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노래, 가련한 영혼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승인 2007.10.2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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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으로 살아남은 자의 고독…20분에 걸친 섹스 신 압권

 
일제 치하에서 항일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친일파라고 누가 그랬다. 침묵은 비겁한 짓이며 그것은 친일이나 다름없다는 논리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일제 치하를 경험했다. 일제는 그들에게도 삼엄했고 중국인들은 그 서슬에 치를 떨었다. 영화 <색, 계>  는 1942년 상하이에서 벌어지는 항일을 그리고 있다. ‘중국을 살리자’는 구호 아래 연극 동아리 단원들이 일을 꾸미고 암살을 모색한다는 것이 큰 줄거리이다.
그런데 장르가 에로틱 멜로이다. 항일 운동에 에로틱 멜로라니,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를 찍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한 마디로 불경스럽다. 거룩한 항일에 에로물이라니 가당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안 감독은 이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30분 분량을 삭제당한 채 개봉되었고 미국에서는 개봉했다가 극장 수가 세 배로 불어나는 변(?)을 당했다. <색, 계>는 제목부터 수상하다. 색(色)에 계(戒)라니. 더구나 일제에의 저항을 주제로 한 영화가 섹스를 입에 담다니 그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들은 제목 한번 기가 막히게 달았다고 혀를 찰 것이다.
특무대장으로 일제의 개 노릇을 하는 이(양조위 분)를 암살하기 위해 모인 대학생들은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탕웨이를 막 부인으로 위장시킨다. 탕웨이는 이의 부인과 가까워지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데 그녀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이이다. 젊고 아름다운 탕웨이의 미색에 반한 것이다. 하지만 평상시에도 철저하게 주변을 의식하는 이를 암살하는 일은 실패로 돌아가고 3년의 시간이 흘러간다. 일상으로 돌아간 탕웨이는 상하이에서 다시 이를 만나는데 좀처럼 틈을 주지 않던 이는 어느 날 탕웨이를 알 수 없는 장소로 데려가 정사를 벌인다.

항일이 배경이지만 주제는 고통 받는 인간
영화 <색, 계>는 항일이라는 배경을 놓고 ‘인간’을 그리고 있다. 매국으로 살아남은 자의 고독과 공포와 절망을 탕웨이와의 정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광위민(왕리홍 분)의 애국은 시종일관 어설프기만 하고 이에게 다가가려는 탕웨이의 몸뚱어리는 스크린을 태우고 있다. 이안 감독은 영리하게도 이의 공포와 사랑을 이용해 사실은 섹스에 초점을 두고 있다. 벼랑 끝에 선 인간의 모태 회귀 본능은 결국 섹스일 터이니까. 양조위와 탕웨이는 11일에 걸쳐 찍었다는 섹스 신에서 연기가 아닌 진짜 섹스를 보여주고 있다. 탕웨이의 음모가 드러나고 양조위의 고환이 덜렁거리지만 관객들은 침을 삼키지 못할 듯하다. 섹스 신이 나오기까지 한없이 지루한 영화. 그런데도 근래에 드물게 볼만한 섹스 신으로 본전 생각은 안 난다. 11월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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