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 세계에도 ‘재벌’ 있다
  • 유근원 기자 ()
  • 승인 2007.08.2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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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에 따라 권리금만 최고 1억원…하루 순이익 1백만원 올리는 곳도

 

서울 인사동 한 7층 건물 앞. 도자기를 파는 70대 노부부가 눈에 띈다. 노부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건물 처마 밑에서 전통 찻잔 등 자기류를 파는 노점상이다.
늘어놓은 제품은 1천원짜리 그릇부터 3~4만원짜리 고려청자나 이조백자 모조품까지 다양하다. 노부부의 손님들은 인사동 거리를 구경나온 가족이나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대부분이다. 노부부의 매대에는 항상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주말이면 쉴 사이가 없다. 하지만 노부부는 하루 평균 수입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다문다. 주변 상가 주인들이 도자기 노부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그들이 바로 그 7층 건물의 소유자라는 사실뿐이다.
탈세 사각지대에서 활기 치는 재벌 노점
노점상에도 등급이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어 나왔다”라는 생계형 노점부터 하루 매출 1백만원 이상 올리는 기업형 노점까지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에서 노점이 생겨난 지 20~30년 이상 흐르면서 노점 세계에도 부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른바 노점 재벌이다. 마치 재벌 기업처럼 문어발 식으로 노점을 운영하는 기업형 노점이 있는가 하면 상가를 가지고 있으면서 주변에 노점을 차리는 프랜차이즈식 노점도 나타났다.
‘대한민국 노점상 1번지’라고 불리는 서울 명동의 중앙로. 이곳의 노점상들은 전국 노점상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명동에서 노점을 할 수만 있다면 로또복권 당첨 행운과 맞먹을 정도로 인생을 보장 받은 셈이다. 그래서 명동은 ‘노점상의 엘도라도’라고 불린다.
지난 8월15일 오후 5시께 명동 중앙로는 공휴일을 맞아 평일보다 두 배의 인파가 몰렸다.
명동의 노점은 오후 5시부터 연다. 노점상끼리 만든 상조회에서 약속한 사항이다. 각자 정해진 위치에 매대가 설치되면 본격적인 장사가 시작된다. 인근 노점상을 돌아다니며 어떻게 장사를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냥 삼촌 도와주러 나왔어요.” “저는 아르바이트생입니다.” “저는 그런 거 몰라요.”
노점상들은 모두 모르쇠 작전으로 나온다. 명동 노점 정보는 1급 대외비인 셈이다.
명동 노점은 판매 아이템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최소 월평균 8백만원 이상의 순이익을 보장받는다. 좋은 노루목에 잘 팔리는 유행 제품을 적절히 구비한다면 “좋은 자리는 하루에 1백만원 이상의 수익도 가능하다. 권리금이 1억이라도 반년만 고생하면 권리금은 뽑고 남는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명동이나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중심가에서 노점을 차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노점 창업 사이트 운영자들의 결론이다.
노점상닷컴 운영자는 “노점 수가 많아 줄여야 할 판국인데 만약 자리가 나온다 하더라도 누굴 소개해주겠나? 자식에게 대물림하거나 주변 노점상끼리 은밀히 거래되는 것이 전부이다”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노점은 음성적으로 거래되며 권리금은 위치에 따라 최고 6천만∼1억원에 이른다. 권리금을 내고도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재벌형 노점으로는 서울 지역만 해도 명동 외에 종로, 남대문이나 동대문. 강남대로 동편, 건대 전철역 입구, 신촌 대학가 등을 꼽을 수 있다.
노점 재벌은 부수입을 노리고 주변에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자리를 선점해 다른 사람에게 ‘깔세’를 놓기도 한다.  ‘깔세’란 임대 기간만큼의 금액을 한꺼번에 지불하는 월세를 이르는 은어이다. 이들은 구청의 단속 예정일도 미리 알아 몇몇이서 서로 공유한다. 구청에서 단속이 나오면 할머니나 장애인을 동원해 단속반을 막아내기도 한다.
동대문 노점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한 학생은 “노점상이 아니라 부(富)점상이다. 리어카를 끌고 와서 장사를 하고 일이 끝나면 외제차를 타고 돌아가는 노점상이 수두룩하다”라고 증언했다.
노점 세계에는 정글의 법칙이 존재한다. 기존 노점과 수차례 자리 다툼 끝에 겨우 자기 자리를 확보한 노점상은 나중에 새로 노점을 차리려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더욱 악랄해지기 마련이다. 자칫하면 신규 노점상의 경쟁 상품으로 생존권마저 위협받기 때문이다. 노점상이 자꾸 늘어나면 단속 대상이 되어 한꺼번에 퇴출된다는 걱정도 따른다.

 
폭력 조직도 개입…자리 다툼 ‘살벌’
지난 2003년 서울 강남역 7번 출구 앞에 호떡 노점을 차린 청각장애인 이송규씨(52)는 허락 없이 장사를 한다며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이씨의 동생에 의하면 “이씨를 집단 구타한 일당은 당시 강남역 7번 출구부터 CGV극장까지의 노점을 장악한 조직이었다. 이들은 점포별로 깔세를 받거나 아르바이트생을 이용해서 직접 장사를 해왔다. 폭행 사건으로 결국 경찰서까지 갔지만 이 사건은 흐지부지 끝났고 폭행을 당한 형은 병원을 전전하다 삶을 비관해 자살까지 시도했었다. 현재는 정신적으로도 상처를 입어 피폐한 상태이다”라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노점상 간의 치열한 자리 다툼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 생겼다. 자리 다툼 알력이 심하기로 유명한 인천 부평에서 벌어진 일이다. 영종도 부근 해변가에 위치한 노점은 ‘꼴망파’라는 조직폭력배가 장악을 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허락 없이 노점을 차리면 바지선을 끌어다놓고 훼방을 놓는다. 또한 스스로 단속반을 만들어 노점상을 몰아내고 관리 당국의 담당자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떠벌리기도 한다.
황금 노점을 놓고 실력 행사를 벌이는 단체는 유형도 다양하다. 지역별로 조폭이 개입하는 사례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줄어든 편이다. 서울 명동은 노점상끼리 뭉쳐 만든 상조회가 구성되어 스스로의 권익 보호와 법칙을 만들어간다. 남대문시장 일대는 남대문시장 주식회사가 인근 노점을 관리하고 통제한다. 전국 규모로는 전국노점상연합회가 있다. 이들은 1980년대 이후 자체 결성되어 회원의 권익 보호를 위해 관리 당국이나 기타 세력에 대해 실력으로 대항한다.
 최인기 전국노점상연합회 정책위원장은 “노점상 중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생계보호대상자는 2.6%에 불과하다. 노점상 70~80%는 정부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차상위 계층이다. 최근 문제가 되는 기업형 노점은 나머지 18% 중에 해당할 것이다. 전노련은 1인이 직원을 두고 2개 이상의 노점을 운영하거나 전문으로 깔세를 놓는 행위가 적발되면 회원에서 제명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신도시 노리는 ‘원정 노점’

노점이 하나의 상권으로 자리 잡으면서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이른바 원정 노점이다. 재벌 노점상들은 판매에 열을 올리기도 하지만 원정 노점에 더 관심이 많다. 기존에 관리하는 노점은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기고 정작 자신들은 더 좋은 자리를 확보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쓴다. 판매 수익도 수익이지만 권리금 수익이 더 짭짤하기 때문이다. 재벌급 노점상들은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정보를 들으면 몇몇이 함께 뭉쳐 원정을 나선다. 신도시의 좋은 노점 자리를 선점하고 노점을 차리기 위해서이다. 자리 문제로 동네 건달이 시비를 걸면 노점 조합원이 뭉쳐서 방어막을 구축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 자리가 잡히면 상당한 권리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팔고 또 다른 원정 노점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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