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 ‘폭풍의 계절’
  • 민훈기 (민기자닷컴) ()
  • 승인 2007.10.2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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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월드시리즈 앞두고 들끓는 미국의 야구 사랑

 
요즘 미국의 가을은 야구 열기로 뜨겁다. 9월 말로 정규시즌을 모두 끝낸 메이저리그(MLB)는 양대 리그에서 4개 팀씩이 출전한 포스트시즌(PS)의 치열한 접전 끝에 10월25일(이하 한국 시간)부터 시작되는 대망의 월드시리즈만을 남기고 있다.
MLB는 총 30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메리칸리그(AL)에 14개 팀, 내셔널리그(NL)에 16개 팀이 포진해 있고 각 리그는 동·중·서부 3개 디비전으로 나누어져 있다. 4월 초에 시즌이 시작되어 9월 말까지 계속되는 정규시즌은 팀당 1백62게임을 벌이는 대장정이다. 한 시즌에 벌어지는 경기만 총 2천4백30개. 올 시즌에는 그것도 부족해 NL 서부조의 콜로라도 로키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가 각각 89승씩으로 시즌을 마침에 따라 한 경기 플레이오프를 거쳐 로키스가 PS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두 팀은 각각 1백63경기씩을 치른 것이다.

유료 관중만 모두 7천5백50만여 명

올 가을의 PS 현장을 취재하면서 다시 한번 느낀 점은 미국 팬들의 뜨거운 야구 사랑이다. 미국에서는 흔히 MLB를 ‘전국민의 오락(National Pastime)’이라고 부른다. 메이저리그 야구가 가장 많은 미국인들이 즐기는 가족 소풍이나 오락 같은 분위기라는 뜻이다.
실제로 올 시즌 MLB 경기에는 총 7천9백44만7천3백12명의 유료 관중이 몰려 역사상 최다를 기록하기도 했다. 우리 인구의 거의 두 배가 되는 팬들이 메이저리그 야구장을 찾았다는 얘기이다.
팀별로 보면 역시 뉴욕 양키스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해 4백27만1천8백67명의 관중을 동원해 유일하게 4백만명을 넘긴 팀이 되었다. 홈 경기가 81번이니까 매경기 5만2천7백39명이 입장권을 샀다는 뜻이다. NL에서는 전통적으로 팬 동원에 강한 LA 다저스가 3백85만6천7백53명의 관중으로 가장 많았고, 뉴욕 메츠가 3백85만3천9백55명을 기록해 간발의 차로 NL 2위, 전체 3위를 차지했다. 3백만명 이상의 팬들이 찾은 팀이 무려 10개나 될 정도로 MLB 야구는 관중 면에서 볼 때 그야말로 미국인들의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스포츠조선 특파원 시절에도 미국인들의 뜨거운 야구 사랑에 탄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신시내티 레즈 팀의 경기를 취재하러 가던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야구 팬을 특히 잊을 수가 없다.
30대 중반의 그 남자 팬은 매년 두 번, 1주일씩 자기 고향인 신시내티로 휴가를 간다고 했다. 휴가래야 1주일 동안 매일 야구장에 가서 홈 팀인 신시내티 레즈를 응원하는 것이다. 그 두 번의 휴가를 위해 1년 내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은다고 했다.
이번 PS 출장에서도 많은 열성 팬들을 봤지만 그중에 시카고 커브스의 팬들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NL 디비전 시리즈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만난 커브스는 1, 2차전을 원정 경기로 치렀다. 연일 4만8천여 명이 몰려 만원을 이룬 가운데 홈 팀 애리조나 팬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시카고 팬들이 관중석을 메우고 뜨거운 응원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의 절반은 커브스 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카고와 피닉스는 약 2천8백50km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가면 26시간 정도 걸린다. 많은 팬들이 PS에 오른 자기 팀을 응원하기 위해 비행기는 물론 자동차로 이동해 피닉스까지 가서 한두 게임을 보고는 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중에 카렌 코헨이라는 아주머니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몇 년 전 피닉스로 이사해서 살고 있는데 1차전에는 시카고에 사는 아들이, 2차전에는 LA에 사는 딸이 와서 함께 응원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디트로이트에 산다는 그렉 클락 씨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가족이 시카고에서 살면서 온 집안이 커브스 팬이었고 자신도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란 커브스 팬이라고 했다. 단짝 친구와 함께 의기투합해 갑자기 커브스 응원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이틀 휴가를 받아 한 게임만 응원을 하고는 곧바로 디트로이트의 직장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디트로이트에서 피닉스까지 거리는 3천2백60km.

26시간 운전하고 찾아가 응원하기도

어떤 도시든 포스트시즌의 뜨거운 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올 PS에서 가장 뜨거운 팀은 역시 콜로라도 로키스이다. 창단 15년째인 로키스는 당초 가을 잔치에 올라갈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정규시즌 막판에 14승1패라는 기적 같은 상승세를 타면서 와일드카드로 간신히 PS에 나갔다. 그러더니 강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각각 3연승, 4연승으로 따돌리고 팀 사상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런데 애리조나와 콜로라도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을 가리는 NLCS 3차전이 벌어진 지난 10월15일의 덴버 쿠어스필드는 정말 추웠다. 불과 이틀 전 1, 2차전을 벌였던 피닉스는 낮 기온이 36℃를 넘어가는 한여름이었는데 덴버의 기온은 경기를 시작할 당시 6℃였다. 거기다 온종일 비가 오는 바람에 체감 온도는 영하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날 경기에는 5만명이 넘는 유료 관중이 쿠어스필드를 꽉 메웠다. 저마다 방한복과 우비, 장갑, 목도리로 무장한 팬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뜨거운 응원전으로 자기 팀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워주었다.
팬들의 열기도 정말 대단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구단의 노력도 본받을 만하다. 팬들의 인기와 팬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먹고 사는 구단은 팬 서비스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애리조나의 데릭 홀 사장은 인터뷰에서 “팬들의 e메일에 일일이 직접 답을 해주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팬들이 적은 돈으로 야구를 즐기고 갈 수 있을지가 최대 고민이다”라고 했다. 애리조나는 요즘 팬들의 편의를 위해 경기장 바로 앞에 대형 주차장을 건설하고 있다. 30개 팀 도시 중에 가구당 소득이 가장 낮다는 피닉스에서는 구단이 팬들을 위해 야구장에 갈 때 드는 경비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MLB 경기를 보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은 1인당 25달러 정도인데, 애리조나의 경우 약 13달러이다. 그 작은 시장의 팀이 3백만 관중 동원을 목표로 열심히 투자하고 팬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명문 구단인 다저스의 프랭크 맥코트 구단주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팬들에게 PS 탈락을 사과하면서 오프시즌에는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팬들을 위해 음식 판매대를 대대적으로 보수하겠다고 밝혔다. 팬들로부터 음식을 사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자 40억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팬들에게서 나오는 수익으로는 구단 운영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구단은 팬이야말로 야구를 생존하게 만드는 존재임을 알고 팬들이 경기를 가장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한다. 그런 구단들은 한 시즌 동안 팬들에게 선물을 주거나 불꽃놀이를 하거나, 추첨으로 각종 경품을 선사하는 등 팬 서비스를 하는 날이 20일 이상 된다.
팬들과 구단과 야구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공존하는 것이 미국의 야구 문화이다. 국내 야구도 점점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스포츠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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