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과 신 냉전 벌이는 미국
  • 조홍래 (언론인·전 연합뉴스 외신국장) ()
  • 승인 2007.08.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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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정책, 현실성 잃어 실패…‘강온 대립 구도 만들기’도 ‘헛다리 짚기’

 
1946년, 1차 냉전이 시작되었을 때 윈스턴 처칠이 말한 ‘철의 장막’은 냉전의 상징어가 되었다. 이 장막은 유럽에서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동서를 분할했다. 반세기가 흐른 후 2차 냉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녹색 장막’(Green Curtain)이 쳐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는 부시와 푸틴이 장막을 치고 중동에서는 미국과 이란이 신냉전의 불을 지피고 있다. 특히 중동의 녹색 장막은 이란과 그 적대 세력을 갈라놓고 있다. 크게 보면 중동을 분할하고 있는 것이다. 2차 냉전의 발상지는 이라크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동에 새로운 냉전 전선을 형성한 가장 큰 책임은 부시 행정부의 전략 실패에 있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중동에 파견했다.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우방들을 규합해 이라크 탈출구를 찾기 위한 필사적 시도이다. 수니파 아랍정권들을 단결시켜 시아파 이란과 대결시키는 것이 목표다. 아랍 국가들에게 이라크 정부를 지지하든가, 아니면 핵으로 무장한 이란의 그늘에서 전전긍긍하든가 양자택일을 강요하자는 것이다. 미국은 맨입으로 우방을 설득할 생각이 없다. 대규모 군사 원조를 중동에 퍼부을 예정이다. 향후 10년간 이집트에는 1백30억 달러, 이스라엘에는 3백억 달러를 제공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국가들에도 상당 규모로 물량 공세를 할 예정이다.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동시에 중동을 순방하는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게이츠 장관은 워싱턴을 떠나면서 “미국은 중동의 영원한 동맹으로 남을 것”이라는 함축적 메시지를 발표했다. 두 장관의 순방 목적은 이란의 등장에 대한 중동 국가들의 불안을 불식하고 중동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이란 혁명 이후 미국은 군주제를 타도하고 등장한 이란의 신권 체제를 고립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중동의 세력 균형은 지난 18개월 동안 이란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국무장관·국방장관 중동 파견은 이례적
팔레스타인 영토에서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파타 강경파들이 2006년 1월 민주 선거에서 승리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처음 실시된 선거에서의 승리이다. 그만큼 상징성이 크다. 그러자 군부는 파타 세력 중 미국을 등에 업은 강경파를 부추겨 가자 지구 장악을 시도했다. 레바논에서는 지난해 여름 극단주의 시아파 민병대인 헤즈볼라가 이란제 무기로 이스라엘과 전쟁을 했다. 이스라엘 창건 후 가장 긴 전쟁이었다. 미제 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휴전으로 막을 내렸다. 이란의 우방인 시리아는 외국 지하드(성전) 투사들을 이라크로 잠입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란 무기로 무장한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강경파들은 중동에서 평화를 정착하려는 미국의 전략 목표를 좌절시키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이란에 의해 무장되고 훈련된 시아파 민병대가 바그다드 거리와 요새화된 ‘그린 존’까지 유린하면서 이라크 주둔 미군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란은 지금 유가 상승, 사담의 붕괴, 헤즈볼라와 하마스의 승리로  의기양양해져 마치 중동의 맹주가 된 양 으스대고 있다. 1기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기획을 담당했던 리처드 하스 외교관계회의 의장은 이 새로운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란의 승승장구에 비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딜레마로 궁지에 몰려 있다.
2차 냉전의 뿌리는 9·11 이후 미국이 적으로 간주한 정권을 제거하기로 한 부시 행정부의 결정에서 비롯되었다. 첫 번째 목표물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었다. 이들 두 세력은 공교롭게도 이란의 적이기도 했다. 미국은 이제 전통적으로 이라크가 담당한 이란 견제 역할을 대신 떠안았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사담 후세인 시절이 더 좋았다는 이상한 소리까지 나온다. 미국 국가안보회의 및 CIA의 전 관리였고 지금은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인 브루스 리델은 사담과 탈레반이 무대에서 사라지자 이란을 주축으로 한 연합전선은 지난 5년간 무한정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동서 양쪽으로 완충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란은 마음껏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란의 탁월한 전략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실수 때문이다. 이란은 역사가 자기 편이라고 믿을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고 오만해졌다. 
이란이 평화적 핵에너지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는 것도 이런 요인들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어리석게도 새로운 냉전을 맞아서도 낡은 냉전 수법을 적용하고 있다. 1940년대 소련은 동구 공산주의를 발전시키고 서방의 침투를 막기 위해 철의 장막을 낮추었다. 라이스 국무장관이나 게이츠 국방장관 같은 소련 전문가들은 녹색 장막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들고 나왔다. 이 정책은 이란과 연계된 극단주의 블록을 봉쇄하고 중동에서 미국 동맹들의 이익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신냉전에서 미국과 이란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유사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 18개월 동안 미국은 2척의 항공모함을 이란 해역에 배치하고 이란을 제재하는 두 건의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채택했다. 또한 이라크 내 이란 첩자들을 체포하고 이란 내 민주주의 고양을 위해 올해에 7천5백만 달러, 내년에 1억8백만 달러의 예산을 편성했다. 그밖에도 이란을 향한 정보 교란을 목적으로 한 비밀 작전을 시작했다.

현실 제대로 못 보는 ‘착시’가 문제

 
이에 맞서 이란은 도로용 폭탄, 박격포, 240mm 로켓포 등을 이라크 민병대에게 추가 공급하고 이스라엘과 싸우는 헤즈볼라에게도 무기를 공급했다. 하마스에는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주고 이란 내 미국인들을 간첩혐의로 체포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싸우는 탈레반에 무기를 공급했다.
그러나 신냉전은 과거의 그것처럼 개념이 분명하지 않다. 이 냉전에서는 무엇이 이슈인지 드러나지 않고 누가 누구 편인지 알 수 없다. 중동 문제 분석가였던 조지타운 대학의 폴 필러 교수는 지금의 냉전에서는 피아(彼我)가 구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 중근동연구소의 패트릭 클로슨은 신 냉전의 문제는 녹색 장막의 선이 어디를 지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를 고립시키려 하고 있고 친미 아랍 정권들은 그들대로 하마스와도 제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미국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붕괴시켜 더 이상 이스라엘과 친미 세력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시도하지만 대다수 레바논 주민들은 헤즈볼라를 이스라엘로부터 자국을 보호하는 합법적 세력으로 보고 있다.
라이스와 게이츠는 이라크에서 미국의 녹색 장막을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를 설득했다. 그러나 미국 의회조사국의 케네스 카츠만은 이란 위협론만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끌어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 정부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미국은 주장한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이 지원하는 이라크 정부가 이라크 내 이란계 시아파를 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니파 형제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 적대 세력을 녹색 장막 뒤에 가두려는 미국의 정책은 비틀거리고 있다. 심지어 워싱턴의 동맹들 사이에서도 손발이 맞지 않는다. 미국은 극단주의 그룹과 온건 그룹 사이에 전선을 형성하려 하지만 그런 그룹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의 신냉전은 결국 미국이 보는 세상을 나타내는 것일 뿐 중동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필라는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로빈 라이트는 8월1일자 칼럼에서 신 냉전은 실체가 없는 것이며 중동 정책에서 실패한 부시 행정부가 궁여지책으로 꺼낸  방편이라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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