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보수 대공세’ 권력 이동 재촉하는가
  • 소종섭 기자 ()
  • 승인 2007.09.0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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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 말 증후군이 오는 것인가. 최근 잇달아 터진 일련의 사건으로 노무현 정권이 임기 말에 위기를 맞고 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마지막이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포문이 열린다는 데 있다. 여야 정치 세력의 사활을 건 대회전인 대선 승부를 앞두고 상대방의 힘을 빼는 전투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최근 정국을 뒤흔든 사건은 변양균 대통령 정책실장이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가짜 박사 학위 의혹을 제기한 장윤 스님을 회유했다는 의혹과 정윤재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이 뇌물이 오간 국세청 국장과 건설사 사주의 만남을 주선한 사건이다. 이 두 사건에는 주목해볼 만한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우선 두 사건은 각각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특종했다. 보수 성향으로 노무현 정권과 각을 세워온 두 신문은 정보력을 과시하면서 최근 여론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묘하게도 조선일보가 포문을 열고 동아일보가 폭탄을 터뜨린 형국이다. 모든 언론이 지금 두 신문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언론들은 변실장과 관련해서는 ‘변실장 뒤에 누가 있나’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고, 정 전 비서관과 관련해서는 ‘뇌물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경선 이후 한나라당 쪽에 줄대려는 흐름 보인다”
정보가 사정 당국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으로 보인다는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불교계에서는 장윤 스님이 변실장과 접촉했던 내용을 사석에서 이야기한 것이 언론으로 흘러갔다고 보고 있다. 장윤 스님을 잘 아는 한 불교계 인사는 “장윤 스님은 평소 검사·변호사들과 잘 어울렸다. 이번 사건도 그가 평소 친하게 지내는 법조계 인사들과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 언론으로 흘러가 보도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장윤 스님이 언론 보도 이후 화들짝 놀라 몸을 숨긴 것도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이 펼쳐진 것에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8월28일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윤재 사건’을 보도했다. 1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고 검찰이 정 전 비서관에 대한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종결했는데, 그의 이름이 신문 지면에 새삼 등장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뇌물을 받은 국세청 정상곤 국장이 구속되고, 정씨가 청와대를 그만둔 지 10여 일이 지난 뒤였다.
한국일보도 가만 있지 않았다. 국세청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친인척 11명의 재산을 조사해 보고서까지 작성했다는 내용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이 또한 검찰 조사 과정에서 파악된 내용인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언론으로 흘러나갔다. 청와대 주변에서 “수사 내용이 막 흘러나온다”라며 검찰에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유이다.
정·재계 흐름에 민감한 정보통들은 한나라당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뒤에 동시다발적으로 언론에 대형 사건이 공개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경선을 할 때와 비교해보면 경선이 끝난 이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정보 업무에 종사해온 한 정부 기관 관계자는 “최근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얼마 전과 비교해볼 때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한나라당 쪽에 줄을 대려는 흐름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종합하면 ‘보수의 대공세’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보수 언론들의 특종이 검찰 등 특정 세력과의 결탁 속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은 잘못 보는 것이다. 당사자가 특정 기자에게 작심하고 정보를 흘리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흐름이다. 정보가 어디로 흐르는가는 힘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와 통한다. 최근 두 사건은 정보가 ‘보수’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성이 있다.
이 때문에 레임덕 문제가 거론되는 것이다. 그동안 “레임덕은 없다”라고 공언해온 노무현 정권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할 일을 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워왔다. 정부기관의 한 고위 인사는 “지난 2002년 대선 때 막판에 노무현 후보가 판을 뒤집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본 공직자들이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까지 레임덕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들이 터진 뒤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지금 4대 권력 기관들의 발이 묶여 있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자체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정치 관련 보고서도 만들지 않을 정도로 몸조심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과 국세청은 이명박 후보의 재산을 들여다본 사실이 드러나면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이런 일을 기획한 배후를 밝혀라”라는 한나라당의 공세에 직면하면서 오히려 관련자들이 징계를 받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검찰도 대선판에 섣불리 행보하기가 어려운 처지이다. 오는 11월이면 정상명 총장의 임기가 끝나는 데다가 수뇌부가 섣불리 어떤 결정을 내릴 경우 조직에 분란이 일 수 있다.
정 전 비서관 사건과 변양균 정책실장 개입 사건을 ‘권력형 비리’로 규정한 한나라당은 총공세에 나섰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보수 언론이 제기한 문제를 받아 김대중 정권을 공격하던 모습과 닮은꼴이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지난 8월30일 “정 전 비서관 문제는 어물쩍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이 정권의 비리를 철저히 뿌리 뽑겠다”라고 말했다.

 

독 오른 언론들 “걸리기만 해봐라”
한나라당은 두 사건과 국가정보원·국세청의 이후보에 대한 조사 사건까지 묶어 특검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국세청과 국정원 등 국가 기관을 총동원할 수 있는 곳은 한 곳뿐이다. 배후를 철저히 밝혀야 한다. 검찰이 재수사를 안 한다면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호재를 만난 한나라당은 사건의 실체에 관계 없이 이 사건들을 대선판에 십분 활용할 태세이다. 일각에서 ‘권력형 비리’라고 섣불리 규정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게이트’ 요소를 갖춘 사안을 대선 국면에서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묻혔다.
한나라당의 공세가 청와대를 직접 겨냥하자 민주신당도 반격에 나서고 있다. 민주신당 김효석 원내대표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증을 피하기 위해 한나라당이 물타기를 하고 있다”라며 ‘도곡동 땅’ 문제를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추석을 얼마 앞둔 지금 이런 상태가 유지된다면 대선 민심을 영영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민주신당측은 조만간 반격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원내대표는 9월 정기국회는 ‘검증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민주신당 민병두 의원도 “추석 전에 한두 개는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한 바 있다. 민주신당측은 법사위 소속 의원들과 손학규·정동영·이해찬 등 유력 후보들의 측근 의원들이 나서 한나라당 이후보를 향해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주변에서는 민주신당측이 조만간 이후보의 부동산 축재 의혹이나 ‘경제 지도자’ 이미지를 허물기 위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여야는 9월 국회에서 면책특권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네거티브 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노대통령이 레임덕을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변실장 사건과 달리 정 전 비서관 사건은 노대통령에게 직격탄이다. 노대통령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정씨와 노대통령은 1986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20년 동안 ‘동지’로서 동고동락한 사람이다(24쪽 딸린 기사 참조). 검찰이 정 전 비서관을 재수사할지는 두고보아야겠으나, 여론 흐름으로 보아 그냥 넘어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전임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아들들의 비리 문제 때문에 임기 말에 고생했다.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노대통령은 이런 측면에서는 문제가 불거진 적이 없다. 그러나 여러 군데에서 측근 비리가 불거질 조짐이 보인다. 벌써부터 ‘다음은 ○○○’라는 소문이 나온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측근 비리가 한두 개 더 터진다면 노대통령은 급속히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노대통령 입장에서 상황이 더 좋지 않은 것은 대언론 관계가 거의 최악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해 일선 기자들은 물론 편집·보도국장까지 나서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일선 기자들 사이에서는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라”라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국회를 출입하는 한 석간 신문 기자는 “노무현 정부만큼 기자들을 자괴감에 빠뜨린 정부는 없다”라고 말했다. 마치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놀고먹는 존재인 것처럼 기자들을 공박하거나 언론 보도에 얼마나 잘 반박하는가를 공무원들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 등에 고개를 젓는 것이다. 이미 특종 경쟁에 독이 오른 기자들은 그동안 쌓아놓은 파일을 들추며 정권 핵심과 관련해 촉수를 바짝 세우고 취재에 나서고 있다.
보수의 대공세는 정치·언론 영역에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양동안 교수는 최근 발간된 <한국사 시민강좌 41호>에 기고한 글에서 “조정래씨가 쓴 <태백산맥>은 허위의 기록이다”라고 주장했다. 전남대 김재호 교수는 <시대정신> 가을호에서 박노자 노르웨이 국립 오슬로 대학 한국어학과 교수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진보 계열 지식인에 대한 이들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의 비판은 보수 그룹이 과거와 달리 자신감을 갖고 좀더 공세적인 관점에서 대선에 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수의 대공세는 이제 서막이 올랐다. 지난 대선 때의 경험을 기억하는 보수 세력은 한 표라도 더 끌어 모으기 위한  집요한 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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