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싶으면 ‘가늘어도 길게~’
  • 유근원 기자 ()
  • 승인 2007.08.0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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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제’ 도입 업체 늘어…전문 인력 고용·비용 절감으로 노사 ‘윈윈’

 
“월급을 적게 받더라도 지금까지 일해온 회사에서 좀더 근무하고 싶다.” “임금 부담만 줄인다면 노련한 직원이 근무해주는 것이 회사에 더 이롭다.”
각각 양측 노사의 주장이다. 두 주장이 만나서 ‘정년 연장제’가 태어났다. 요즘 국내 기업체에서는 정년 연장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임금 피크제와 맞물려 속속 정년 연장제를 도입하는 추세이다. 3~4년 전부터 시행해왔던 임금 피크제보다 더 진화한 형태이다. 예전에는 기업이 정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깎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정년 보장을 전제로 월급을 깎았다는 비난도 적지 않았다. 구조 조정 차원에서 이루어진 기형적 정책에 불과했다는 비판도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번 정년 연장제는 상생이 바탕에 깔려 있다. 단순히 정년 보장만 해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정년 보장을 넘어서 2~3년 더 일하는 것이 정년 연장제의 핵심이다.
LG전자는 지난 2월 정년 연장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대기업이 정년 연장제를 도입한 것은 LG전자가 처음이다. LG의 정년 연장제는 55세인 정년을 58세로 늘리되 55세의 월급을 정점으로 해마다 10%씩 임금을 감액하는 방식이다. 생산·기술·사무직에 적용되나 대부분 기술 및 생산직 근로자에게 혜택이 갈 것으로 보인다. LG전자의 정년 연장제 도입 배경에는 두 가지 분석이 가능하다. 비용을 줄이면서 숙련된 전문 인력을 고용해 사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하나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고용 안정 효과가 있어 노사가 상호 ‘윈윈’ 하는 길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년 연장제는 LG그룹 전체로 확산될 조짐이다. LG필립스LCD, LG마이크론도 같은 조건으로 시행 중이다.
지난 6월에는 LS전선이 도입했다. LS전선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늘리고 53세부터 임금을 올리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또 59~60세에 이르러서는 가장 많이 받던 임금의 85%를 주는 형태이다. 그룹 차원에서 단행되었기 때문에 LG그룹이 주목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년 연장제는 최근 제조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유한킴벌리는 올 초 정년을 55세에서 57세로 늘렸다. 55세 정년을 채운 뒤에는 입사 5년차의 월급에 맞춰준다는 조건이다. 삼립식품과 아세아제지도 각각 58세에서 60세로, 55세에서 58세로 늘렸다.
철강 업계에도 정년 연장제 바람이 불었다. 스타트는 동부제강이 끊었다. 동부는 지난 7월12일 56세였던 정년을 57세로 연장하는 임금 및 단체 협상안을 타결했다.
조선 업계는 일찍부터 정년 연장제를 도입했다. 한진중공업과 STX조선 노사는 회사와 2~3년씩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을 놓고 깊이 있는 협의에 들어갔다.
인사 노무 업체의 한 전문가는 최근 기업들의 정년 연장제 도입에 대해 “생산직을 기피하는 젊은 층이 늘면서 일손이 부족해진 회사와 고용 안정을 요구하는 노조 요구가 서로 맞아떨어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일본, ‘65세 의무’ 이어 70세로 연장 검토 중
제조 업계는 대부분 이런 분위기를 반기고 있다. 한 제조 업체의 인사 담당자는 “우리나라에 노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정년 연장이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사항이라는 사회 전반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아직 더 일할 수 있는데 법으로 그만두게 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손해라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결국 최근  산업계의 임금 피크제와 정년 연장제 확산은 노사 상생을 위한 선택의 하나로 보인다.
정년 연장제 바람은 언론계에도 불었다. 승진 적체 현상이 심한 언론계의 정년 연장제는 유력한 해법으로 관심을 모은다. 최근 경인일보는 2008년 7월부터 정년을 늘리는 대신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부장급 이하 사원의 경우 55세에서 57세로 연장하고 53세부터 임금 피크제를 적용한다. 부장급 이상은 정년을 만 57세에서 59세로 늘리고 55세부터 임금 피크제가 적용된다. 임금 삭감 수준은 연차별로 다르다. 1년차는 10%, 4년차 이상은 30%까지 순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은행계의 정년 연장제는 업계 전체에 일괄 적용될 예정이다. 지난 7월27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최근 공동 임금 단체 협상을 통해 정년 연장에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정책본부 공광규 실장은 “이번에 잠정 합의한 정년 연장제는 58세 정년을 60세로 늘리는 조건이다. 이렇게 되면 임금 피크제를 도입한 은행들의 정년보다도 1년 더 연장 받게 되는 셈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금융 기관, 공기업, 공무원 노조까지 정년 연장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손이 부족한 제조 업체는 정년 연장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금융계까지 정년 연장제가 필요 하느냐는 주장이다. 제조업이 아닌 분야에서 정년을 늘릴 경우 청년 실업만 늘리게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공실장은  “월급을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은행에서 은퇴했다고 해서 일자리 유동성이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은행은 주 5일제가 도입되기 2년 전부터 주 5일제를 시행했다. 교섭력이 있는 곳에서 먼저 도입하면 다른 업계도 따라올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젠 정년을 70세까지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고 일본의 이야기이다. 일본은 최근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퇴직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기업에 근로자 정년을 70세까지 늘리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검토 중이다. 일본은 개정 고령자고용안정법을 시행해 기업이 근로자들을 65세까지 고용할 것을 의무화한 바 있다.

 
국내의 정년 연장제는 일본을 허겁지겁 뒤따라가는 모양새이다. 사실 임금 피크제는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1일 기준으로 국내 총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9.5%에 달했다. 2018년에는 14%를 넘을 것이라는 것이 통계청의 예상이다.
정부는 최근 기업들의 정년 연장제 도입에 반가운 기색이다. 노동부는 지난 6월28일 ‘고용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내년부터 근로자 정년을 56세 이상으로 늘리는 기업에 월 30만원의 ‘정년 연장 장려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제조업체에는 혜택이 더 돌아가 60만원이다.
그러나 대기업은 장려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년 연장 장려금 제도는 ‘비전2030 2년 빨리 5년 더 일하는 사회 만들기(2+5)’ 전략의 하나이다. 물론 실효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하지만 최근 기업의 분위기와 정부 정책이 적절하게 맞물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국내에서 정년 연장제는 초기 도입 단계이다. 아직 현실과는 동떨어진 면이 적지 않다. 많은 은퇴자들이 하루아침에 ‘지공도사(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가 되어 거리로 산으로 내몰리는 것이 현실이다.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 회장은 “5년 더 일하기로는 성이 안 찬다. 지금의 정년 규정은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 우선은 60세 정년이 목표이고 곧 62세로 늘리는 것이 협회 목표이다. 따라서 60세 전에 받는 조기 노령연금 지급도 정년에 맞추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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