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되새김질을 멈추어달라
  • 조홍래 (언론인·전 연합뉴스 외신국장) ()
  • 승인 2007.09.1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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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9·11 테러 행사 ‘피로감’ 점차 커져…기념 방식 놓고 대립도

 
9·11  6주년이 되었다. 공포의 그날로부터 2천1백91일이 흘렀다. 6주년을 악몽의 그날과 같은 화요일에 맞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또다시 사람들은 그 순간을 회상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거창한 기념식이 열리고 언론은 열띤 취재를 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무심한 쇼핑이 한창이었다.
대체 이런 일들이 필요한 것인가? 해마다 같은 열기와 관심 속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가? 솔직히 해가 갈수록 9·11 피로감이 느껴진다. 모두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그날의 악몽을 짓궂게 되살리는 일에 지쳐가는 것이 사실이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이 피로감은 첫 번째 기념일 때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날을 기억하고 그때 사라진 사람들을 애도하고 있다. 하지만 거창한 기념식이나 행사들은 다소 과도하고 공허하다.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죽었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이다. 하지만 산 사람도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쯤해서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다.” 매사추세츠 주에 사는 한 수석 간호사의 심정이다.
그날 ‘그라운드 제로’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장황하게 호명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순간의 묵념으로 대체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반박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그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신경은 아직 날카롭다. 세계무역센터에서 여동생을 잃은 한 여성은 9·11 행사를 축소하자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싫으면 행사에 참석하지 말라. TV를 끄거나 행사장에서 떠나라. 6년이면 족하다고? 난 몇 년이 흘러야 충분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삶에 바쁘다 보니 온 나라가 하나의 사건에 매달리는 일은 서서히 빛을 잃고 있다. 공포의 순간을 기념하는 일은 세계적으로 많다. 일본은 인류 최초로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럽인들은 1차 대전 종전을 기념한다. 하지만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치욕의 날을 기억하는 미국인은 몇명이나 될까? 별로 없는 것 같다. 미국 역사에 불행한 상처를 남긴 다른 사건들도 차차 망각 속으로 사라져간다. 케네디 암살(1963년 11월22일), 오클라호마 폭파 사건(1995년 4월19일) 등도 마찬가지이다. 9·11 이후 미국은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도 겪었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고뇌를 안고 있다. 인디애나 대학의 존 보드나 교수는 기념식은 상황을 단순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의 삶과 감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고 말했다.
9·11 테러는 오랜 여운을 남길지 모른다. 이것은 미국 역사의 분수령이었다. 또한 사건 발생 날짜를 따서 명명된 비극이다. 하지만 이를 회상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올해에는 처음으로 사건 발생 장소인 무역센터에서 추도식이 열리지 않았다. 건설 공사 때문이다. 유족들은 그라운드 제로를 지나며 잠시 묵념을 하도록 했다. 의식은 부근 공원에서 거행되었다.
9·11은 미완의 사건으로 뇌리에 살아 있다.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서성거리고 이라크 전쟁은 미궁에 빠져 있으며 대권 후보들은 심심하면 이 사건을 들먹거린다. 9·11을 다룬 책도 계속 발간된다.
“행사보다 교회의 종을 울려달라”
이 사건을 상술에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분노와 슬픔을 상품화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9·11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외상정신의학연구소 소장 찰스 피글리 박사는 “사람들이 기념식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은 좋은 조짐이며 죽은 사람에 대한 결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리학자 로리 펄먼은 사회가 슬픔을 오래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추도만으로도 충분하며 더 이상 9·11 얘기 듣기를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부 유족들의 말은 딴 판이다. 기념식을 축소하거나 아예 중단하자는 얘기는 마치 홀로코스트 유족들에게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중단하고 기억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누구도 타인의 슬픔을 중단시킬 권리는 없다는 말은 진실이다. 한 유가족은 “6년은 눈 깜작할 순간이다. 숫자는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너무 괴로워 식에 참석하지 않고 TV를 보는 유족도 많다. 이들은 TV를 보면서 유족들끼리 전화를 걸어 슬픔을 달랜다. 딸을 잃은 한 어머니는 “우리 딸이 잊혀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족들도 9·11의 기념 방식을 놓고 의견이 갈라지고 있다. 어머니를 잃은 26세의 딸은 교회 종을 울린다든가 묵념을 올리는 식으로 뭔가 애도의 뜻을 표시하는 의식이 아니라면 형식적인 기념식은 그만 두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 딸은 또 추도는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모든 도시가 애통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한 단체는 9·11을 위해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블로그를 만들었다. 20년 혹은 30년 후 9·11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많은 사람이 형식적인 기념식은 피곤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블로그에는 지난해에 15만명, 올해에 4만명이 방문했다.
9·11 당시 누가 어디에 있었느냐에 따라 사건의 투영도 달라진다. 뉴욕 대학의 역사학 교수 조나탄 지머만은 그린위치 빌리지의 워싱턴 스퀘어를 걷고 있었다. 그때 걸인이 다가와 무역센터가 불타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후 그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후회 막급했고 자신이 부끄러웠다. 교수는 그 후 누구의 말이든 경청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9·11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9·11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러 드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9·11 얘기가 다소 권태롭더라도 거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9·11이 어차피 미국인의 일상 속에 잠재된 이상 9·11에 피로를 느끼는 것보다 9·11과 친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9·11에 대한 관심은 역사 속으로 잠복할 것이다. 10년, 25년, 50년 정도야 인위적으로 9·11 기억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수백 년 후 9·11의 운명을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망각이다. 남북 전쟁의 기억이 아득해진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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