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발림 ‘세금 공약’을 경계한다
  • 변용환 (한림대 교수·경영학) ()
  • 승인 2007.09.0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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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임금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절반 이상이 세금을 내지 않는 위치에 있다. 전체 근로소득자의 상위 10%가 근로소득세 전체 징수액 중 93%를 내고 종합소득신고자 가운데서는 상위 20%가 전체 종합소득세액의 80%를 낸다. 증세를 한다면 대개 상위 10~20%가 더 부담할 것이고, 더 거두어들인 세금은 국민 복지를 위해 여유 있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 선거 때 과연 어떤 세금 공약이 득표에 유리할까. 유권자들이 세금과 복지를 연결해 후보를 고른다면 당연히 ‘증세’를 주장하는 쪽이 될 것이다. 세금을 더 부담할 사람은 소수에 머물 것이고 세금을 내지 않거나 적게 내는 대다수 유권자들은 증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 선거에서는 그렇지 않다. 빈부 차가 심한 미국의 경우 세금 인상과 복지 확대 공약을 내놓는 후보의 득표력이 높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표를 얻는 데 불리했다는 것이 여러 연구 결과에서 잘 나타났다. 세금은 눈에 잘 보이지만 복지는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민주당·공화당 가릴 것 없이 증세 이야기는 꺼린다. 보수 정당인 공화당은 늘 공약으로 감세안을 내놓고 민주당은 성격상 증세가 필요하지만 쟁점화시키지 않는다. 유럽은 역사적으로 세금과 사회 복지가 연결되어 선거에서 최대 이슈로 자리 잡아왔다. ‘평등’을 지향해온 프랑스 사람들은 최근 극단적 감세를 주장한 사르코지 대통령을 뽑았다. 그의 감세 정책에는 초과 근무 소득에는 면세한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다.

대선 주자들, 유권자 의식해 ‘증세’ 회피
어떤 이유에서든 세금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국내 언론사 조사에 따르면 ‘세금을 더 많이 걷더라도 국민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항목에서 찬성(36.4%)보다 반대(49.6%)가 많았다.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 방법을 묻는 항목에서는 다수가 ‘정부 예산 절감’(53.6%)을 꼽았다. ‘세금 증대’를 꼽은 사람은 4.5%에 그쳤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직접적 대안은 증세이다. 그럼에도 응답자들은 애써 세금을 피한다. 감세가 표 얻기에 유리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인지 1992년 대선에서는 선거 전에 발표하기로 되어 있던 서울시의 토지 관련 지방세 19.3% 인상을 갑자기 미루었다. 표를 의식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보 정당은 복지를 위해 증세를, 보수 정당은 시장 효율을 위해 감세를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는 늘 증세를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감세를 부르짖어왔다. 2006년까지만 해도 그랬다. 올 들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7월22일 정부는 3조5천억원의 감세 효과를 내는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에 한나라당은 보수 정당의 전매 특허격인 감세 정책을 로열티도 못 받고 도용당한 것처럼 맹비난하고 있다. 그런 한나라당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원희룡 의원은 골수 진보 정당에나 적합한 ‘연봉 4천만원 이하 근로자 근로소득세 폐지’를 당내 경선 때 주장했다. 이명박 후보가 수용을 고려중인 박근혜 전 대표의 ‘줄푸세’(세금을 줄이겠다는 것) 공약도 그렇다.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좋으나 대안 제시가 없는 것 같다. 노령 사회에서 느는 복지 비용 충당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얘기이다. 진보 정당이라 할 수 있는 민주신당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은 손학규 후보는 보수 정당의 단골 메뉴인 ‘규제 철폐 및 감세’를 줄곧 주창하고 있다. 정동영 후보 역시 유류세 25% 감면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 선거는 어차피 지역 정서 이용, 감성 자극, 네거티브 전략 등으로 결판나니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그냥 기분 좋은 감세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된다는 것인가. 조세 정책은 나라 운명과 방향을 결정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성장과 복지,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괴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세금 공약이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 있는 조세 정책은 어느 역사에도 없었다. 이번 선거부터는 제발 정책 선거가 되어 감세와 복지를 동시에 이야기하는 ‘인기몰이’ ‘무개념’ 후보를 솎아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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