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에 잠긴 전시, 꿈꾸는 그림
  • 이재언(미술평론가) ()
  • 승인 2007.11.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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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타는 듯한 세계적 설치 작가와 ‘어린 왕자’ 같은 화가의 갤러리 외출

 
며칠 전 아주 흥미로운 소식이 하나 있었다. 3300년 전의 투탕카멘 묘소에서 수거된 완두콩을 우리 국립수목원측이 확보해 증식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꽃이나 열매가 일반 완두콩과는 약간 다르기는 해도 3000년 이상 땅속에 갇혀 있다가 발아를 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 바위조차도 풍화작용에 의해 산화되고 남을 영겁의 시간인데, 식물의 씨앗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생명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또 그 긴 영겁의 시간을 찰나처럼 초극한 생명은 얼마나 질긴 것인가.
‘최재은 전’(9월21일~11월18일, 로댕갤러리)에 출품된 <별을 바라보다>라는 작품 앞에 서면 바로 비슷한 감흥을 얻는다.

시간과 존재에 대한 환상적 묘사 ‘최재은 전’

한 변이 약 60㎝ 길이로 된 정사각형 판 3개가 연결된 이 작품은 거울을 가운데로 하고 양쪽에 100개의 호박이 각각 세팅되어 있다. 그 호박 속에는 지질 시대의 미생물이 들어 있는데, 육안으로도 관찰이 가능하다. 마치 별을 관찰하듯 돋보기가 있어 미세한 그 모습을 보노라면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볼 때와 같은 흥분이 솟구친다. 별을 본다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실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에 방출된 빛만을 보는 것이 아니던가.
노란 투명체로 세팅된 호박들을 보다가 관람자들은 별안간 가운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자기 자신을 가장 객관적 실재로 발견하는 순간이다. 정말 <쥬라기 공원>에서처럼 저 미생물의 몸속에 공룡의 혈흔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환상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자기 자신의 모습은 얼마나 당황스러울 것일까? 작가 최재은은 오랫동안 시간의 그물 안에 있는 존재의 본질을 사색하고, 그 사색의 분량을 우리에게 고루 나누어주고 있다. 경주 토함산과 일본 후쿠이의 땅에 몇 년씩 묻어둔 종이가 변색된 모습을 통해서도, 또 ‘루시(Lucy)’라 불리는 인류 최초의 여성 골반 화석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구조의 작품을 통해서도, 우리는 시간에 대한 깊은 사념에 빠지게 된다. 잠시나마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세계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최재은 작가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1990년 경동교회를 3천개의 대나무로 연출했던 때부터이다.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유명한 이 기념비적 건물에 대나무를 환상적으로 설치해 시민들에게 역사적인 볼거리를 제공한 바 있다. 그러한 역사적 연출을 통해 회자되기 시작한 작가는 일거에 톱클래스의 위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 대표로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한 바 있는 작가가 국내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전시회를 가졌다는 사실은 많은 미술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사실 이번 작품전을 위해 최작가가 얼마나 고심에 찬 준비를 했는지는 작품 하나하나에서 잘 발견된다. 단조로워 보이는 작품일수록 최작가의 에너지가 더욱 절제되고 응축되어 나타났는데, <자신>이라는 작품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을 보면 흰 벽에 둘러싸인 방 안에 바닥은 하얀 운석 가루가 일정하게 고루 깔려 있다. 한 가운데로는 조명이 비쳐지고 있으며 시간의 흐름을 알려줄 초침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을 뿐인 작품인데, 정말이지 우리의 생각과 사념들조차도 무화시키는 힘을 느끼게 한다. 단조로울수록 진지하고 강렬하게 경험될 수 있는 것은 밀도와 소통의 문제이다. 각고의 에너지가 투입될수록 감정적인 요소들이 더욱 절제되고 있다. 물론 참여와 해석은 관람자의 몫이리라.

감미로운 몽상적 표현주의 ‘정일 전’

가슴으로 세상을 보고자 한 서양화가 정일은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의 화신과도 같은 사람이다. 어린 왕자처럼 백설 같은 순수함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주옥 같은 이야기들이 바로 그의 그림이기도 하다. 어쩌면 아직 얼굴도 모르는 미지의‘어린 왕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그의 그림인지도 모른다. 그의 화면은 온화하고도 감미롭기가 그지없으며, 꿈꾸기를 권유하는 동심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각박한 현대를 살면서 메말라 가는 영혼에 촉촉한 단비와도 같은 동화적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10월24일~11월6일, 선갤러리).

 

그의 작품 세계에서는 무엇보다 풍부한 시적 상상력과 섬세하고 예민한 회화적 감각이 돋보인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 사랑, 행복, 평화 등을 노래하는 음유 시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피아노, 바이올린, 꽃병, 새, 촛불, 테이블, 장 등이 사소하고 소박한 일상적 이미지인 것 같지만, 유심히 보면 동화적이고 삽화적인, 그러면서도 다소 이상화된 아이콘들임을 알 수 있다. 화면 속에 나타난 왕자와 공주의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들에서 보듯, 작가의 그림은 보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간직한 아픈 기억들조차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화시키는 어떤 신비감을 준다.
작가는 거칠고도 두터운 마티에르를 통해 발산되는 안정된 형상성, 그러면서도 솜사탕같이 감미롭고 화려하고 우아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는 감미로운 몽상적 표현주의자이다. 작가는 ‘흰색의 마술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흰색을 신비스럽고 우아하게 구사한다. 작가가 다양한 색을 구사하면 하는 대로 성취도가 좋은 이유도 바로 흰색의 무채색이 몽환적이고도 환상적인 그림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화면이 동심을 반영한 동화적인 양식임에도 어른들이 더 열광하는 것도 바로 잃어버린 꿈을 회복하게 하는 힘 때문일 것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작가만의 신비스런 색조의 흡인력도 흰색의 역할에 힘입은 바 크다. 
작가는 그림을 그림답게 그린다. 오늘의 복잡다단한 예술적 상황 속에서 때때로 그림은 강한 정체성 불안에 시달리곤 한다. 오히려 그림답지 않은 것이 더 그림처럼 행세하고 있음을 자주 목격한다. 작가는 기질적으로 그런 시류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은 듯하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 충실해야 할 그림은 결국 자신의 인격이 그대로 반영되고 투영되는 그림임을 확신하고 있다. 붓을 쥔 손이 어떻게 움직였는가가 그림의 생명력과도 직결된다. 작가의 그림이 정적인 듯이 보이면서도 생기로 가득한 것도 바로 붓의 감각이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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