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광고계도 “UCC 없인 못 살아”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7.10.0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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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칸 국제광고제 수상작 페스티벌 / 내용은 공익성·휴머니즘이 대세

 

잘 만들어진 광고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촌철살인의 미학을 담은 ‘예술’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런 대량 소비 시대의 ‘예술’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판이 열리고 있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10월4일부터 17일까지 창의력 올림픽이라 불리는 ‘제54회 칸 국제광고제’ 수상작을 상영 및 전시하는 ‘2007 칸 국제광고제 수상작 페스티벌’이 그것이다. 10월13일부터 21일까지는 부산 시네마테크에서도 볼 수 있다. 이번 페스티벌에는 칸 국제광고제에서 필름 부문을 수상한 1백30여 편과 인쇄·옥외 부문을 수상한 2백여 점 등 총 3백편이 넘는 작품을 볼 수 있다.
칸 국제광고제는 클리오 광고제, 뉴욕 페스티벌과 함께 세계 3대 광고제 가운데 하나이며 그중에서도 첫손에 꼽힌다. 필름·인쇄·옥외·사이버·미디어(매체 기획)·DM(Direct Marketing)·세일즈 프로모션·라디오·타이타늄 및 통합 부문 등 9개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출품작의 0.2~1% 정도만이 수상을 차지하는 가운데 바늘구멍을 통과한 수상작들은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들로, 보는 이들이 무릎을 칠 만한 기발한 상상력을 선보인다.
이번 54회 광고제의 화두는 UCC와 사이버 세계의 입소문 격인 ‘바이럴 마케팅’이었다. 특히 새로운 광고 영역으로 인정받는 UCC를 활용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선보였다. 지난해에 주목되었던 바이럴 마케팅에 대한 관심도 여전했다.
사이버 세계 ‘바이럴 마케팅’ 관심도 여전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필름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P&G의 도브 광고인 ‘진화(Evolut-ion)’이다. 양 옆으로 삐친 머리, 광대뼈가 튀어 나온 얼굴선, 잡티 많은 평범한 얼굴을 한 여성이 자리를 잡으면 스타일리스트가 그녀의 화장과 헤어스타일을 고친다. 마지막으로 포토샵 작업을 통해 눈·코·입 모양은 물론 얼굴선·목의 길이까지 변형하면 광고 간판에 실리는 화려한 전문 모델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묘사한 작품이 ‘진화’이다. 평범한 외모가 ‘화장발’과 ‘뽀샵’ 과정을 거쳐 미인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통해 왜곡된 외모지상주의를 풍자하는 한편, 도브를 쓰면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은근히 부추기고 있는 것. 우리가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성형 연예인 변천사를 동영상으로 만들어놓은 느낌이다.
이 필름 작품은 바이럴 마케팅을 목적으로 인터넷에 유포한 UCC 동영상을 TV용으로 전환한 것이다. 유튜브에 올려진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2백만명이 감상했고, 남성 버전 등의 각종 패러디 작품이 만들어졌다. 인터넷에서 시작했기 때문인지 칸 광고제 최초로 필름 부문과 사이버 부문에서 동시에 그랑프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올해 칸 광고제의 또 다른 화두는 공익성과 휴머니즘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옥외 광고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네드은행’ 광고이다. 이 광고는 내용보다는 세계 최초의 태양열 광고판이라는 점이 수상의 요인이었다.‘사람들에게 전력을(Power to the People)’이라는 제목의 이 옥외 광고는 광고판이 태양열 집광기로 이루어져 주변의 초등학교 식당에 전력을 공급하도록 되어 있다. 이 작품과 끝까지 경합을 벌인 작품은 맨해튼에 설치된 BBC의 인터랙티브 광고판이다. 게시된 뉴스 사진과 함께 상반되게 제시된 두 단어에 대해 휴대전화로 투표를 하고 그 수치가 바로 집계되는 방식이다. 두 작품의 경합에 대해 한 심사위원은 ‘두뇌와 마음 중에서 결국 마음이 이겼다’라고 평가했다.
칸 광고제 수상작 대부분은 세계의 주요 글로벌 광고 그룹에 속해 있는 대행사에서 만든 것들이다. 그중에도 3대 그룹인 IPG, WPP, Omnicom이 세계 광고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가끔씩 태국과 같은 주변국들이 수상한 경우를 살펴보면 이런 글로벌 광고대행사의 현지 법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광고 업계도 1위 업체인 제일기획을 빼고는 글로벌 업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엘지애드는 WPP그룹에 속해 있고, 금강기획 역시 WPP 계열인 오길비 앤드 매더에 넘어갔고, TBWA 코리아 또한 한국 광고 시장에 자리 잡았다.
“한국 부진은 서양과 다른 문화 코드 때문”
한국은 이번 광고제에 7개 부문에 총 1백58편을 출품했지만 농심기획의 츄파춥스 광고 ‘복어’만이 옥외 광고 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제품 이미지를, 막대를 물고 부풀어올라 있는 복어로 형상화해 재미를 주고 있다. 이전에도 우리의 작품은 영화 <달콤한 인생>과 <4인용 식탁>의 홈페이지가 사이버 부문에서 금상을 받은 것 외에는 주요 부문에서 금상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런 결과의 원인으로 ‘우리식 정서’가 심사위원 대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서양 사람들의 이해를 방해한다는 점이 꼽힌다. 방송통신대 미디어 영상학부의 강승구 교수는 “우리는 서양과 문화 코드와 서술 구조에서 차이를 보인다. 서술어가 맨 마지막에 오는 우리의 언어 체계가 광고의 서술 과정에도 분명히 반영되며 이런 점이 서양 사람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광고 영상 문법에서의 차이가 수상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매체 이용이나 메시지 전달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메시지 전달에서 우리 광고는 설명적인 반면에 서양의 광고는 하나의 메시지만을 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은유적이고 파격적인 표현이 가능해진다. 광고주의 태도도 또 하나의 주요 원인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내 광고주들은 광고가 직접적인 매출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제품의 특성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광고를 선호한다고 한다.
결국 해외 광고제에서의 부진을 우리 광고계의 창의력 부족 때문이라고 탓할 수만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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