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광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JES 제공 ()
  • 승인 2007.07.1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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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사랑하는 사람을 혼자 보내진 않을 겁니다. 반드시 꼭 끝까지 지켜줄 겁니다.”(민우)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어요.”(신애)
김상경·이요원의 영화 속 독백은 어쩌면 <화려한 휴가>(김지훈 감독)가 털어놓고 싶었던 진심이었는지 모른다. 꼭 27년 전 5월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 <화려한 휴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지켜주고 싶었던 사람과 그들의 실낱 같은 희망이 산산조각 났을 때 겪어야 했던 슬픔과 회한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냈다.
걸쭉한 광주 사투리를 쓰는 조연들과 달리 네 주인공이 표준어를 쓰는 것이 이채롭다. 5·18이 비단 광주에 한정된 비극이 아니라는 감독의 연출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몇몇 극적인 설정을 제외한다면 다큐멘터리 영화로 봐도 무방할 리얼리티는 이 영화가 길어 올린 값진 수확 중 하나다.
김상경·이요원의 눈속임 없는 연기 ‘훌륭’
실제 사건을 극화한 것이라는 자막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휴가>의 내러티브와 화면 전개는 꼼꼼한 고증과 취재에 뿌리를 두고 있다. 30대 이상의 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과거 언젠가 경악하며 보았을 광주 비디오의 몇몇 장면이 오버랩될 수 있겠다. 상무관에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아이의 처량한 표정과 손수레에 널브러진 채 실려 있는 주검, 팬티만 입은 채로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청년들….
<꽃잎> <박하사탕> 등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순 제작비 100억원을 들여 그날의 비극을 정조준한 상업 영화는 <화려한 휴가>가 처음이다. 여름방학을 겨냥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광주항쟁이 선택됐다는 것이 다소 뜻밖이지만 정면 승부로 읽힌다.
이 영화는 이미 절반의 성취를 거두었다. 광주의 그날에 대해 몰랐던 젊은 세대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가슴이 먹먹해지는 <화려한 휴가>는 대중 영화로서 겸비해야 할 미덕도 잘 갖추었다. 촘촘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호연 덕분이다.
12살 때 부모를 잃은 뒤 동생(이준기)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택시 기사 민우(김상경)와 기독병원 간호사인 딸 신애(이요원)가 인생의 전부인 전직 군인 흥수(안성기). 직업은 다르지만 이 네 주인공은 모두 결핍이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다. 김상경·이요원의 눈속임 없는 연기는 이 영화를 더욱 탄탄하게 해준다. 김상경은 순수함과 정의감, 분노와 광기, 절규 등 서서히 변하는 스펙트럼 연기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소화해냈고, 얼떨결에 군인을 사살한 뒤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요원도 잔상에 남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라며 호소하는 가두 방송 장면은 이요원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중압감이 턱밑까지 밀려올 때마다 ‘썰물’ 역할을 해준 박철민·박원상도 이 영화의 일등 공신이다. 민우의 택시회사 선배 인봉과 제비족 용대로 나온 두 사람이 없었다면 영화가 한없이 무거워졌을 터다. 특히 박철민은 <왕의 남자>의 유해진에 버금갈 정도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아쉬움도 남는다. 계엄군의 도청 타격을 앞두고 도청에 남는 자와 떠나는 자의 대비가 좀더 비장하게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동료를 보내고 도청에 남은 자의 쓸쓸함이 덜 묻어났고, 무기 반납을 결정한 수습위원회와 시민군 간의 갈등이 좀더 세밀히 묘사되었다면 엔딩 신이 더 긴박하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하나 더. 고교생으로 나온 이준기의 장발과 이요원의 색조 화장은 아무래도 몰입을 방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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