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직장’에 떠도는 안타까운 괴담
  • 유근원 기자 ()
  • 승인 2007.07.1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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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출범 이후 8년간 12명 사망…“과로” 등 설 분분

 

'신이 내린 최고의 직장.’ 대한민국 금융 산업의 관제탑 역할을 하는 금융감독원(금감원)에 ‘괴담’이 나돌고 있다. 매년 1명 이상의 간부가 목숨을 잃고 성인병 환자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과로로 인한 당연한 결과’라는 분석에서부터 ‘뭔가 과학적이지 않은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초자연현상론까지 설이 분분하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999년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등이 통합되면서 출범했다. 그로부터 8년간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해마다 3~4명의 암 환자를 비롯해 간질환·당뇨 등 성인병 환자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직원 가운데 13%(2백21명)가 환자라는 검진 결과가 나왔다. 감독원 사람들의 입에서‘금감원은 종합병원’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평균 연봉이 높아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지난 6월25일, 금감원 은행감독국 신탁감독팀의 진 아무개 팀장(39)이 퇴근 후에 갑자기 쓰러졌다.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8일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사인은 뇌출혈로 밝혀졌다. 금감원 사람들은 그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며 매일 야근을 했다고 말한다. 보통 3년을 주기로 다른 업무 분야로 순환하는 이동 인사에서도 그는 예외였다. 금감원 출범 때부터 9년간 신탁감독팀에서만 일했다. 본인이 다른 보직을 희망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 워낙 꼼꼼한 성격이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전문가라는 인식이 그를 붙박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동료들은 “진팀장이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과정을 감독하는 실무자로서 내내 부담스러워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외환은행 매각 당시 ‘좀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내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론스타 사태의 후폭풍은 고스란히 진팀장에게 돌아왔다. 그때 가장 많이 알고 있었던 실무자라는 이유로 지난해부터 감사원과 검찰의 조사를 받으러 다니기에 바빴다.
지난 2005년 3월 뇌출혈로 사망한 조사2국 박 아무개 팀장도 진팀장과 비슷한 사례이다.
박팀장은 지난 2004년 초 한국 금융 시장을 강타했던 LG카드 사태 처리를 맡았던 실무자였다. 그는 LG카드의 대주주와 특수 관계인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내부자 거래를 한 혐의를 조사해왔다. LG카드 문제가 불거지고 카드대란이 터지면서 박팀장은 애를 먹었다. 국회와 검찰을 드나들며 1년 넘게 각종 조사에 시달려야 했다.
금감원 노조에서는 ‘과로가 원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직원들의 사망은 업무 스트레스 및 과다한 야근에 따른 피로 누적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7월3일 진팀장이 사망한 이후 직원들은 술렁거렸다. “업무가 과중해 도저히 견딜 수 없다.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라는 호소가 노동조합에 쇄도했다.
최근 한 회계법인에 근무하다가 경력직으로 금감원에 입사한 김 아무개씨(43)는 “금감원은 월급도 만족스럽고 업무도 편할 것 같아 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해 입사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지금까지 밤 10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금감원 입사 9년차인 이 아무개 수석조사관은 “모든 직원이 바쁘게 일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 직원 중에는 워커홀릭(일벌레)이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감독기관의 일은 찾아서 하면 한도 끝도 없다.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업계에서는 오히려 좋아한다. 하지만 워커홀릭들은 이를 참아내지 못한다. 나도 일에 빠지다 보니 입사 후 지금까지 휴가를 딱 두 번밖에 가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격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일 중독자가 느는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금감원은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줄어든다. 진급을 꿈꾼다면 10명 중 1명 안에 들어야 한다. 근무 강도도 점점 높아졌다. 직원들에게는 매년 새로 들어오는 능력 넘치는 경력 직원들과 똑똑한 신입 사원들로 인한 부담감도 적지 않다.
과도한 업무 등 안팎 스트레스 ‘첩첩’
금감원이 관리하는 대상 금융기관은 전국에 걸쳐 20여 만 곳이다. 은행감독국이나 조사국은 업무량이 폭주하는 주요 부서로 꼽힌다.
금감원 사람들은 조직 내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고 털어놓는다. 최근 본격 도입한 성과급제로 인한 부담감도 크다. 금감원은 “7월부터 전직원을 대상으로 시행되며 외부 성과, 고객, 프로세스, 자원과 역량 등 4개 관점에서 미션과 비전 달성 여부를 균형 있게 평가한다”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지난 1999년 출범했다. 종전의 은행감독원·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신용관리기금 등 4개 감독기관을 통합해 만든 무자본 특수 법인이다. 그래서 금감원 직원은 공무원이라고 말하기도,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모호한 처지이다. 딱히 규정짓기는 어렵지만 공기업 성격의 민간 기구로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조사권을 놓고 보면 공무를 수행하는 자리임에 분명하다. 금감원은 공무원만큼의 신분 보장은 아니어도 직원 복지가 좋기로 유명하다.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 경력의 인력은 현재 3분의 1을 넘어섰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박사 학위 소지자와 금융회사 경력자로 구성된 엘리트 집단이다. 직원들의 자부심이 강한 편이라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권위적인 조직으로 비춰질 때가 많다. 1천7백여 명 전 직원의 평균 연봉이 7천만원을 넘는다. 입사 시험 전형이 매우 까다로우며 경쟁도 치열하다.
누가 보아도 금감원은 화려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금감원도 안팎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감독 체계 개편 문제는 항상 뜨거운 감자처럼 이슈화되곤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금융 사고도 팀장급 이상에게는 좌불안석의 요인이다. 각종 금융 사고의 원인이 결국 금감원의 소홀한 관리 감독 탓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김성화 금감원 은행감독국장은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한 기사를 인용해 ‘감독 기관의 저주’(Watch Dog’s Curse)라는 표현을 썼다.
감독 당국의 저주란 금감원의 처지를 빗댄 자조 섞인 말이다. 금융 감독 당국으로서 감독·규제 활동에 충실할수록 감독 대상 금융회사로부터의 원성은 높아지고, 금융 시장 또는 금융 회사에 대한 적절한 개입에 실패할 경우 감독 당국으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태생적 어려움을 비유한 말이다.

 
금감원과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의 관계는 머리는 하나이고 몸뚱이는 두 개인 기형적인 관계로 맞물려 있다. 우선 금감원장과 금감위원장은 겸임이다. 한 건물에 있지만 신분은 크게 다르다. 금감위는 원래 9인의 위원으로 출발했고 이를 지원하는 사무국은 점차 규모가 커져 2백여 명의 공무원으로 채워졌다. 두 기관의 관계에 대해 금감원 직원들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번다’는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감독 체계가 발단이었지만 이제는 금감위와의 불필요한 중복 업무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오수상 금감원 인사팀 부국장은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기 위해 매주 하루는 정시에 퇴근하는 ‘가정의 날’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오후 6시30분을 기점으로 야근을 신청하지 않은 직원의 PC를 강제로 종료시키는 제도를 운영해왔다”라고 밝혔다.
앞서 윤증현 금감원장도 합동 간부회의에서 일과 생활이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실천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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