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무대 뒤의 ‘진실 게임’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7.10.1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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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장막 뒤에 감춰진 <노벨상 스캔들> 50가지

 
노벨상이 제정된 지 1세기가 지났다. 동생까지 죽는 폭발 사고를 겪고도 연구를 멈추지 않아 다이너마이트 제조에 성공해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노벨. 파산한 아버지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했던 그는 평생 병을 달고 살며 자식도 없이 홀아비로 혼자 늙어간 탓에 생전에 이미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고민 끝에 그는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새로 설립할 재단에 맡기는 내용을 담은 유언장을 남겼다. 재단에 5개 부문으로 나눈 상이 어떤 업적에 돌아가야 하는지 자세하게 지시하고 수상자를 누가 뽑아야 하는지도 명확히 밝혔다.
하지만 노벨의 유언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독일의 과학 전문 작가 하인리히 찬클이 정리한 <노벨상 스캔들>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빛나는’ 영광 뒤에서 ‘진실 게임’을 벌인다. 노벨상은 ‘논쟁의 역사’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한국에서도 이 ‘스캔들’은 바다 건너의 일이 아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기 무섭게 ‘과대평가된 문인’이라고 의심받는 고은 시인, 위대한 평화 지도자와 로비설의 사이에 서 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렇다.
이 책이 밝혀낸 ‘스캔들’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벨상 수상자들의 면면과 지난 세기 격랑의 역사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어주는 것이다.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어 조사하기에는 조금 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주인공들이기에, 독자들은 연민의 감정을 가질지도 모른다. 

시대를 열광시킨 ‘업적’ 이면의 오류들
이 책은 아내까지 자살하게 만들고도 독가스를 개발해 제1차 세계대전 중 ‘가스전의 아버지’로 불렸던 노벨화학상 수상자 하버, 동료의 연구 결과를 훔치려 동료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접근시키는 미인계를 쓰는가 하면 정보를 빼내려 온갖 거짓말을 일삼은 끝에 우연처럼 DNA 모델을 완성시킨 과학계의 ‘무서운 아이’ 왓슨, 끝끝내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한 간디 등으로 이어지며 노벨상에도 수많은 오류와 인간적 실수가 있었음을 밝힌다. 그렇다고 저자가 노벨상의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벨상의 오류를 지적하며 노벨상이 인류 최고의 지성을 가리는 일에 균형을 잃지 않기를 촉구한다. 그래도 거꾸로 보면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이 음모·질투·배신·거짓이 한데 얽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노벨평화상을 노리다가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노벨평화상 후보로만 계속 올랐

 
던 인도의 독립운동 지도자 간디를 ‘반쯤 벗은 까까머리 중’이라고 말했다. 좌에서 우로 옮기고, 유럽통합과 동서 갈등의 완화를 위해 힘쓰는 총리까지 화려한 정치 인생을 살았던 처칠은 자신의 전투 경험을 담은 역사성 뛰어난 소설로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저자는 이를 두고 노벨위원회가 처칠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노벨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반면 간디는 오늘날까지도 부정과 억압에 대한 비폭력 투쟁의 상징이며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 중 다수가 그를 자신의 모범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그가 오직 인도의 평화만을 위해 일한다는 상당히 악의적인 의도가 엿보이는 비판적 평가와 수상자 선정 시기에 터진 악의적 기사가 그 원인이었다. 그는 10여 년간 후보에만 오르다가 1948년 결국 암살되고 말았다. 저자는 간디와 같은 비범한 인물을 수상에서 제외했다는 사실은 노르웨이 노벨평화상위원회의 최대 수치일 것이라고 푸념한다.
노벨의 영혼이 있다면 진저리칠 일이 아닐까 하여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노벨상에 집착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스캔들’이 위안으로 다가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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