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비상등 ‘깜박깜박’
  • 왕성상 전문기자 ()
  • 승인 2007.08.13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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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부진→자금난→신용도 추락으로 고전…“외환위기 때로 돌아가나” 불안감 커져

 
국내 자동차 회사 2위인 기아자동차에 적신호가 켜졌다. 판매 부진, 자금난, 신용도 추락으로 ‘기아 호’가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여기에 노조 파업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회사가 부도에 이르렀던 ‘외환 위기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의 소리마저 나온다. 기아차가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된 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 기아차 부도 때 노조의 회사 살리기 운동에 나섰던 한 직원은 요즘 사태가 못내 걱정스럽다는 표정이다.
기아차 앞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복병은 판매 부진과 해외 법인의 재고 누적. 이에 따라 받지 못하는 자동차 대금이 늘고 있다. 지난 7월 내수를 포함한 기아차 판매 대수는 7만5천7백98대로 6월(11만2천4백40대)보다 32.6% 줄었다. 수출 감소율은 이보다 더하다. 현지 법인 판매 부진에 따른 재고도 쌓여 받지 못하는 외상값이 느는 추세이다. 1천2백5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 영업 적자 액수는 약 3백67억원. 치솟는 임금으로 곤두박질치는 영업 이익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기아차 임직원들의 임금 총액은 2003년 1조4천1백23억원에서 지난해 1조8천3백11억원으로 늘었고, 영업 이익은 2003년 8천1백24억원 ‘흑자’였으나 지난해와 올해에는 ‘적자’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
기아차 관계자는 “현지 법인 판매 부진으로 받지 못한 돈이 지난 3월 말 현재 3조2천억원쯤 된다. 전에는 3~6개월이면 자금이 돌아갔으나 외상 정리가 늦어지면서 차입 금액이 커졌다”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은행 빚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기아차가 지난해 말 공시한 재무제표 상에서 전체 차입 금액은 2조9천4백1억여 원. 그러나 지난 7월4일 현재 은행연합회가 집계한 금융기관 여신 총액은 5조9천1백50억여 원으로 편차가 3조원에 가깝다. 공시한 재무제표와 실제 차입 금액 간에 차이가 큰 것은 기아차가 해외 현지 법인에 판 자동차 대금의 처리 방법 때문이다. 기아는 각국 현지 법인에 차를 수출하면서 대금을 바로 받을 수 없어 수출한 자동차 실적을 담보로 한 은행 돈으로 빈 금고를 채운다. 이후 해외 법인에서 차를 팔아 대금을 보내오면 금융기관에 이를 갚는 방식으로 수출 차의 ‘외상값’을 유동화해서 현금을 끌어대고 있다.
기아의 자금난은 최근 한국신용평가정보(한신평)가 낸 ‘기아차 여신 현황 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금융권에서 빌린 돈(4조2천2백11억여 원) 가운데 회사채 등 유가 증권 발행액이 1조5천8백20억여 원에 이른다. 또 금융기관들이 보증을 선 빚이 1천94억여 원, 리스 채권이 23억여 원으로 집계되었다. 노조가 부분 파업을 시작했던 6월 말 여신액(5조8천6백71억여 원)의 8.4%였던 제2 금융권 차용 규모가 7월4일에는 10%를 넘어서는 등 신규 차입금이 높은 이자를 내야 하는 제2 금융권 위주로 이루어져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다.
‘기아 자금난’ 소문이 퍼지면서 기업 신용도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 한신평이 내놓은 ‘기아차 신용 분석 보고서’를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재무 구조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이다. 한신평은 “기아차의 차입금이 늘어나는데도 자금 부족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빚 갚을 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종합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사실상의 ‘유동성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선 셈이다.
한신평은 또 기업의 신용 전망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잣대(워치 등급표)에서도 기아차에 ‘위험’ 등급을 매겼다. 워치 등급표에서 ‘위험’은 ‘연체 및 연체에 준하는 신용 사건이 생긴 회사로 채무 불이행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한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현금 흐름 등급 역시 ‘CF3(보통)’을 받았다. ‘영업 활동의 현금 흐름은 양호하나 새 투자를 위해서는 외부 돈을 끌어다 써야 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현상 유지 이외에 자체적으로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환율 흐름도 기아 호에 큰 걸림돌이다. 수출 비중이 전체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환율 급락은 가격 경쟁력 상실과 채산성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2001년 달러당 1천2백91원이던 환율이 올해 9백40원 안팎으로 27% 이상 떨어졌다. 같은 기간 엔/달러 환율은 2.5% 하락에 그쳐 맞수인 일본 업체들과의 시장 싸움에서 뒤지고 있다. 기아가 ‘원 강세·엔 약세’의 이중 폭격을 맞는 형국이다.
해외 시장에서도 기아의 설 땅이 자꾸 좁아지고 있다. 6월 초 시장 조사 전문 회사인 미국 JD파워의 2007년 품질 조사에서 35개 브랜드 중 기아차가 11위였으나 상품성 조사에서는 평균 이하로 나왔다. 기아차는 1천점 만점에 7백42점(30위)으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국면 전환 노력도 노사 갈등으로 ‘별무 성과’

 
이와 함께 기아를 특히 괴롭히는 것은 노조의 장기 파업. 지난 6월28~2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파업을 시작으로 지난 7월20일까지 빚어진 기아차의 생산 차질은 2만5천37대, 매출 손실액은 3천6백33억원에 이른다.
위기의 기아차는 국면 전환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으나 성과는 미약하다. 노조원들에게 생산성 향상 및 판매 부진 타개를 위한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으나 노조는 되레 사측을 옥죄는 분위기이다. 기아차 노사는 지난 7월24일 △임금 5.2%(기본급 기준) 인상 △생계비 부족분 1백50% 지급 등의 협상안에 잠정 합의했다. 업계 안팎에서 적자 기업의 ‘퍼주기’ 논란이 일었지만 임금 협상을 빨리 마무리 짓고 노사 상생으로 생산성 향상에 나서자는 회사 쪽의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노조는 이 안마저도 조합원 투표를 통해 부결시켰다. 협상을 일찍 매듭지은 GM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와 달리 ‘노사의 씨름’은 끝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 인상이나 고용 안정이 파업으로 풀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6만원대면 차 한 대를 조립해내는 중국 공장과 90만원 가까이 드는 국내 공장 가격 경쟁력을 생산성으로 이겨내지 못하면 존폐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자재 값 상승, 해외 경쟁사들의 끊임없는 견제와 공격에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기아 호가 지난해부터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원화 강세와 엔저로 수출 시장에서 타격을 입고 자금난도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것으로 본다”라고 비상등이 켜진 기아차를 걱정했다.
이에 대해 기아차 경영진들은 ‘위기는 기회다. 곧 극복된다’라고 자신한다. 내년 하반기 신차 시판과 유럽 시장 진출이 안정화되면 정상을 되찾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갖고 있는 유가 증권과 업무용 부동산도 상당해 외환위기 때처럼 지급 불능 상태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견이다. 하지만 기아차는 같은 그룹 계열사인 현대자동차와 고질적인 노사 대립에 발목이 잡혀 체질 개선과 혁신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3년 내 예상되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지각 변동 때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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