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없는 선택’이 ‘생 돈’잡네
  • 노진섭 기자 ()
  • 승인 2007.08.1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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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대형 병원, 선택진료제 악용해 비용 과다 청구…환자들만 이중삼중 피해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이지선씨(가명·36)는 지난 6월 초등학생 아들이 다리에 화상을 입어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입원 9일 만에 퇴원하면서 이씨가 병원에 지급한 진료비는 총 49만원. 진료비 영수증에는 진료비의 절반 정도인 23만원이 선택 진료비(특진비)로 책정되어 있었다. 이씨는 “그 병원 성형외과 의사가 한 명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환자 입장에서는 선택 진료를 강요당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흔히 특진(特診)이라고 불리는 선택 진료는 환자가 의사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이다. 환자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특정 의사를 선택해 양질의 진료를 받는 대신 돈을 더 낸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환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만큼 진료 만족도가 높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선택 진료에 대한 환자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는다. 병원으로부터 선택 진료를 강요받거나 자신도 모르게 예상치 못했던 진료비를 추가로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을 찾은 환자는 먼저 진료 신청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인적사항 등을 적은 진료 신청서를 접수하는 순간 진료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환자가 선택한 진료 과목에 필요한 검사·진단 과정 등 부가 진료 항목이 모두 선택 진료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병원이 합법적으로 선택 진료비를 부과하려면 환자에게 주진료 외에 부가 진료 항목에 대해 일일이 선택 진료 신청을 받아야 한다. 병원으로서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들은 2~3년 전부터 진료 신청서 하단에 ‘의료법 제37조의 2 제1항 및 선택 진료에 관한 규칙 제2조의 규정에 의하여 위와 같이 선택 진료를 신청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만능’ 진료 신청서를 만든 셈이다. 이런 내용을 모르고 진료를 신청한 환자는 줄줄이 부과된 선택 진료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도 병원으로부터 “이미 사인하지 않았느냐”라는 답변밖에 들을 수 없다.
유명하다는 의사를 선택해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은 박 아무개씨(70·여)가 3개월 동안 수술과 진료를 받고 병원에 낸 전체 진료비는 약 3천1백만원. 이 중 선택 진료비는 2백50만원 정도이다. 영상 진단 촬영, 마취, 신경과 등 부가 진료 항목에 예상 외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 것이다.
병원장은 일정한 자격 요건만 갖추면 재직 의사의 80%까지 선택 진료 의사로 쓸 수 있다. 전체 비율만 맞추면 되기 때문에 특정과의 경우는 100% 전원을  선택 진료 의사로 배정하기도 한다. 지난해 김영주 열린우리당 의원이 전국 32개 대학병원의 선택 진료 의사 비율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비율은 73%이고, 재직 의사 전부가 선택 진료 의사인 병원도 5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환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가거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선택 진료비를 지급할 수밖에 없다. 
선택 진료는 전문의 자격 인정을 받은 후 10년이 지난 의사나, 면허를 취득한 지 15년이 지난 치과의사 및 한의사, 대학병원의 조교수 이상이 맡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편법·탈법적으로 선택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일부 대학병원은 전문의를 딴 지 2~3년만 지나도 조교수로 임명해 선택 진료 의사로 배정한다. 의료시민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의 성남희 환자관리팀장은 “대학병원에 유독 젊은 선택 진료 의사가 많은 것도 전문의가 된 지 얼마 안 된 조교수가 많기 때문이다. 또 선택 진료 의사를 인기과로, 일반 진료 의사를 비인기과로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혜택 없어 환자 부담 ‘눈덩이’
이에 대해 대한병원협회 성익제 사무총장은 “일부 병원의 특정과가 100% 선택 진료 의사로만 구성되어 있어 환자들의 민원이 제기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일반 진료는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울 강북에 있는 한 대학병원의 순환기내과에는 6명의 의사가 있다. 이 병원 순환기내과 관계자는 “모두 선택 진료 의사이기 때문에 일반 진료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병원들은 선택 진료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지만 상대적으로 환자들은 이중삼중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보통 진료 항목에 따라 20%에서 100%까지 선택 진료비가 붙는다. 예컨대 수술비가 100만원이라면 선택 진료비 100만원이 붙을 수도 있다. 선택 진료비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환자가 꼬박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다. 보건복지부와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전체 진료비에서 선택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4년 5.8%에서 2006년 약 8%로 늘었다. 대한병원협회는 “진료 수입이 적어 상당 부분을 선택 진료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선택 진료가 편법으로 운영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뾰족한 보전 대책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5년 전 첫아이를 낳은 박 아무개씨(38)는 분만할 때 선택 진료 의사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선택 진료비를 내야 했다. 박씨는 “임신 때 선택 진료 의사를 지정했다. 그러나 실제 생명이 위독할 수 있는 분만 때는 레지던트만 있었다. 정작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순간에 환자가 원하는 의사를 보지도 못했는데 돈을 내야 하니 억울했다”라고 말했다.
선택 진료비 부당 부과에 대해 환자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민원을 제기하면 환급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 2003년부터 시행된 진료비확인신청 제도이다(위 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민원을 제기했다고 모두 환급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환자가 알았든 몰랐든 진료 신청서에 사인을 했다면 환급받기가 쉽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민원상담사는 “병원과 환자가 서로 대화한 것까지 평가할 수 없다. 서류를 근거로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료 신청서 사인 유무로 선택 진료 신청 여부를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선택 진료제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올해 안에 선택 진료비에도 건강보험 급여를 지급하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아예 선택 진료제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일각에서 일고 있다. 의료시민단체들은 지난 7월19일 서울대병원 등 서울에 위치한 5개 대형병원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실태 조사를 요구했다.
병원은 환자에게 진료 신청서를 받기 전에 선택 진료 의사와 일반 의사의 명단, 진료 시간표, 경력과 세부 전문 분야, 추가 비용 등을 충분히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또 환자는 일반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흐지부지 넘어가는 것이 선택 진료 제도의 현실이다.

 

‘울며 겨자 먹은’ 비용 환급받으려면

부당하게 선택 진료비를 냈거나 비급여 항목이 지나치게 많다고 여긴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진료비 확인 심사 요청을 할 수 있다. 심사 요청을 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해당 병원에서 환자의 자료를 받아 심의한 뒤 신청인에게 결과를 통보해준다. 평균 두세 달 걸린다. 인터넷을 이용한 신청 절차는 다음과 같다.
1.병원에 가서 ‘진료비 계산서’와 ‘진료비 세부 내역서’를 뗀다. 진료비 계산서는 3년 이내에 재발급된다. 진료비 확인의 법적 기한은 5년이다. 만약 환자가 진료비 계산서와 세부 내역서를 모두 갖고 있다면 10년 전의 것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2.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www.hira.or.kr)에서 종합 민원의 진료비 확인 요청을 클릭한다.
3.요청서를 작성한다. 휴대전화 문자나 이메일 수신을 선택하면 진행 상황을 쉽게 전달받는다.
4.진료비 계산서를 팩스로 보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민원상담부 전화 02-705-6571~4, 팩스 02-585-6905, 6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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