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걸음 내디딘 ‘양심의 거인’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7.0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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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주도한 마이클 혼다 의원은 누구인가

 
9·11 테러 사건이 발생한 바로 다음달인 2001년 10월 마이클 혼다 미국 하원의원(66·민주당·캘리포니아)은 워싱턴의 전 미국모슬렘연맹(AMA)이 주최한 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미국은 세계 무역의 중심이 모래탑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보고 경악과 충격에서 채 깨어나기도 전이었다. 여론은 중동과 아랍 그리고 모슬렘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미국 거주 아랍인들 가운데는 증오 범죄에 대비해 이름을 바꾸는 사람마저 생길 정도였다.
혼다 의원은 이 회의에 참석한 미국 청중에게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의 아이덴티티나 이름을 바꾸지 마십시오. 혼다라는 이름에서 누구든 내가 일본계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름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주만 공습 직후부터 자신을 포함한 미국 내 거주 일본인들이 겪은 수난을 소개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2년 11만명의 미국 거주 일본인과 일본계 미국인에 대해 격리 수용을 명령했다. 일본계 미국인들은 창문을 가린 차량에 실려 낯선 곳으로 옮겨져 10년 가까이 격리 수용되었다. 혼다 의원은 당시 젖먹이 때부터 열두 살 되던 1953년까지 어린 시절을 콜로라도 주의 일본인 격리 수용소에서 보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일본계라는 이유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지만 자신의 일본 이름은 바꾸지 않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혼다 의원은 7년이 지난 올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미국 하원 위안부 결의안(HR121)을 입안했다. 일본이 2차 대전 당시 저지른 만행에 대한 규명 작업에 앞장섰다. 그가 자신에게 쏠릴 일본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이번 결의안 의회 제출은 AMA 연설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일본인에 대한 애증의 간극이 큰 한국과 중국인들이 위안부 결의안을 작성한 혼다 의원에게 가진 첫 번째 궁금증도 거기에서 나온다. HR121은 하원의원 1백51명의 공동 서명과 혼다 의원을 중심으로 한 6명의 의원 발의로 하원 외교위원회에 상정되어 6월26일 39 대 2로 통과되었다.
HR121의 골자는 네 가지다. 이 결의안은 우선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하고 있다. 첫째, 일본군이 193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 종식 때까지 아시아 및 태평양 연안국에 대한 식민지화 또는 전시 점령 기간 중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했던 사실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 사과하고 이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선명하고 분명하게 수용할 것. 둘째, 이 공식 사과는 일본 총리가 공식 입장에 입각해 성명으로 발표할 것. 셋째, 일본군이 위안부에 대한 성노예 및 밀매 행위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어떤 주장도 일본 정부가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거부할 것. 넷째,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국제 사회의 권고를 따름과 동시에 이같은 잔혹한 범죄에 대해 현재와 미래 세대에 교육할 것.
이 결의안의 내용에는 이같은 권고안 외에 아베 신조 총리 정부의 위안부 문제 회피 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경고를 동시에 담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훈수도 덧붙이고 있다. 즉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사람의 안전한 삶,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 그리고 법치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고 이 결의안은 강조하고 있다. 인정과 사과를 거부한다는 것은 바로 일본 스스로 안전한 삶과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무시하는 나라이고 법보다는 주먹을 앞세우는 나라임을 인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충고이기도 하다. 이 결의안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일본 정부에 어떤 종류든 회피 구실이나 다른 선택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 결의안 저지에 혈안인 것도 이처럼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HR121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미국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HR121 반대론자들은 이 결의안의 강도가 너무 강하다고 비판한다. 워싱턴의 수많은 보수 단체 가운데 하나인 자유의회재단(FCF)의 매리언 해리슨은 지난 2월 FCF 웹사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대해 사법적 판결을 내릴 수는 없으며 △미국과 일본 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등 다섯 가지 이유를 댔다. 해리슨은 또 미국 의회가 다른 나라 문제에 개입하는 대신 입법과 비준이라는 고유한 헌법적 역할에 충실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 보수 단체들의 주장은 혼다 의원과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 못지않게 강경하다. 특히 일본으로 하여금 위안부 문제로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하도록 해야 한다면, 옛 소련의 스탈린이 저지른 잔혹한 숙청과 학살, 인권 유린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반문이다.
이같은 보수계의 반대론에 대한 타협으로 혼다 의원의 HR121은 일부 수정되었다.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수정안을 내놓았다. 일본 총리가 공식 사과 성명을 내야 한다는 제2항 문항을 강제가 아닌 권고로 완화한 내용이다. 지난 6월26일 외교위에서 통과된 결의안은 랜토스 수정안이다. 이번 위안부 결의안이 하원에서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세 가지 내외부 조건이 서로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위안부 결의안에 동조적인 민주당이 올해 의회 내 다수당이 되면서 상·하원 모두를 장악한 정치 상황의 변화다. 두 번째는 혼다 의원과 긴밀한 친분을 유지하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결의안 지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론자인 혼다 의원의 인권 문제에 대한 끈질긴 의지다. 혼다 의원이 HR121을 발의한 시점은 지난 1월이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10년 만에 의회를 재장악했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에서 민주당원이 주도한 HR121 의회 상정은 공화당 시절보다 훨씬 용이했다. 하원의장과 외교위원장 모두가 민주당 소속인 것도 이 결의안 통과에 적지 않은 힘이 되었다.
혼다 의원의 지역구는 샌프란시스코 남쪽 실리콘밸리의 중심 도시 새너제이의 제15지구다. 4선인 혼다 의원은 샌프란시스코 제5지구가 지역구인 펠로시 하원의장(5선)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혼다 의원을 의회 내 요직인 세출위원회에 배정하고, 민주당의 캘리포니아 주 지역 원내총무에 임명했다. 혼다 의원은 의장 최측근에 준하는 요직을 맡은 것이다. 또 펠로시 의장이 이번 HR121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한 것은 이 결의안이 하원 본회의를 통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원칙과 원론 중시했던 교육자 출신


혼다 의원의 부모는 1953년 일본인 수용소에서 나와 새너제이에서 딸기밭 소작농으로 일했다. 소년 마이클 혼다는 이곳에서 성장해 새너제이 대학에서 과학과 생물학을 공부하고 교사가 되었다. 10여 년의 교직 생활 중 공립학교에서 두 차례 교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자의 길을 걷던 그는 1971년 새너제이 시의회 기획 담당으로 임명되었다. 이어 시 교육위원으로 선출된 뒤 1996년에는 캘리포니아 주 하원에 진출하고 1999년에는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교사 시절 과학도답게 제자들에게는 원칙과 원론을 중시해 가르치던 교사 혼다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고 일본 교과서에서 위안부 항목을 삭제하는 것을 보면서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는 일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혼다 의원이 1999년 캘리포니아 주 하원 결의안(AJR27, 난징 학살·위안부·전쟁포로에 관한 결의안)을 주도한 것도 역사 왜곡에 대한 그의 단호한 반대 의지의 표현이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혼다 의원의 생각은 연방하원에 진출하면서 더욱 굳어졌다. 친일 기류의 공화당 기세에 눌렸던 혼다 의원은 올해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자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해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그 결과가 HR121이다. 혼다 의원은 한국인 위안부 출신 이용수·김군자 씨 등이 증인으로 출석한 청문회 증언에서 우선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감사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2차 대전 중 일본인을 격리 수용했던 미국 정부의 잘못을 사과하는 내용의 결의안(HR442)에 서명하고 시민자유법(1988)을 제정했다. 혼다 의원은 과거의 잘못을 정부가 시인하고 사과함으로써 과거사를 정리하고 넘어간 레이건을 높게 평가했다.
위안부 결의안을 보는 많은 사람은 혼다 의원의 ‘배신’을 얘기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과거사를 솔직하고 분명하게 정리하는 것이 대미 관계나 국제 관계에서 더욱 떳떳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는 조상의 나라에 대한 그의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라는 반론이 더 많다. 혼다 의원은 청문회에서 “이 결의안은 결코 일본 정부에 타격을 가하거나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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