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하는 ‘암’ 믿은 유방도 다시 보자
  • 이성희 (인제의대 교수·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
  • 승인 2007.11.0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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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발생 가능성 높은 ‘치밀유방’, 젊은 여성에게 많아 유방암 조기 검진 위해서는 ‘유방 초음파 검사’ 필수

 
37세 여성인 홍 아무개씨는 직장에서 시행한 종합검진에서 ‘치밀유방’ 판정을 받고 유방 초음파 검사를 병행할 것을 권고받았다. 3년 전부터 검진을 받을 때마다 유방 촬영을 통해 유선 조직이 촘촘한 치밀유방이라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으나 특별히 아프거나 멍울이 만져지지 않아서 신경 쓰지 않고 지내왔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왼쪽 유방에 가끔 통증이 느껴졌고 단단하게 뭉치는 느낌이 들었기에 유방 초음파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왼쪽 유방에 1.2cm 크기의 결절이 발견되어 조직검사 시행 후 유방암으로 최종 판정을 받았다. 암 진단을 받으면 누구나 큰 충격에 휩싸이지만 홍씨의 경우 특히 두 가지 점에서 충격이 더욱 컸다. 첫째, 집안에 유방암 환자가 한 명도 없었는데 홍씨만 30대라는 이른 나이에 암에 걸렸다는 점이고, 둘째, 매년 유방 촬영을 받았고 특별히 만져지는 멍울이 없었는데도 암이 존재했다는 사실이었다.
유방암은 2002년부터 한국 여성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으로 전체 등록된 여성 암의 16.8%를 차지하며, 유방암 환자가 한 해에 10%라는 놀라운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 유방암은 일반적으로 50대 이후에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30대 후반부터 발생률이 높아져 40대 환자가 전체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발생한다. 한국 여성은 유방암 위험에 훨씬 일찍 노출된다는 이야기인데, 그 원인으로는 최근의 늦은 결혼, 출산 기피 경향, 영양 상태의 호전 및 비만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유방암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여성호르몬에 노출된 기간이 길수록 위험이 커진다. 12세 이전에 초경을 하거나 폐경이 늦은 경우, 폐경 후 여성호르몬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한 경우에 유방암 발생률이 높아진다. 임신 또는 수유 중에는 여성호르몬이 나오지 않으므로 출산을 많이 하거나 모유 수유를 오래하는 경우 유방암 발생 위험이 줄어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치밀유방은 유방 촬영으로 암 조기 발견 못해

젊은 여성들은 식성이 서구화되어 고지방 식사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때문에 비만도가 상승해 유방암 위험에 노출된다. 비만할 경우 지방세포 내에서 여성호르몬을 생산하므로 비만한 사람은 혈중 여성호르몬 농도가 높아지게 된다. 비만한 남성의 경우 여성형 유방을 가진 사람을 볼 수 있는데, 지방세포에서 남성호르몬을 여성호르몬으로 전환시킨 결과이다. 여성보다 위험이 현저하게 낮기는 하지만 남성 또한 유방암에 걸릴 수 있다.
홍씨의 경우 그동안 매년 유방 촬영 결과 ‘치밀유방’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치밀유방은 말 그대로 유선 조직이 매우 치밀해 유방 촬영 결과 유방 전체가 하얗게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유방암은 조기 발견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미세석회화’로, 의심 부위에 하얀 점들이 모여 있는 소견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치밀유방을 가진 여성들은 유방 전체가 하얗게 보이므로 이런 미세석회화 소견이 가려져서 조기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젊은 시절에는 유방 조직 내 유선이 풍부하므로 치밀유방 소견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며, 30~40대에는 80~90%의 여성이 치밀유방 소견을 보인다. 폐경이 시작된 50대 이후에는 서서히 감소하는데,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여성들은 50대에서도 약 50%가 치밀유방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을 안 하거나 적게 한 경우 치밀유방을 보이며, 폐경 후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는 경우에도 치밀유방 소견을 보인다. 이렇게 치밀유방은 다른 유방암 위험 요인과 관련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해 최근의 역학 연구 결과 유방암 발생 위험성을 4~6배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유방 촬영에서 치밀유방 판정을 받은 여성들은 정확한 진단을 위해 유방 초음파 검사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유방 촬영으로 유방의 전체적인 모양이나 대칭성, 유선 분포, 비정상 석회화의 존재 유무, 겨드랑이 임파선의 비대 여부 등을 확인한 뒤, 치밀유방인 경우 유방 초음파 검사를 통해 숨겨진 결절이 없는지 조사해야 비로소 정확한 조기 진단이 가능한 것이다.
현재 유방암의 조기 발견을 위한 권고 지침은 35세 이후 1~2년마다 전문의로부터 유방 진찰을 받고, 40세 이후부터 1~2년에 한 번 유방 진찰과 유방 촬영을 받는 것이다. 유방 자가 검진은 정확도가 떨어지므로 암 검진으로 추천되지 않으며, 스스로 만져보아 멍울이 없다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앞으로 여성들의 영양 상태가 계속 좋아지고, 늦은 결혼과 저출산 경향으로 여성호르몬 노출 기간이 점점 길어진다면 치밀유방 역시 증가할 전망이다. 따라서 이 권고안에 덧붙여 유방 촬영 결과 ‘치밀유방’ 판정을 받았다면 반드시 유방 초음파 검사를 병행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홍씨의 경우에는 발견 당시 종양의 크기가 적었고, 임파선에 전이가 되지 않은 초기 상태였으므로 종양 주변 조직만 제거하는 부분 절제술 후 항암제를 투약해 치료했다. 얼마나 조기에 발견하느냐가 여성의 상징인 유방을 보존할 수 있느냐 모두 제거해야 하느냐를 결정하는 요인이니 만큼 이상 소견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조기에 발견하려고 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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