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프랑스를 유혹할 생각뿐이었다”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7.10.0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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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평전 <여명의 밤> 큰 인기…1년 밀착 취재에 의한 정밀 묘사 돋보여

 
'여성보다는 프랑스를 유혹하려는 남자, 그래서 여성의 입장에서는 매력 없는 남자.’ 최근 사르코지의 인간적 면모를 다룬 책을 저술한 프랑스의 인기 여류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촌평이다. 레자는 자신의 히트작 <예술>이 3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공연될 정도로 유명한 프랑스 최고의 인기 작가이다. 취임 5개월 만에 프랑스를 진동시키고 있는 야심적 정치인이 여성에게는 무관심하고 매력이 없다는 말은 파격적이다. 여성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인물이 과연 성공한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생긴다. 사르코지를 1년간 동행 취재, 저술한 레자의 사르코지 평전 <여명의 밤(Dawning Night)>은 출판이 되기 전부터 서점가에서 화제에 올랐다. 현직 대통령에 관한 책이라서가 아니라 파격적인 내용 때문이다. 이 책은 엘리제궁의 사르코지와 보통 인간으로서의 사르코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얘기들을 담고 있다. 레자는 대선 출마 후 엘리제궁에 입성하기까지 1년 동안 사르코지를 밀착 취재했다. 심지어 사르코지의 사적인 모임에까지 동석했다.
이 책의 특징은 여류 작가와 정치인의 조우에서 생긴 사소한 것들을 섬세하고 우아하게 묘사한 데 있다. 사르코지의 정치적 승리는 이 책의 관심 밖이다. 모든 초점은 권력을 향한 한 인간의 집착에 맞춰졌다.
초판 10만부를 찍은 1백90쪽짜리의 이 책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서평도 다양하다. 르 파리지엥은 “비범한 인간에 관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했고 르 몽드는 “때로는 비정하고 때로는 잔혹하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이야기”라고 평했다. 한 잡지는 책에 나오는 두 사람의 대화는 질투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레자에게 사르코지는 하늘이 준 배우이다. 흐르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우주를 창조하려는 충동을 가진 인물이 곧 사르코지이다. “나는 내 개성을 창조했다”라고 사르코지는 레자에게 고백했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매료되고 감동을 받고 인내심까지 잃는다. 그러나 화를 내지는 않는다. 그녀의 펜은 마치 조각칼같이 사르코지와의 대화를 명주실처럼 풀어낸다. 사르코지는 레자처럼 유명한 작가가 자기처럼 불 품 없는 인간에 관해 기술했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꼈다고 말했다. 심지어 사르코지는 “당신이 나를 악마로 묘사했더라도 그것이 나를 치켜올려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권력을 향한 사르코지의 내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이 나온 직후 엘리제궁 대변인은 사르코지가 아직 책을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그러나 내용이 진실을 반영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엉뚱한 말을 했다. 자신은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녀는 “난 진실 따위는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내 작품 속에 없다”라고 말했다. 작가나 사르코지나 참 별나다는 인상을 준다.
 
사실 <여명의 밤>에는 현실 문제에 대한 토론은 없다. 예를 들어 비틀거리는 경제, 실업 문제, 이민 문제 같은 것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헤드라인을 장식한 사르코지의 아내 세실리아의 스캔들에  관한 대목도 한 줄도 없다. 세실리아가 사르코지의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작가의 변명이다. 일부 언론 보도와는 다른 얘기이다. 작가는 줄담배를 피우는 사르코지에게만 집중했다. 외계 동물을 관찰하는 식이었다. 속이 텅 비고 불안정하고 그러면서 영특하고 때로는 짜증나는 인간… 결함투성이이면서도 본능과 권력의 유혹에 이끌리는 사르코지를 해부한 것이다. 사르코지는 스스로 말도 잘하고 남의 말을 듣는 것도 잘한다. 이런 일은 보통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다.
야스미나 레자 “내 책 속에 진실은 없다”
선거 유세가 한창이던 어느날 사르코지는 르 피가로를 펼쳐들었다. 이란과 자신에 관한 뉴스가 1면에 대서 특필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르코지의 눈길을 끈 것은 하단에 실린 광고였다. “야! 이거 참 근사하군… 롤렉스 시계 말이야.” 사르코지의 입에서 나온 탄성이었다. 사르코지의 체구는 행동 반경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이것도 작가에게는 소재가 된다. 필자는 사르코지를 “어린애 같다”라고 표현했다. 옷, 넥타이, 심지어 웃음까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표현했으니 말이다. 사르코지는 음식을 빨리 먹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약간 살도 쪘다. 사르코지가 식사를 하는 속도와 작가가 그를 관찰하는 속도는 비슷하다. 당연히 52세의 사르코지가 체중 감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뉴스도 아니다. 파리 마치는 미국에서 휴가 중인 사르코지의 사진을 약간 날씬하게 보이도록 편집해서 게재했다.
사르코지는 허장 성세가 심하다고 작가는 묘사했다. 언젠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오찬을 하고 나오면서 측근에게 한 취중 농담이 인용되었다. “토니와 나는 중대한 결정을 했어. 유럽을 정복하기로 말이야.” 투표 직전 자신의 집무실에 관해 언급한 대목도 흥미롭다. “나는 당선되면 파리에 궁전을 지을 것이야. 랑부이예에는 성채를, 브레가뇽에는 별관도 만들고…”
사르코지는 화를 잘 낸다. 측근이나 정적들을 툭하면 속물로 매도한다. 레이더 사이트를 방문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뱉은 말은 정말 엉뚱하다. “정말 싫다. 지도를 바라보는 멍청한 인간들에게 포위될 게 뻔하다. 30분 걸려 작전 센터에 가고 또 30분 걸려 알츠하이머 센터에 가야 하다니… 빌어먹을. 마지막 유세 날에 지도나 바라보고 있으라니 정치적 센스 하나는 좋군, 정말.”
러시아와 체첸에 관한 프랑스 전문가들과의 오찬에서는 상식을 초월하는 말도 했다. “외교부는 무용지물이야. 이것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야.” 그러면서 러시아와 레바논 주재 프랑스 대사들을 바보·멍청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그 사람들을 경멸해. 모두 겁쟁이들이야.”
대선에서 경쟁자였던 사회당의 세골렌느 루아얄이 자신의 승리에 도움을 주었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했다. “프랑스에서 영(零)이 된다는 것이 꼭 불리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작가는 사르코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그에게서 어떤 남성적 매력을 느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간단했다. 사르코지는 ‘목석’이라는 것. 취재 기간 내내 사르코지는 단 한 번도 이 여류 작가에게 남성으로서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르코지가 유혹하려고 한 건 프랑스였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덧붙인 말이 의미심장하다. “도대체 여성을 유혹하지 않는 남성과 1년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 모욕감을 느낄 정도였다.”
사람들은 사르코지 특유의 개성을 ‘전천후 대통령’이라고 비꼰다. 9월의 마지막 주만 해도 그는 헤드라인을 독점했다.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센트럴파크에서 티셔츠 바람으로 조깅을 했다. 한 TV 다큐프로그램에서는 1993년 학교 인질 사건 당시 어린이를 구출하는 사르코지의 모습을 방영했다. 가는 곳마다 뉴스의 각광을 받는 것을 두고 지나친 쇼라는 비판도 나온다. 야당인 사회당은 사르코지가 TV를 독점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사르코지는 오히려 당당한 표정이다. “낮잠이나 자려고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가 그의 답변이다. 사실 시라크는 낮잠을 즐겼으나 사르코지는 낮잠을 자지 않는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잠 잘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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