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발질’ 그만하고 골맛을 보여줘!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풋볼위클리> 편집장) ()
  • 승인 2007.10.1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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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 태극전사 4인방, 유럽 최고 신예들과 자리 다툼 ‘팽팽’

 
유럽의 클럽 축구가 우리의 안방에 가까워져 있다. 이는 틀림없이 박지성·이영표·설기현·이동국이라는 이른바 ‘프리미어리그 4인방’의 존재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한국 최고의 선수들에게조차 프리미어리그는 결코 만만치 않은 곳. 적자생존의 현실 속에 분투하고 있는 우리 프리미어리거들의 상황을 분석해 보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은 올 시즌 아직까지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지난 4월의 무릎 수술 이후 막바지 재활 훈련에 돌입한 박지성의 목표는 내년 1월 출격. 시즌의 많은 부분을 날려버린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시즌이 가장 중요한 시기로 접어드는 시점에 돌아오는 것은 심히 다행스럽다.
유럽 최고 수준의 신예들로 간주되었던 나니와 안데르손을 비롯해 오언 하그리브스와 카를로스 테베스라는 호화 멤버 영입에 성공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난 시즌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뿜어낼 것이 예상되었지만, 올 시즌 현재까지 그들의 출발은 생각만큼 폭발적이지는 않다. 물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희망을 쏘아올린’ 9라운드 위건과의 경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예상 밖 고전의 원인 가운데에는 새로운 선수들의 임팩트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특히 여전히 어린 선수들인 나니와 안데르손은 ‘기복’과 ‘적응’의 문제로부터 아직은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안데르손의 경우, 하고자 하는 열의와 투쟁심이 한동안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팀의 문제를 떠나 박지성 개인에게 이것은 분명 유리한 배경이다.

재활 중인 박지성, 후배들이 ‘빈 자리’ 넘봐
그러나 박지성에게 복귀 후의 장밋빛 미래가 무조건 보장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선 박지성의 출장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니가 꾸준한 출장 기회를 부여받으며 차츰 적응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미 나니는 중요한 경기들에서 라이언 긱스 못지않은 기회를 부여받고 있으며, 때때로 득점에 공헌하는 빈도 또한 늘어나고 있다. 물론 노장 긱스의 변함없는 세트피스 및 패스 능력도 팀에 긴요한 요소로서 여전히 인정받는다.
여기에, 박지성에게 간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테베스와 안데르손의 존재도 있다. 공격과 미드필드를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테베스의 존재는 긱스의 중앙 기용 빈도를 감소시키는 의미가 있으며, 안데르손이 위건과의 경기에서 ‘마침내’ 펼쳐보인 수준급 중앙 플레이 역시 유사시에 긱스를 중앙으로 돌릴 필요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박지성-나니-긱스의 경쟁 구도를 심화시키는 잠재적 요인이 된다. 결국 길은 하나이다. 더욱 정진해야만 한다.
토튼햄 핫스퍼의 이영표는 그의 토튼햄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불안정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마침내 올 시즌 이영표의 위치에 ‘궁극의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강력한 상대가 추가된 까닭이다.
지난 시즌 젊은 윙백 베누아 아수 에코토가 영입되며 이영표의 위치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된 바 있지만, 이영표 자신이 토튼햄에 남는 것을 선택한 이상 그가 아수 에코토와의 경쟁을 꺼릴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필자의 견해로는 ‘종합적 역량’의 견지에서 이영표는 아수 에코토보다 많은 기회를 부여받을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사뭇 달라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관심을 표명했던 레프트백 가레스 베일의 토튼햄 도착은 이영표에게든 아수 에코토에게든 매우 좋지 않은 소식이다. ‘특급 왼발’과 오버래핑 능력을 겸비한 베일이 밝은 미래를 예약해놓은 유럽 축구계의 샛별로 인정받는 까닭이다.
물론 시즌 초반 토튼햄이 안고 있는 미드필드 문제가 베일과 이영표의 ‘한시적 공존’을 가능하게끔 했다. 베일이 미드필드에 기용되면서 이영표는 원래의 위치에서 뛸 수 있었다. 하지만 베일의 최종 정착지가 미드필드가 아닌 레프트백임을 감안한다면, 궁극적으로 이영표와 아수 에코토는 ‘넘버 투’ 경쟁을 벌여야만 하는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국, 잘 뛰고도 ‘골’ 없어 절박한 상황
하지만 이영표의 미래가 그렇게 어두운 것은 아니다. 이영표는 검증에 검증을 마친 유럽 축구계의 베테랑 레프트백이다. 그가 이적 시장에 나올 경우 영입을 원하는 유럽 클럽들의 수는 적지 않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예상이다. 이영표가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는 곳이 화이트 하트 레인(토튼햄 홈)에 국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미들즈브러의 이동국은 한마디로 절박한 상황이다. 이동국의 위기를 잘 대변하는 것은 어쩌면 현지 언론의 이른바 ‘평점’. 이동국은 최근에 출장한 경기들에서 과거보다 효율적인 움직임을 펼쳐 보이며 팀에 보탬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기 후 이동국에게 매겨지는 평점이 가혹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동국에게 가혹한 점수를 부여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떠한 선입견이 들어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하다. 사실상 그들은 지금 이동국의 움직임보다는 ‘골’에 관심이 있다. 만약 이동국이 미들즈브러에 도착한 직후 지금 정도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면 그의 평점은 그리 나쁘지 않았을 법하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은 그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동국은 이미 어느 정도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지난 시즌부터 그가 그라운드를 누빈 시간이 결코 길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 편으로 팀 내 3, 4번째 입지의 스트라이커로서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결국 현재의 이동국에게 절실한 것은 역시 ‘골’이며, 최근의 경기들에서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있는 그의 플레이는 애석하게도 골을 터뜨리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결과에 의해 묻혀버린다.
이동국을 압박하는 또 다른 요소는 최근 등용되기 시작한 팀의 신예들이다. 스트라이커들의 연이은 부상과 미흡한 골 실적은 감독 가레스 사우스게이트로 하여금 톰 크래독, 벤 허친슨과 같은 일천한 경험의 신예들에게까지 구원의 손길을 내밀도록 만들었다. 근본적으로, 올 시즌 ‘강등’을 피하기 위한 싸움에 말려들 공산이 큰 미들즈브러가 이동국이든 누구든 골이 부족한 공격수에게 마냥 의지할 수 없다는 측면도 이동국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한편, 레딩을 떠나 풀햄에 안착한 설기현은 나름으로 희망찬 스타트를 끊었다. 이적 초기 설기현의 ‘영양가 있는’ 플레이는 감독 로위 산체스로 하여금 그가 팀에서 긴요한 전력임을 인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설기현은 풀햄 팀 전술의 다양성을 증가시켜준다. 설기현을 비롯해 그와 유사한 위치의 사이먼 데이비스, 클린트 뎀프시, 하메우르 부아자 등이 조금씩 구별되는 장단점을 지닌 선수들이라는 사실이 설기현에게는 나쁘지 않은 배경. 특히 설기현이 지닌 ‘물리적 능력’은 공수 양면에서 팀에 유익함을 제공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다만 설기현이 가장 유의해야 할 대목은 시즌이 진행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경기력의 기복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레딩 시절과 비교해볼 때 경쟁자의 수가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든 것은 결코 아니며, 또한 풀햄은 새로운 전력을 보강하는 능력 면에서 레딩보다 우월한 클럽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풀햄도 미들즈브러와 마찬가지로 ‘험난한’ 시즌이 예상되는 클럽이기에 슬럼프가 긴 선수에게 변함없는 믿음을 보내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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