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1번가 흔드는 루퍼트 머독 ‘쇼크’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8.13 13: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쟁지들, 윌스트리트 저널 인수하자 흠집내기 열올려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만평
아홉 마리의 하이에나가 허허벌판에 모였다. 뭔가 먹이를 해치운 다음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여덟은 낄낄거리고 있다. 이 중 몸집이 작고 어린 하이에나는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네”라며 영문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다. 세계 최고의 미국 경제 전문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지난 8월1일자 오피니언 란 맨 아래 구석에 실린 시사 만평 ‘후추와 소금’의 내용이다.
이 오피니언 란에는 사설과 함께 WSJ 발행인 고든 크로비츠의 ‘발행인의 편지’가 실렸다. 사설과 크로비츠의 글은 모기업 다우존스의 경영권이 세계적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에게 넘어갔음을 알리고 WSJ의 보도 방침이 종전과 전혀 변화가 없을 것임을 강조하며 독자의 이해를 구하고 오해가 없기를 호소했다. WSJ은 이 외에도 1면을 포함해 같은 날짜에 모두 7페이지에 걸쳐 다우존스의 매각 사실을 기사화했다.
만평 ‘후추와 소금’이 가리키는 하이에나는 세상의 더러운 것을 물고 늘어지는 속성을 가진 언론을 빗댄 것이 분명하다. 어린 하이에나는 이번 경영권 매각을 두고 낄낄거리는 경쟁 언론사들에 둘러싸여 영문을 모르고 있는 WSJ 자신을, 아니면 ‘발행인의 편지’를 통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는 발행인 크로비츠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세상 물정’의 한 가운데에는 통칭 뉴스코프로 불리는 세계 거대 언론 기업 뉴스코퍼레이션의 사주이자 회장인 ‘타블로이드 킹’ 머독이 자리 잡고 있다.
뉴스코프는 세계 52개국에 걸쳐 다우존스 계열사를 포함해 신문사 1백70여 개 등 모두 7백80여 개의 언론 관련 회사를 가진 전체 매출액 2백71억 달러의 대기업이다. 매출액으로만 보면 북한 국민총생산(GDP)의 70%에 이르는 규모이다.

통큰 베팅으로 경쟁지들 기선 제압

 
호주에서 시작한 머독의 뉴스코프는 영국의 세계 최고급 신문 더 타임스와 발행 부수 4백만 부의 대중지 더 선에 이어 위성방송사 ‘B스카이B’를 소유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보수 우익 대중지 뉴욕 포스트를, CNN과 함께 미국 양대 케이블 방송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폭스 네트워크,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TV가이드, 인터넷 사이트 마이스페이스 그리고 굴지의 출판사 ‘하퍼 콜린스’ 등 신문·잡지·방송과 출판 및 인터넷망을 갖고 있다.
머독의 별명 ‘타블로이드 킹’은 그가 설립하거나 인수한 신문과 방송을 오로지 대중의 인기를 의식해 경영하면서 얻은 것이다. 특히 그가 운영하는 대중지의 대부분이 판형을 타블로이드로 하는 데서 온 말이기도 하다. 그는 또 고급지가 아닌 대중 신문도 충분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과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대중지의 대명사인 영국의 더 선이 최근 퇴임한 토니 블레어가 1997년 총리 직에 오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좋은 예이다.
머독은 다우존스 매입을 위해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며 밀어붙이기 식으로 매입 협상을 추진했다. 머독은 이미 20년 전부터 다우존스에 마음을 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간접적 매입 제의는 2년 전부터 해왔으며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한 것은 3개월 전이었다.
머독이 제의한 매입 자금 50억 달러는 다우존스의 대주주인 뱅크로프트 가문이 뿌리칠 수 없는 액수였다. 주당 제의 가격 60달러는 협상 당시의 시가(주당 32달러)에 무려 67%의 프리미엄을 얹은 것이었다. 주당 60달러는 다우존스 주가 사상 지금까지 최고가를 기록했던 지난 2000년의 70달러에 육박하는 것이다.
머독의 파격적인 가격 제의는 다른 경쟁자가 감히 넘볼 수 없도록 쳐놓은 장막이었다. 실제로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입질을 했다가 포기했다.
또 명예와 재정적 이익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뱅크로프트 가문 구성원들 간에 이견과 반목을 조장해가며 결국 거래를 성사시킨 교묘한 작전이기도 했다. 뱅크로프트가 구성원 30여 명 가운데 다수 원로들은 “어떻게 머독 같은 사람에게 월스트리트 저널을 넘겨주느냐”라며 거래에 반대했다. 그러나 시가 이상의 호가를 뿌리칠 뱅크로프트 가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우존스의 주가가 최근 몇 년간 절반으로 떨어지면서 회생의 기미가 잘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 머독의 제의를 뿌리쳤을 때 일반 주주 (클라스A)들이 다우존스 이사진에 제기할 문책성 법률 소송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뱅크로프트 가문은 이번 거래에서 머독이 면밀하게 짜놓은 그물에서 헤어나지 못한 셈이다.
머독의 대리인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도시와 휴양지를 여행 중인 뱅크로프트 가문 사람들을 이탈리아의 지중해 해변이나 체코의 프라하로 직접 찾아가 만나 1 대 1 설득을 벌였다. 다우존스 매각을 보도한 미국 언론은 이를 머독의 다우존스 스토킹이라고 불렀다.
다우존스는 발행 부수 1백80만 부의 전국지 WSJ 외에 다우지수와 경제 잡지 <배런스>, 홍콩에서 발행되는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 등을 소유하고 있다. WSJ의 인터넷판인 WSJ닷컴은 유료 가입자만 80만명이 넘는다.

뉴욕 타임스·파이낸셜 타임스 특히 민감

 
머독의 다우존스 인수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장 먼저 경악한 것은 WSJ 기자들이었다. 뱅크로프트 가문이 다우존스를 소유한 1백5년 동안 사주측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기사를 써온 기자들은 머독이 편집에 대해 간섭할 가능성 때문에 동요했다. 지금까지 34개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WSJ 기자들은 기사의 정확성·공정성 덕분에 독자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머독은 이같은 WSJ 내부의 부정적 반응을 잠재우기 위해 일단 5인의 편집위원회를 구성하는 데 동의했다. 이 5인 위원회는 WSJ 전임 편집국장과 전 연방 하원의원, 학자 등으로 구성되어 WSJ 간부의 임명과 해임에 대한 동의권을 행사함으로써 머독의 편집권 개입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기자들은 물론 외부 언론 전문가들도 편집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머독이 영국의 더 타임스를 매입한 뒤 당초의 약속을 무시하고 편집에 개입한 전례 때문이다. 하이에나 만평이 나온 또 다른 배경이다.
WSJ과 경쟁 관계에 있는 뉴욕 타임스와 국제 시장에서 WSJ의 최대 강적인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요즘 머독의 다우존스 매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 신문은 사설 등을 통해 ‘머독이 편집권에 개입해 WSJ 기사의 정확성과 공정성에 위해를 가함으로써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WSJ은 이같은 두 신문의 보도가 겉으로는 점잖고 언론 자유를 추구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새 사주가 WSJ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것이니 더 이상 믿지 말라’는 우회적 흠집내기 캠페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8월1일자 WSJ 사설과 발행인 크로비츠의 ‘발행인의 편지’도 이에 대한 반격이었다.
미디어 시장과 업계에서는 뉴욕 타임스와 파이낸셜 타임스의 이같은 보도 태도의 배경을 이들 두 신문의 위기감에서 찾고 있다. 머독은 “앞으로 WSJ의 유럽 및 아시아 취재를 강화하는 한편 미국 정치의 중심지 워싱턴 D.C.의 지국을 확대하고 당장 일반 뉴스 지면을 4페이지 늘리겠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대한 선전 포고이자 종합지 뉴욕 타임스와 경쟁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스코프 내 측근들은 10월 개국하는 폭스TV의 금융 전문 채널의 고급 콘텐츠 확보가 시급해 머독이 다우존스 인수를 서둘렀다는 것이다. 현재 독보적인 금융 경제 전문 TV인 CNBC도 그래서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