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신당” “그래도 민주당” 두 쪽 난 호남 표심
  • 소종섭 기자 ()
  • 승인 2007.09.0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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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선택’을 둘러싼 정치권의 관심이 뜨겁다. 한나라당은 ‘사상 최초’인 두 자릿수 지지도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른바 ‘서진 정책’이다. 물밑에서는 여권 내 호남 세력의 주도권을 놓고 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한창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기회 있을 때마다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의 힘을 빼기 위해 열심이고,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그런다고 죽지 않는다며 DJ에 맞선다. 이처럼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각 정치 세력은 현재 호남 전선에 진을 쳤다.
<시사저널>은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호남(광주·전남·전북) 지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호남 민심의 향배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8월29일 이루어진 조사는 구조화된 설문지를 사용해 비례할당 및 체계적 추출법에 따라 표본을 추출해 전화로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표본 오차는 95%에 신뢰 수준 ±3.1%이다.
조사 결과 호남의 민심은 민주신당 지지와 민주당 지지로 거의 정확히 나누어졌고, 한나라당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DJ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여전하다고 보면서도 그가 민주당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못마땅해 하는 정서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지금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민주신당과 민주당이 단일 후보를 낼 경우 몰표를 줄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었다.
 
<시사저널> 조사에 따르면 호남 지역 유권자들은 차기 대통령감으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론되는 대선 후보들 가운데 이후보가 23.9%를 얻어 1위를 차지해, 2위인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12.7%)를 11.2% 앞섰다. 3위는 9.9%를 얻은 민주신당 손학규 후보가 차지했고, 민주당 조순형 후보는 2.8%를 얻어 4위에 올랐다. 민주신당 유시민(2.2%)·이해찬(2.0%) 후보와 독자 노선을 걷고 있는 문국현 후보(2.0%)가 뒤를 이었다.

민주신당과 민주당 지지율 차이 4.6%
이명박 후보는 전반적으로 다른 후보들을 앞섰지만 특히 20대와 50대, 전남 지역, 4백1만원 이상 고소득 계층에서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다. 정동영 후보는 상대적으로 전북에서, 손학규 후보는 전남에서 지지도가 높았다.
이후보는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호남 지역을 적극 공략하는 전법을 쓰고 있다. 1997년과 2002년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호남을 공략하는 데 실패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영남 출신인 그는 앞으로 ‘영·호남 화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더욱 적극적으로 호남 공략에 나설 것으로 예측된다. 이후보는 지난 8월18일 “한나라당 후보가 되면 충청 세력 나아가 호남 정치 세력과도 힘을 모을 계획을 갖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8월21일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중도개혁 후보를 뽑아 당선시킨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이후보와 연대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라며 딱 잘랐다.
이후보의 한 측근은 “민주당과 연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여러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호남 지역 여론주도층 인사들의 지지 선언을 이끌어내거나 선대위 등을 조직에 끌어들이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이후보측은 또 호남 지역과 정책적으로 연대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을 내놓아야 경제적인 소외감과 한나라당에 대한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 이 지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연대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호남 유권자의 65.4%가 ‘없다’라고 응답해 아직까지 ‘한나라당-민주당 연대’는 가상 시나리오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가능성이 있다고 한 답변은 22.4%에 그쳤다. 주로 학생층과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위 두 항목에서 보면 호남 지역의 정치 지형을 바꾸고 있는 것은 20대 유권자들이다. 이들이 이후보를 적극 지지하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연대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호남 선배들에게 던지고 있는 형국이다. 취업난 등에 시달리는 이 세대가 ‘경제 지도자’ 이미지가 있는 이후보에게 나름으로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그러나 아직 낙관하기는 이르다. ‘모르겠다’거나 응답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36.7%에 이르기 때문이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이사는 “이것은 통상적인 경우보다 6~7% 높은 수치이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호남 유권자들이 많다고 볼 수 있다”라고 해석했다. 얼마 전 민주신당 천정배 의원이 “호남이 (정치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다”라고 진단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당 지지도는 어떨까. 지난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전남 지역에서 4.63%를 득표했다. 광주 지역에서는 3.58%에 머물렀다. 그때를 기억하는 한나라당 사람들은 최근 호남 지역에서 당 지지도가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것에 크게 고무되어 있다. 과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이명박 후보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 같은 이는 “한나라당이 지금처럼 호남 지역에서 15%를 득표할 수 있다면 대선에서 반드시 이긴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한때 ‘호남 지역에서 한나라당 지지도가 30%를 넘었다’라는 말이 정가에 나돌았으나, 제대로 된 조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이번 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도는 14.7%로 나타났다. 대통합민주신당(민주신당) 28.3%, 민주당 23.7%에 이은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은 8.8%였다.
한나라당이 호남 지역에서 두 자릿수 지지도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12월 광주일보 조사가 처음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유기준 대변인 명의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초의 일로서 한나라당은 그동안 동서 화합과 균형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한나라당은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호남의 품에 더 가까이 안기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는 성명서까지 냈다. 이때 이후 한나라당은 호남 지역에서 꾸준히 두 자릿수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특히 연령별로는 20대, 직업별로는 학생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정당 지지도에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민주신당과 민주당의 치열한 각축이다. 민주신당이 4.6% 앞섰으나 이것은 오차 범위 이내이다. 두 정당이 현재 서로 호남을 뺏기 위해 혈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 팽팽한 정당 지지도에 그대로 드러난다. 전남 지역과 60세 이상이 주로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점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이 민주신당 태동 이후에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전남 지역에서만 민주당이 4.3% 앞섰고, 광주(4.6%)와 전북(12.5%)에서는 민주신당 지지도가 더 높았다.
 
민주신당과 민주당의 이런 물밑 각축은 ‘범여권 단일 후보’ 가능성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측면이 있다. 현재 정가에서는 대선 막판이 되면 민주신당과 민주당 후보가 단일화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두 정당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대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강력한 지지세를 바탕으로 이른바 ‘민주신당과 민주당 갈라놓기’ 작전을 펼칠 태세이고, 밑바닥 여론 또한 갈라졌다. 지금 상태에서 양측 간 감정의 골이 조금 더 깊어지면 ‘단일 후보’가 물 건너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시사저널> 조사 결과 ‘민주신당과 민주당이 단일 후보를 낼 가능성이 있다’라고 답한 사람은 50.5%였다. ‘가능성이 없다’는 의견은 34.8%였다. 가능성이 있다고 본 사람이 과반수를 넘기는 했으나 예상보다 적은 수치였다.
하지만 민주신당과 민주당이 단일 후보를 낼 경우 호남 유권자들은 ‘단일 후보’를 압도적으로 높게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단일 후보’,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3자 구도가 된다면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단일 후보를 지지하겠다”라고 답변한 사람이 55.1%에 달했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이사는 “모르겠다거나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 19.1%도 막판에는 단일 후보 쪽으로 기운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사실상 74% 이상이 단일 후보를 지지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라고 답한 사람은 19.0%였고,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사람은 6.9%였다.
호남 유권자들은 또 손학규 후보가 민주신당 대선 후보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누가 민주신당 대선 후보가 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27.0%가 손후보를 꼽았다. 2위인 정동영 후보는 21.9%를 얻었다. 3위는 5.7%를 얻은 이해찬 후보였다.
하지만 ‘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1위였다. 민주신당 경선 방식(1인2표)으로 질문한 결과 정동영·손학규·이해찬 후보 순으로 1,2위 지지 후보 사이에 변동이 없었다. 정동영 후보가 46.5%, 손학규 후보가 31.4%, 이해찬 후보가 14.5% 순이었다. 최근 민주신당 후보군에 합류한 추미애 전 의원이 12.8%를 얻어 4위에 오른 것이 눈에 띄었다. 얼마 전까지 민주당에 있었던 추후보는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지지를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DJ의 민주당 비판에는 다소 비판적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손학규 후보가 민주신당 대선 후보가 될 것으로 보는 호남인들의 여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만큼 정후보에 대한 표의 충성도가 높지 않고, 심정적으로 손후보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선 가능성’은 본인의 의지보다도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나 전반적인 흐름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로 볼 때 정동영 후보가 호남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확고한 비전을 보여주어야만 호남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태대로라면 그는 ‘전북의 대표 주자’ 위상을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 같다. 햇볕 정책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바탕 삼아 호남을 공략해온 손후보는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좀더 현실적인 토대를 갖추는 데 진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호남 유권자들의 최근 최대 관심사는 DJ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현실 정치와 관련한 발언을 계속하는 DJ를 바라보는 호남인들의 정서는 어떤 것일까.
밑바닥 여론은 팽팽했다.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44.4%로,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의견(41.4%)을 근소하게 앞질렀다. 바람직하다는 쪽은 20대와 민주신당 지지층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은 50대와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민주당이 스스로 50년 전통에서 벗어났다”라는 DJ의 언급에 대해서는 반대 결과가 나왔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44.4%로, ‘공감한다’라는 의견(43.2%)을 아슬아슬하게 앞질렀다. 한마디로 ‘DJ가 현실 정치와 관련한 얘기를 하는 것은 좋지만, 민주당을 비판하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DJ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언급이 현실 정치에 실제로 영향력이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53.5%가 그렇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주로 40대와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이런 답이 많았다. 대통령 직에서 퇴임했지만 호남 유권자들에게 미치는 DJ의 영향력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DJ도 이것을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의 발언을 둘러싸고 논란이 인다 해도 정치적인 언급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만 혹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호남인들의 정서를 등에 업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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