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되는’ 기초예술, 산 채로 죽는가
  • 명운화 (소설가) ()
  • 승인 2007.10.0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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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 호전될 기미 없어…선진국 사례 참고해 보호·육성해야

 
우리나라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에서 소극장이 사라지고 있다. 유흥 업소의 무차별적인 난립으로 소극장들이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학로의 80%가 유흥 업소로 변질되었다. 또한 남아 있는 소극장마저 뮤지컬에 자리를 넘겨주고 순수 연극을 공연하는 소극장은 손꼽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현재 대학로 소극장의 절반 가까이가 뮤지컬을 공연 중이다.
대학로에서 뮤지컬이 성행하는 이유는 뮤지컬에 젊은 관객이 몰리기 때문이다. 비주얼적이고 가벼운 것을 선호하는 젊은 관객들의 성향과 뮤지컬의 특성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뮤지컬 붐의 영향으로 기존 소극장들은 뮤지컬 극장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개·보수를 서두르고 있으며 연극 배우 지망생들은 뮤지컬 쪽으로 몰리고 있다.
오늘날 대학로의 현실은 현재 우리나라 기초예술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에 불과하다. 다른 예술 분야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미술 시장으로 돈이 몰리면서 인기 작가의 그림 값이 치솟고 있다. 이른바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들이 미술 경매 시장의 그림 값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군의 작가들을 보고 전체 미술계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들 인기 작가는 전체 작가의 2%에 불과하고 나머지 작가들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김달진미술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미술인의 약 60%가 월수입 1백만원 이내이며, 이 중 30%는 전혀 수입이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대부분의 미술인들이 시간제 강사나 일용직 노동자로 연명을 하고 있는 것이 미술계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문학 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문학 평론가 임헌영은 공지영의 작품을 소설의 마지노선이라고 평했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작가의 작품을 마지노선이라 부르는 마당에 신인 작가 작품은 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출판계에서도 웬만큼 이름 있는 작가의 책이 아닌 다음에는 책을 출판하지 않는다. 인지도가 있는 몇몇 작가들의 글이 문예지에 실릴 뿐 신인 작가들은 명함을 내밀기조차 힘든 것이 문단의 현실이다.
참여정부는 문예진흥원을 민간 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바꾸었다. 하지만 정부는 문예위 출범 이후 지금까지 기초예술 문제에서 손을 떼고 있는 양상이다. 민간 기구로 바뀐 문예위는 기금 문제로 내홍을 겪다가 지금은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위원들을 각 예술 분야의 대표로 정하다 보니 전문적이고 내실 있는 경영보다는 서로의 기득권과 자금 확보를 위해 이전투구하는 양상이 되어버렸다.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 기구에 책임을 떠넘기고 방임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매년 문예위 지원금을 줄여나가고 있는 형편이다.

예술인에 대한 공적 지원 체계 절실
이런 와중에 피해를 보는 것은 기초예술에 종사하는 예술가들과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국민들이다.
2006년 12월30일 문학·음악·미술 등 10개 분야 문화예술인 2천명을 상대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벌인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창작 활동 수입 월 평균 1백만원 이하’라는 응답이 전체의 56%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문학 분야는 심각했다. ‘월평균 수입 1백만원 이하’라는 답변이 응답자의 97.5%에 달했다.

 
이런 결과는 곧 문화예술의 수혜자인 국민들의 문화 생활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문화관광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문화 향수 조사 결과, 2005년 6월~2006년 5월 중 1회 이상 예술 행사를 즐긴 사람은 65.8%였다. 2003년보다 3.4% 늘어난 수치이지만, 이는 대부분 영화 관람객 증가 때문이었다. 다른 분야는 크게 줄었다. 미술전시 관람객은 10.4%에서 6.8%로, 클래식은 6.3%에서 3.6%로, 전통예술은 5.2%에서 4.4%로, 연극과 뮤지컬은 11.1%에서 8.1% 감소했다.
기초예술의 위기는 우리나라만 겪는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대응 방식은 우리나라와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먼저 선진국들은 예술에 대한 국민 의식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중앙 부처 예산에 개인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우리나라보다 많다. 예술인 사회보장제도 또한 정착 단계에 있다.
영국은 국립 복권 전체 수익의 6분의 1을 예술과 관련된 사업에 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순수 부처 예산보다 많은 액수이다. 프랑스의 경우도 문화 예산 1% 달성과 문화적 예외 등 기초예술을 중요시하는 정책 비중이 높고, 독일도 ‘예술인사회보장법’에 의해 예술인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예술과 인문학을 창조적인 분야로 우대하고 있으며 독립 기구인 미국교육협회(NEA)를 토대로 각 주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예술 교육과 학습을 포함한 기초예술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1960년대부터 ‘학교 안 시인 프로젝트’ ‘예술인과의 만남’ 등을 도입했다. 뿐만 아니라, 예술인을 각급 학교에 고용해 예술을 영어·수학·과학처럼 핵심 교과로 대우했다. 교육과 예술인이 함께 보호 받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프랑스는 데뷔전을 여는 화랑에 50%의 비용을 지원하고, 화랑은 수익금의 절반을 화가에게 제공한다. 예술인협회가 연극·무용·음악 등의 작가나 단체를 추천하면 문화부가 25%의 제작비를 지원한다. 이와 같은 혜택으로 한국인을 포함해 파리시에서 주택과 작업실을 제공 받는 화가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강봉석 문화관광부 예술국장은 “예술 작품을 통한 문화상품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예술 콘텐츠 연구센터’를 건립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국장은 또 “기초예술을 중심으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콘텐츠를 생산해 미래 성장 동력으로서 예술을 부각시켜야 한다. 그리고 복지재단, 금고, 공제회 등 복지 관련 재원을 조성하고 일자리 창출과 고용 안정 대책을 마련해 예술인들에 대한 공적 지원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기초예술은 문화 인프라로서 공기 중의 산소와 같은 공익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기초예술을 보존하고 발전시킬 책임이 있다. 한때 잘나가던 한류가 주춤하는 것도, 급성장하던 영화 산업에 제동이 걸린 것도 문화 인프라인 기초예술의 허약함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다.
기초예술의 단기적인 효용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국민의 정서와 지적, 문화적 수준을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중요성은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위기는 기회이다. 지금이야말로 민관이 힘을 합쳐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을 갖고 기초예술 진흥에 주력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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