 지역 매출은 5% 정도 증가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국제 여객 매출액에서 북미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이므로 전체적으로는 1.5%의 매출 증가가 예상되는 셈이다.


불법 체류자 급증으로 분쟁 불씨 생길 수도


 
물론 한국의 VWP 가입이 확정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최대 장벽은 결정권을 쥐고 있는 미국 의회이다. VWP 가입은 △비자 거부율 3% 이하(우리나라는 3.5%) △기계 판독이 가능한 전자 여권 도입 △불법 체류자 대책 마련 등 세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VWP 가입을 위해 전자 여권 도입을 추진 중이며, 불법체류·인신매매·밀입국 등에 미국 당국과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사법 집행 협력 시스템 구축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비자 면제국 확대 법안’은 비자 거부 조건을 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 상원과 하원은 어느 선까지 완화하느냐를 놓고 아직 합의를 보지 못했으나 대체로 5% 정도는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확대안이 통과되면 행정부가 세칙을 마련하고 시행에 들어가는 데 통상 3~6개월 걸린다.
외교부 당국자는 “6월30일의 부시 대통령 성명은 미국 의회에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VWP 가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정을 이보다 앞당기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한다. VWP 가입의 필수 조건인 전자 여권 때문이다. 전자 여권은 시범 발급 후 4~5개월의 시험 기간을 거쳐야 전면 시행할 수 있다. 시범 발급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가능할 전망이어서 전면 시행은 빨라야 내년 상반기가 될 전망이다.
VWP와 더불어 ‘전문직 비자 쿼터’도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이와 관련해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는 “미국과 FTA 협정을 체결한 호주처럼 우리도 FTA와는 별도로 전문직 비자 쿼터를 받아내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호주의 경우 미국과 FTA를 체결한 뒤 10개월이 지나 ‘E비자’라는 별도 형태로 1만5백 개의 전문직 비자 쿼터를 받아냈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숫자를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 행정부가 앞으로 의회에서 한국에 대한 전문직 비자 쿼터 할당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미국 비자가 면제되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보다 더 많은 불법 체류자가 발생해 한·미 간에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현재 미국 내 한국인 불법 체류자 규모는 아시아에서는 인도와 중국 다음으로 많은 21만명으로 추정된다. 무비자 입국시 최대 90일간 체류는 엄격히 지켜져야 하고 극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체류 연장 및 신분 변경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춘 및 인신매매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현재 매춘 및 인신매매단은 합법적 방법으로는 미국 입국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멕시코 및 캐나다 입국 후 밀입국 루트를 통해 미국에 들어간다. 그러나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지면 이들 업소 종사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더 자유롭게 한국과 미국을 오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자 면제국 가입이 현실화되더라도 이같은 문제들이 발생한다면 3년 후 재심사 과정에서 탈락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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