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빼기냐 제살 깎기냐 반값 정책, 그 반쪽의 진실
  • 유근원 기자 ()
  • 승인 2007.08.1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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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50% 세일에 빠졌다!” 반값 아파트, 반값 등록금, 반값 이동통신 요금, 반값 골프장 등 ‘반값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기업들은 아예 반값 전쟁에 들어갈 태세이다. LCD·PDP·TV 값은 당초 출시했을 때보다 절반 아래 가격에 팔리고 있다. LG·삼성·소니 등 주요 가전 회사들이 모델 교체를 앞두고 기존 모델 밀어내기 판매에 들어간 데다, 혼수 시즌 세일이 겹치면서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다.
너도나도 반값에 준다니 소비자들은 반가워하면서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바가지를 쓰며 속고 살았나 하는 의심을 털어놓는가 하면 설마 하며 남의 이야기로 흘려보내기도 한다.
과연 거품을 제거한 것일까? 아니면 제살을 깎아먹는 출혈 경쟁의 시작일까? 반값 붐의 실상을 알아본다.
반값 정책의 화두는 반값 아파트에서 비롯되었다. 진정한 반값이라면 상상만 해도 즐겁다. 반값 정책이 그동안 관행처럼 잔뜩 끼어 있던 거품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지난 4월26일 서울시 산하 SH공사(옛 도시개발공사)는 강서구 발산택지개발지구 2단지 및 송파구 장지택지지구 10, 11단지 분양 아파트의 분양원가 및 분양가 내역을 60개 항목에 걸쳐 공개했다. 그때 공개된 분양가는 주변 시세를 감안하면, 분양 아파트 평균 가격의 53~58%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량은 해당 택지지구에서 가옥이 철거된 원주민에게 전량 분양된다.
분양가 공개의 의미에 대해 경실련은 “서울시 아파트 반값 공급 가능성을 입증한 계기”라고 평가한 바 있다. 분양원가가 공개된 아파트는 모두 특별 공급 대상이므로 당장 주택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분양가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서울시에서 공개한 분양원가는 분양 시장에서 일부 건설 회사들이 알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비정상적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결국 거품 제거가 이루어지면 반값 아파트가 가능하다는 이론이 성립한다.

반값 골프장 둘러싼 세금 논란
반값 골프장과 관련한 논란은 논쟁을 거듭하면서 ‘세금을 얼마나 내릴 수 있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한국은 유일하게 ‘특별소비세’라는 명목으로 1만2천원을 그린피 안에 포함해 징수하고 있다. 1974년 일본 골프 관련법에서 따온 특별소비세를 30년 넘게 받아오고 있는 것이다. 체육 시설인 골프장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외에도 그린피에는 다양한 명목의 세금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부과되는 세금을 살펴보면 특소세 외에 교육세 3천6백원, 농어촌세 3천6백원, 체육진흥기금 3천원, 부가세 10%(약 2천3백원) 등 약 2만5천원이나 된다. 세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이 별도로 부과되어 그린피에는 직·간접세를 포함해 9만원 정도의 세금이 얹어진다. 결국 국내 골프장 그린피의 47%가 세금이다. 당연히 그린피가 비쌀 수밖에 없다. 정부가 세금 완화 정책만 내놓는다면 ‘반값 골프장’ 공급은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반값 아파트, 인근 주민에게는 ‘애물’
‘반값 아파트’는 적지 않은 후유증을 야기하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토지임대부 및 환매조건부 아파트 7백 가구를 국내 처음으로 오는 10월 군포 부곡 택지개발지구에서 분양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군포는 정부가 지난 1995년 4백20만㎡ 수용 인구 16만명 규모로 조성한 1기 신도시 산본과 인접한 지역이다.
그런데 정작 군포 주민들은 “지역 전체의 집값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명품 아파트를 지어 도시의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하는 데 반해 군포시에는 반값 아파트가 들어와 도시 가치를 하락시키리라는 것이 주민 불만의 요지이다.
정부의 반값 골프장 제안에 대해서도 해외 골프 여행객을 붙잡자는 의도에는 공감하면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애초 정부는 골프 수요를 국내로 전환시키기 위해 골프장을 이용할 때 내는 각종 세금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세수 감소를 이유로 기존 일반 회원제 골프장에 대해서는 특별소비세 등 현행 세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골프장 내 숙박 시설 건립도 종전처럼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경기도는 현행 골프장 요금에서 세금을 반값(2만1천원)만 징수할 경우 연간 매출액이 19억1천여 만원에 불과하고 관리비와 판매비, 건설 비용 원금 상환 등을 하고 나면 오히려 11억8천여 만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반값 골프장 정책이 추진되더라도 각종 부담금 및 세금 감면을 비롯한 건설 비용 일부를 공공 부문에서 지원하는 방안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대중 골프장의 경우 회원제와 달리 초기 투자 자금을 회수하는 데 20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연·기금, 공제회 등 여유 자금이 있는 기관이나 기업을 제외하고는 골프장 건설을 기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정부가 해외 골프 소비의 국내 전환을 목적으로 농민의 토지 출자 등을 통해 저렴한 골프장 공급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나 도의 여건을 놓고 검토한 결과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분석되었다”라고 말했다.

 

‘반값 신부’ ‘반값 세일’…기업에도 반값 열풍

 
건설 업계와 부동산 시장을 겨냥한 정치권의 반값 공세는 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몇몇 가전 업체들은 반값 세일에 승부를 걸고 있다. 제살을 깎아먹더라도 시장 선점 또는 방어를 위해 출혈 경쟁을 감수하겠다는 식이다.
최근 인터넷에는 ‘반값 신부’라는 키워드까지 등장했다. 한 여행 업체가 허니문 부부의 여행 상품을 팔면서 신부에게는 반값만 받기로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반값 마케팅이다. 해외 골프 여행객으로 타격을 받았다고 해서 나온 반값 골프장처럼 해외 여행에 피서객을 뺏긴 국내 호텔은 빈 객실을 ‘반값’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OK 캐쉬백은 8월 말까지 10, 20, 30일 총 3회에 걸쳐 1천2백30개의 상품을 반값에 판매하는 ‘반값 매장’을 연다.
캐주얼 브랜드들도 예년보다 빠르게 ‘반값’ 행사에 돌입했다. ‘지오다노’는 티셔츠·반바지·탱크톱 등 일부 품목에 한해 ‘buy 1 get 1 free’ 행사를 시작했다. 같은 제품을 두 개 사면 한 개 가격에 제공하고 가격이 다른 두개의 상품을 구입하면 싼 제품 가격으로 두 개의 상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일종의 ‘원 플러스 원(1+1)’ 행사이다. 지오다노가 반값 행사를 치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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