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그림자에 아이도 뛴다
  • 김유미 (연극평론가) ()
  • 승인 2007.10.0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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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연극 <할머니의 그림자 상자> / 상상력 자극하는 놀이 교육을 무대로

 

요즘에는 어린이 연극이 성인극보다 장사가 잘 된다는 말이 떠돈다.   아동극이 상승세에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교육열과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그 열기를 더해가는 한편 아직 그러한 종류의 공부에서 자유로운 유아들과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을 둔 부모들에게는 다른 접근 방식으로 아이들의 두뇌와 마음을 풍요롭게 해줄 교육이 필요하다. 창의성 교육이 중요함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 물론 대학 입시의 대명제 앞에서 그것이 무기력해지기는 하지만 어린 시기에 이루어지는 창의성 교육이 결국 대학을 가는 데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리라 기대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꼭 대학을 잘 가기 위한 목표를 떠나서도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은 자신들의 세대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문화적 체험들을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된다.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는 시기에는 단순 지식보다 다양하게 접근해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전방위적 능력이 더욱 중요한 경쟁력이 되리라는 예측에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권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린이 연극은 이같은 학부모들의 기대를 직·간접으로 채워주는 부분이 있다. 특히 교육 연극적 개념을 가진 연극 활동은 아이들의 표현력 증진에 더욱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그러므로 어린이 연극은 단지 1회적인 공연이 아니라 문화 교육·예술 교육·창의력 교육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우리의 어린이 연극이 떠안아야 할 과제는 좀더 복잡해질 것이다. 문제는 어린이 극단들이 이러한 요구를 얼마나 따라가줄 수 있느냐이다. 관객들의 복잡한 요구를 수용할 능력이 되는 극단들이 많지는 않지만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극단 ‘뛰다’는 이런 요건을 충족해주는 몇 안 되는 극단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학부모의 다양한 기대 충족시킨 극단 ‘뛰다’
극단 ‘뛰다’의 작업은 <하륵 이야기>, <커다란 책 속 이야기가 고슬고슬>, <노래하듯이 햄릿> 등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은 상태여서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번에 공연된  <할머니의 그림자 상자>(사다리 아트센터 세모극장, 9월1~23일) 역시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역량 있는 극단이라고 인정을 받았다고 해도 그 결과물이 항상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란 힘든 법이다. 그런 점에서 극단 ‘뛰다’의 지속적인 에너지의 원천과 안정된 작업 방식이 궁금해진다. 그것에 대해 정확한 답을 하기는 어렵지만 추측하건대 주요 단원들의 공동 창작 시스템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단원들이 늘었는데 초기 주요 단원들은 배요섭·황혜란·이현주 씨였고, 이들은 운명 공동체였기 때문에 모두가 리더가 되어 작품을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모두가 함께 배우로서 작품에 참여하기도 했기 때문에 배요섭이 주로 극작과 연출을 맡았어도 공동의 작품이라는 성격이 짙다. <할머니의 그림자 상자>에 참여한 인원은 최재영·김수아·정현석·김덕희 씨가 합류하면서 7명이 되었다. 이들이 모두 이 작품의 원안을 짜는 데 머리를 맞대었다는 뜻이다. 이는 적어도 원안에 대한 계획은 공동으로 이루어지며 배요섭씨가 극본과 연출을 하지만 공동의 작업이라는 점이 역시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뛰다’가 지닌 힘이 아닌가 한다. 배우 한 명 한 명이 작품에 깊이 관여하고, 책임지고, 나누는 관계가 조화롭게 굴러갈 때 단원들의 수만큼 더 큰 에너지가 생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 가지 흠을 잡자면 너무 교과서적인 모범 답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어린이 연극에 대한 뚜렷한 의식을 갖고 있는 극단인 만큼 어떤 연극이 어린이 관객에게 유익한지 잘 알고 있는데, 그것은 엄청난 장점이지만 자기 한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림자놀이를 중심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림자놀이는  어린이 연극에서 매우 상식적으로 사용되는 소재이다.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놀이적 감수성 속에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선택된다. 지난여름 아시아 아동극 축제에서 선보였던 일본 가카시자 극단의 <장화 신은 고양이>의 그림자놀이도 인상적이었지만 여기서는 어린이 눈높이에서의 놀이적 특성을 강조했다면 2002년 아시테지 축제 때 선보였던 독일 극단의 <놋쇠 병정>은 그림자놀이가 얼마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지를 매우 예술적으로 표현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극단 ‘뛰다’의 <할머니의 그림자 상자>는 그림자놀이가 지닌 단순한 놀이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손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단순한 그림자놀이부터 화면을 이용해 그림자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 그림자들의 속성이나 본질을 인간의 삶과 비교해 설
 
명하는 다소 무거운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난이도를 종류별로 펼쳐놓는다.
무대 위에 다양성으로 입체감을 주려는 이러한 방식은 극단 ‘뛰다’의 특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그림자라는 테마 자체의 변주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인형이나 인물들의 다양성을 모두 포함한다. 예를 들면 그림자 할아버지(정현석)로 등장하는 인물한테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장대 신발을 신겨 키가 매우 커 보이게 표현함으로써 보통 인물과 차별화한다든지, 주인공 할머니(황혜란)를 그녀의 어린 시절 소녀로 단박에 변신시켜 재미를 준다든지, 뚱뚱보(최재영)와 말라깽이의 대조를 통해 삶의 진실을 한 자락 보여준다든지 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는 주제를 표현하는 데도 도움을 주지만 그러한 다양성은 극의 활기를 불어넣는 데 공헌하는 바가 크다. 특히 이 작품은 시적이고 잔잔한 분위기라서 이러한 다양성은 어린이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는 데 유효하기도 하다.
평범한 소재를 멋지게 변신시킨 구성 돋보여
이 작품은 그림자를 통해 꿈, 기억, 어린 시절, 시간, 죽음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뚜렷한 하나의 이야기로 이것이 표현된다기보다는 할머니와 관련된 몇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난다. 뚱뚱보 친구가 자신의 뚱뚱한 그림자가 싫어 고민하는 모습, 그 해결 방법으로 뚱뚱한 그림자를 자르는 것은 비만 아이가 지닌 현실 생활에 당면한 문제 의식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몸이 가벼워져서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욕구, 즉 어른이 되고 싶은 욕구와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상징적 함의를 지닌다. 어린이 관객들은 빨리 달리고 싶은 욕구와 어른이 되는 것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지만 과감하게 기존의 뚱보 이미지가 지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게 하는 경험은 분명 신선하다. 어린이극 공연은 아이들에게 상징을 쉽게 보여주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거기에 집착하다 보면 기존의 것을 재생산하는 데 그치고 만다. 실제 어린이 공연에서 상징성을 연극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크게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할머니의 할머니(김수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부분이 주제와의 관련성을 가장 집중적으로 제시하기도 하지만 할머니와 놀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가장 현실감 있게 그려져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여기서 주인공 할머니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주인공 할머니의 할머니와 하는 시 짓기 놀이가 매우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밀착되어 표현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어린이 연극의 창의력 교육이라는 측면을 표나게 내세울 수 있는 전략부인데 그러한 의도가 돌출되지 않고 작품 속에서 그야말로 시적으로 녹아 있기 때문에 그 의도가 성공한 경우에 해당한다.
극단 ‘뛰다’의 역할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멋진 시구들은 인용된 것이 많다(그것은 배우의 일기부터 국내 작품, 외국 작품까지 다양한데 대본에서 이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이로운 아름다운 시를 발견해 들려주는 것 자체로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더 나아가 공연은 그것을 예술 교육의 측면에서도 유용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뛰다’가 추구하는 어린이 연극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여겨진다. 다소 평범한 소재와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를 멋지게 변신시킬 수 있는 구성력, <할머니의 그림자 상자>는 이것이 가장 돋보였던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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