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코쿤족’, 편할까 외로울까
  • 임은희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7.0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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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여성 63% ·남성 48% “혼자가 좋다”…‘외톨이’ 위한 문화 공간 확산

 
한국인이 즐겨 쓰는 단어 중에 ‘우리’라는 말이 있다. 한국 문화는 전통적으로 우리라는 단체 문화가 강하다. 우리라는 언어 속에는 가족, 친척, 친구, 이웃 더 나아가 국가, 민족 등이 포함된다. 그동안 우리를 위해 ‘나’를 양보하는 것이 미덕으로 통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보다 나가 우선시되는, 또는 우리와 나가 대립하는 조짐이 사회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한 예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간형인 코쿤족들이 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코쿤족, 즉 나홀로족들은 우리 사회에서 서구적 개인주의가 강해지면서 나타난 새로운 인간형으로, 나보다는 단체와 전체를 중시하던 우리의 전통 문화가 차츰 변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직장인의 절반가량은 자기만의 공간을 좋아하고 혼자서 행동하고 노는 것을 즐기는 이른바 ‘코쿤족’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코쿤족은 복잡한 사회 관계를 싫어하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생활하는 ‘은둔족’들을 대표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원래는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 페이스 팝콘이 누에고치처럼 ‘불확실한 사회에서 보호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해소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썼다가 일반화되었다. 이미 일본에는 ‘히키코모리’라는 말로 세상과의 접촉을 피하며 인간 관계를 단절하는 ‘은둔형 외톨이’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도 일본 못지않게 이런 은둔형 외톨이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코쿤족은 정상적인 사회 생활과 경제 생활을 영위하면서 나홀로 생활을 추구하는 나홀로족이라는 점에서 은둔형 외톨이와는 구분되는 말이다. 귀차니스트, 싱글족, 디지털 노마드 등을 묶어 ‘코쿤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온라인 취업 사이트 사람인은 최근 직장인 회원 1천5백44명을 상대로 “자신을 코쿤족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하고 물은 결과 54.9%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자신을 코쿤족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 비율은 여성이 62.9%, 남성이 47.7%였으며, 연령대별로는 20대(57.3%), 30대(53.7%), 40대(37.9%), 50대 이상(33.3%) 순이었다.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복수 응답) ‘혼자가 편해서’(62.7%),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서’(30.9%),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어서’(22.2%), ‘상대와 이견 조율이 귀찮아서’(14.6%) 등을 꼽았다. 이들이 혼자서 주로 즐기는 것은 ‘쇼핑’(44.0%), ‘서점 가기’(43.8%), ‘운동’(32.8%), ‘식사’(31%), ‘전시회·영화 등 관람’(27.7%), ‘DVD·비디오 감상’(25.7%) 등이었다.
단지 여가 생활을 홀로 즐기는 정도만이 아니다. 삶의 형태 또한 ‘나’ 위주로 바뀌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1인 가구가 1985년 66만1천 가구였던 것이 2000년 2백22만4천 가구로 증가했으며 2020년에는 3백89만7천 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나홀로족의 증가는 곧 시장 경제에도 영향을 미쳐 1인용 소형 가전과 1인용 가구의 판매 증가를 가져왔다. 롯데백화점 영플라자는 지난해 11월 문을 열면서 지상 1~6층 중앙에 코쿤(누에고치) 모양의 대형 조명을 설치하고 의자도 코쿤 모양으로 디자인하기도 했다.


디지털 문화가 고독 부추긴다는 지적도


 
이렇듯 나홀로족이 늘어난 이유로는 크게 IT 문화와 서구형 개인주의의 확산을 꼽는다.
의사 소통을 편리하게 해 타인과의 간격을 좁혀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디지털 문화가 오히려  개인주의적 성향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은 매우 흥미롭다.
김열규 교수(서강대 국문과)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넷 워크의 ‘넷’은 엮는 그물이자 동시에 갈라놓는 장벽이 되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만 잠시 열리는 것이다. 잠시의 접촉으로 눈에 안 보이는 유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손을 잡는 행위를 대신하는 것이다. 한여름 잠자리가 슬쩍 물 표면을 스치는 것으로 더위를 식히듯이 휴대전화로 외로움과 소외의 갈증을 잠시 잠깐 달래는 것이다.” 휴대전화의 통화 기능은 광범위하게 넓어진 넷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외로운 자신의 존재를 확인코자 하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과정이다. 살짝살짝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잠수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퍽 효율적인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은 간접적인 만남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단지 만나고 있다,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 IT적 만남은 결코 입체적인 만남과는 비교할 수 없다. 타인과의 관계를 첨단 매체에 떠넘기자 ‘나홀로’라는 시간과 숙명적으로 마주치게 될 수밖에 없다. 나머지 여가는 혼자 즐기고자 하는 이중적인 삶의 방식에 인간은 더욱 고독해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최근 미국의 폭스뉴스는 아이팟, 휴대전화의 폐해에 대해 보도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공간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용도로 발명된 기기들이 오히려 인간을 더 고독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폰이나 휴대전화 때문에 현대인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능력을 점차 상실해간다는 주장이었다. 앵커는 바쁜 뉴욕 시내에서 느긋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시내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음악을 듣고 있거나 휴대전화 통화를 하고 있어서 앵커가 말을 걸어도 듣지 못했다. 앵커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답하자마자 바쁘다는 말과 함께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느림의 미학>(Slow Is Beautiful)의 저자 세실 앤드루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에게 행복한 요소 중 하나는 타인과의 교류이다. 과학기술 분야가 발달하고 삶이 좀더 풍요롭게 변하고 삶의 양식은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의 대화 능력은 물질 문명의 발달에 반비례해 오히려 퇴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로움을 느끼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말을 거는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현대인은 타인과의 대면을 두려워한다. 휴대전화 같은 첨단 매체 뒤로 자신을 숨기는 것이다”라며 “첨단 기기로 무장한 사람들은 무심하기보다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분석했다.
무더운 여름 주말, 인사동에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한 소녀가 ‘프리 허그’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두 손으로 팻말을 들고 있는 소녀의 얼굴은 무더위로 빨갛게 달아 있어 비장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아무도 손쉽게 소녀에게 다가가 프리 허그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번쩍 쳐든 두 팔이 무척 아플 텐데도 소녀의 얼굴에는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은 어떤 고집이 엿보였다. 마침내 길을 지나던 중년의 외국인 남자가 얼굴을 붉히면서 소녀와 프리 허그를 나누었다. 그것은 포옹이라기보다도 종교적인 행사처럼 경건하고 숙연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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