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은 키웠지만 삐걱댄 부산영화제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7.10.1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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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 관객, 최다 출품으로 국제적 위상은 상승 운영상 불협화음 속출해 “총체적 점검 필요” 지적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10월 4일부터 12일까지 총 9일간의 여정을 마쳤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경계를 넘어서’라는 슬로건으로 이전까지의 모습에서 한 단계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경계를 넘어서’라는 말에는 아시아 영화가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 세계 영화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발판이 되겠다는 뜻과 작품성 있는 예술 영화만을 위한 영화제가 아니라 대중 영화도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서 자리를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도 담고 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는 64개국에서 총 2백71편이 출품되었다. 세계 최초로 소개되는 월드 프리미어 작품의 수도 역대 최다인 65편이다. 프리미어 작품이 많다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세계 시장에 최초로 알리는 창구로써 부산국제영화제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이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나타내준다.
부산국제영화제 주최측이 이번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아시안 필름 마켓(AFM, Asian Film Market)’이다. AFM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본격적인 영화 교류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1998년에 출범해 아시아 최대 프로젝트 마켓으로 자리 잡은 PPP(Pusan Promotion Plan)를 확대한 것이다. 기존의 PPP에 ‘스타 서밋 아시아(Star Summit Asia)’, ‘코프로덕션 프로(Co-Production PRO)’, 마켓 스크리닝, BIFCOM 등이 추가되었다.
이번으로 10년째를 맞는 PPP는 아시아 영화인을 중심으로 감독과 프로듀서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작자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이다. 지난해 처음 실시된 ‘스타 서밋 아시아’는 아시아 합작 영화를 활성화하고자 아시아 각국 매니지먼트 업계 및 영화 관계자들에게 각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을 소개하는 자리이다. 올해 신설된 ‘코프로덕션 프로’는 제작·투자·배급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아시아 공동제작 프로젝트를 실제로 성사시키기 위한 파이낸싱 마켓이다.

기대 모은 AFM, 욕만 먹고 성과 부실
부산국제영화제가 AFM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홍콩영화제 및 도쿄영화제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후발 주자인 부산국제영화제에 선두를 빼앗긴 꼴인 홍콩국제영화제와 도쿄국제영화제가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영화의 쇠퇴와 맞물려 점차 쇠락하던 홍콩영화제는 중국영화 시장이 커지면서 새롭게 아

 
시아 영화 창구로서 위상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도쿄국제영화제는 더욱 적극적이다. 도쿄국제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를 경계하여 시기를 조정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막대한 자본과 우리의 10배에 가까운 영화 시장을 발판으로 호시탐탐 부산국제영화제를 앞설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경계를 넘어서’라는 슬로건은 세계를 향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라는 의미보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새로운 도약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이런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 AFM의 성공적 개최였다.
하지만 10월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열린 이번 AFM을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런 평가는 12회째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전체적인 우려의 목소리와 일맥상통한다. 이번 영화제는 운영에서 미숙한 점을 많이 드러냈다. 영화제 최고 귀빈 중의 한 사람인 엔니오 모리꼬네를 홀대해 그로 하여금 일정을 앞당겨 출국하게 한 일이 대표적이다. 규모의 확대를 가능케 한 대규모 스폰서에 대한 지나친 배려도 문제가 되었다.
AFM의 운영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특히 ‘스타 서밋 아시아’에서 드러난 운영의 미숙은 스타들이 영화제의 얼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아쉽다. ‘스타 서밋 아시아’는 아시아의 대표 배우를 소개하는 ‘커튼 콜’과 신인 연기자를 소개하는 ‘캐스팅 보드’로 나뉘어서 진행되었다. 커튼 콜에는 한국의 조인성과 임수정, 중국의 위난, 미국의 한국계 배우 존 조, 일본의 후지와라 타츠야, 태국의 아난다 에버링험 등 총 6명이 참석했다. 아시아를 대표한다는 스타들을 모아놓았지만 질문은 한국 배우들에게 집중되었고 <배틀로얄>    <데스노트>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후지와라 타츠야에게는 통역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해롤드와 쿠마-화이트 캐슬에 가다>의 주연 배우인 존 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질문에서 소외되었다.
 
이 자리가 아시아 합작 영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것임에도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스타들의 모습은 포토라인에 서서 손을 흔드는 전형적인 레드카펫에서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에 이번 ‘스타 서밋 아시아’가 얻은 실질적인 성과는 ‘캐스팅 보드’에 소개되었던 김재승이 켄모치 사토키 감독의 <이번 일요일에>라는 작품에 출연하기로 한 것에 그쳤다.
35편의 프로젝트가 발표된 PPP에는 <북경자전거>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왕 샤오슈아이, <메이드 인 홍콩>의 프루트 챈, 한국의 홍상수 등 부산과 친숙한 중견 감독과 오우삼 감독의 오랜 파트너인 테렌스 창, <갱스터 초치>의 피터 푸다코우스키 등 유명 프로듀서들의 프로젝트들이 포함되었다. 그중에서 왕 샤오슈아이의 <11송이 꽃>이 2만 달러를 지원하는 부산상을 수상하는 등 총 6편의 작품에 대한 제작 지원이 이루어졌다.
‘코프로덕션 프로’에서는 <무사> <비트>로 유명한 한국의 김성수 감독이 아시아 합작 영화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연애합시다>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한국의 iHQ, 나비픽쳐스 외에 중국, 홍콩의 제작사가 참여하는 합작 프로젝트이다.
이 정도의 성과는 의욕적으로 개최된 AFM으로서는 아쉬운 결과이다. 참가자의 수나 마켓의 활기 면에서 처음 개최되었던 지난해의 모습보다도 뒤처지는 모습이었다. 특히 그동안 한국 영화 수출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일본의 참가가 줄었다. 이는 6월에 먼저 열리던 도쿄국제영화제 필름 마켓이 10월20일부터 열리는 본 영화제와 통합되어 실시될 예정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최대 규모의 영화 판매 창구인 아메리칸 필름 마켓이 10월 말에 열리는 것도 부산의 필름 마켓이 한산했던 이유 중 하나이다. 시기적인 문제는 앞으로도 부산국제영화제가 AFM을 키워나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과제이다.
전반적으로 침체기에 있는 한국 영화의 현실도 AFM을 썰렁하게 한 주범이다. 한국 영화계의 침체는 한국 영화의 수출 창구로써 기능하던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 영화의 주 수출 대상국인 일본의 참여가 저조한 것은 앞서 말한 시기적인 이유도 있지만 한류 스타가 참여하거나 흥행성을 갖춘 한국 작품이 그만큼 적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는 역대 영화제 중 가장 지적 사항이 많이 나온 영화제였다. 

상업주의 경계, 원칙 견지해 실패 극복해야
하지만 최고의 아시아 영화 창구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인 부산국제영화제의 처지에서는 AFM이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냈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일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번의 실패를 딛고 올라서기 위해서는 재능 있는 아시아 영화인을 발굴하고 아시아의 작품을 세계에 소개한다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PPP가 성공적으로 자리한 것은 능력 있는 감독의 프로젝트를 열매로 맺기 위한 밑거름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 작품들이 상업성만을 인정받은 것이었다면 PPP는 실패했을 것이다. AFM은 작품성 있는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가 중심이었던 PPP를 좀더 대중적이고 상업적 파급력이 큰 작품들로 확대시키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규모의 확장을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스폰서십 유치에도 힘을 쏟았다. 하지만 영화제를 지탱해주는 근본적인 이념은 영화가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다. 저울추가 상업주의로 너무 기울게 되면 영화제의 중심축이 무너지게 될 수도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관객의 호응을 얻으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 축제로 자리매김한 데는 작품성이 있으면서 다양한 세계를 담고 있는 영화들을 찾아 볼 수 있었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부산국제영화제가 AFM에 집중한 것이 틀린 선택은 아니다.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고 앞서 나가려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선택이었다. 이제 두 번의 행사를 치른 상황에서 실패를 거론하기도 이르다. 유난히 많았던 올해의 지적 들이 내년 성공의 밑거름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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