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이력’에 가입 거절 자동차 보험 ‘횡포 운행’
  • 왕성상 전문 기자 ()
  • 승인 2007.08.1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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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사 대상 민원 늘어…보험료 인상 등 편법 동원도

 
손해보험회사들이 자동차 종합보험 계약 때 일부 고객들의 가입을 임의적으로 받아주지 않아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보험사들이 나름으로 정한 잣대를 들이대어 입맛에 맞는 고객들만 가입을 받아주어 불만을 사는 것이다. 더욱이 손보사들이 지난해 보험료를 올리면서 ‘장기 무사고 운전자 가입을 거절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에도 여전히 가입 거절 사례가 생겨나 기업 윤리마저 저버리고 있다.
자동차 보험 상품은 손보사가 취급하며 책임 보험은 법적 의무 사항으로 차를 가진 사람 누구나 가입하도록 되어 있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종합 보험은 다르다. 보험사에 따라 받아주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서 시끄럽다. 자체 인수 심의 규정을 만들어놓고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보험소비자연맹에 접수된 올 상반기 손보사들의 가입 거부 건수는 전체 민원 6백20건 중 74건(11.9%)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2건(8%)보다 늘어났다. 가입 거절 사례는 다양하다. 자동차 접촉 사고 기록이 있는 운전자, 사고율이 높은 지역 거주자, 외제차 소유자, 높은 할인율 보험자 등 여러 유형이다.

가입 조건으로 ‘공동 물건’ 내세워
경기도 안산에 사는 이 아무개씨는 가벼운 접촉 사고를 한 번 냈을 뿐인데 최근 보험 가입을 거절당했다. 이씨는 ‘공동 물건에 가입하라’는 보험사 권유로 어쩔 수 없이 36만원을 더 내고 보험에 들 수 있었다. ‘공동 물건’이란 손보사들이 공동 책임을 지고 해당 차 사고 때 보험금을 부담하는 것으로 보험 가입 때 보험료를 10~15%  더 내야 하는 제도이다.  
인천에 사는 여대생 박 아무개씨(20)는 얼마 전 등굣길에 차를 몰고 가다 가벼운 접촉 사고를 내 보험사를 통해 50만원 선에서 상대 차 피해를 보상해주었다. 작은 사고로 뒷마무리까지 끝난 터라 이에 대해 잊고 있었던 박씨는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러 갔다가 거절당했다. 거래 보험사가 재가입을 거부해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종합보험에 들지 못했다. 보험사는 박씨가 한 차례 사고를 낸 데다 나이가 너무 젊어 손해율(보험사에 손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인수(보험에 가입시켜주는 것)를 거부한 것이다. 박씨는 보험 중개법인을 통해 10여 보험사에 가입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한 뒤 책임보험만 들고 차주 이름을 가족 명의로 옮겨 종합보험에 들 예정이다.
부부가 10여 년 무사고 운전을 해오다 지난해와 올해 각 한 번씩 낸 접촉 사고로 모든 보험사로부터 보험 가입을 거부당한 김 아무개씨(41)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10여 년간 보험료를 1천만원 넘게 내고도 보험 처리한 액수는 1백여 만원에 머문다. 그럼에도 보험사가 손해율이 높은 고객으로 분류해 가입을 거절했다. 특히 죄인 취급하는 것 같아 몹시 불쾌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같은 사고 이력으로 차 보험 가입을 거부당한 것은 김씨만의 일이 아니다. 손보 업계에 따르면 최근 종합보험 가입을 위해 인천 지역 보험 중개법인 사무실을 찾은 고객 중 20% 정도가 1~2건의 사고를 냈다는 이유로 가입을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통사고피해자구호센터 오중근 본부장(손해사정사)은 “어쩔 수 없이 ‘공동 물건’에 가입해야 하는 고객도 비싼 보험료를 겁내 보험에 들지 않는 등 무보험 운전자들을 양산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오본부장은 또 “이에 따른 후유증도 심한 편이다. 접촉 사고 보상을 놓고 법정 다툼이 자주 이는 등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무보험 운전에 따른 불안감, 사고 때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사고율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 특정 지역 운전자들에 대한 보험 가입 거절 사례도 민원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차 사고로 보험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불만이 크다.
운전을 시작한 뒤 14년 동안 사고는 물론 교통 위반 과태료 한 번 물지 않은 직장인 손  아무개씨. 평택에 사는 그는 최근 자동차 보험 재계약 과정에서 불쾌감을 느꼈다. 그린화재해상보험에서 가입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가 사는 곳이 교통사고 다발 지역으로 종합 보험에 들 수 없다고 통보받은 것이다. 부천에 사는 김 아무개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삼성화재해상보험에 종합 보험을 들려고 했으나 차 사고가 잦은 지역 거주자로 분류되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부천에 사는 운전자들은 사고율이 높아 회사 규정상 종합보험 가입을 받지 않는다’는 담당 직원 이야기를 듣고 황당해했다. 게다가 김씨의 차가 소형(티코)이어서 보험을 받아줄 수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손보사마다 차이가 있기는 해도 가입을 받아주지 않는 지역은 전국적이다. 상당수 보험사들이 △서울 구로구, 금천구 △경기도 고양, 부천, 성남, 수원, 용인 △충청도(대전시, 천안시 제외) △전라도(광주시 제외) 등을 관리 지역으로 정해 보험 가입을 거절하고 있다.

무보험차 양산으로 이어질까 우려

 
현행법상 보험사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자동차 보험 계약을 거부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책임보험과 달리 종합보험에는 예외가 적용된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보험사로서는 지역 요소가 보험료에 잘 반영되지 않아 가입 단계에서 계약을 결정하는 제한 요소를 일부 두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익률 악화에 따른 보험사 부담을 가입자에게 떠넘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손보사들은 올부터 장기 무사고 운전자 보험료를 약 25% 올린 데 이어 최근 또다시 신규 가입자나 기존 계약을 바꾸는 사람들의 보험료를 5~7% 올리기로 해 운전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보험료 인상 외에도 각종 편법을 동원해 고객들에게 비용 부담을 안겨온 것으로 나타나 ‘손보사들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외제차 운전자에 대한 가입 거절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에 사는 전 아무개씨는 외제 승용차 종합보험에 들려고 했으나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공동 물건으로 책임 보험만 가입시켜 주겠다는 말에 화가 나 무보험 상태로 차를 몰고 다닌다.
높은 할인율 적용 보험 고객에 대한 거부 현상도 심각한 수준이다. ㅈ화재해상보험의 경우 설계사들에게 ‘새 고객이나 다른 보험사에서 오는 사람은 가입시키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 50대 운전자는 무사고 경력에 개인 운전 조건임에도 신동아화재해상보험에서 재가입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보험 분야 시민단체들은 차 보험 가입 거절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차 보험 가입 거절이 문제시되는 것은 자동차 보험이 사회 보장적 성격을 띠고, 사고를 대비한 버팀목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책임보험(한 명만 보상)이나 대물보험(1천만원 한도)은 법에 따라 들게 되어 있으며 종합보험 또한 교통사고특례법에 따라 형사 처벌이 면제되는 혜택이 주어지므로 가입자가 선택의 여지 없이 들어야 하는 보험 성격이 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험사들은 보험 인수 여부는 보험사 고유 권한이고 가입 조건도 절대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운전자의 사고 경력이나 가입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이다. 특별한 사유를 정해놓고 보험 인수를 거부한 적은 없다고 항변한다.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올해 2월 말 현재 1천6백만대를 넘어섰다. 자동차 보험이 ‘준조세’ 성격을 띠는 만큼 각종 명목의 가입 거부에 대한 제도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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