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친위 그룹, 권력 분점 계획 세웠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7.11.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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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파랑새단 활동’ 문건 입수…경선 패배 직후 핵심 측근이 작성, 신당 창당 등도 모색

 
 박근혜,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지난 8월2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던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장에서 이명박 후보의 승리가 확정되자 박근혜 전 대표가 했던 말이다. 그는 또 “오늘부터 저는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서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해 백의종군하겠습니다”라고도 선언했다.
하지만 ‘깨끗한 승복’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 이후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는 물론 양측 캠프 관계자들과 지지자들은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했다. 초접전을 벌였던 경선 과정에서 패인 감정의 골이 너무나 깊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사저널>은 최근 박근혜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주목할 만한 문건을 입수했다. 당내 경선이 끝난 후 이명박-박근혜 양측이 ‘극심한 빙하기’를 겪고 있던 지난 9월께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건의 제목은 ‘파랑새단의 역할 및 향후 계획.’
파랑새단 조직체계도를 포함해 A4용지 다섯 장 분량인 이 문건에는 ‘철저한 보안 유지’를 당부하는 문구가 곳곳에 적시되어 있어 파랑새단이 ‘극비 프로젝트’임을 암시하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파랑새단은 내년 4월 총선을 대비하기 위해 조직된 박근혜 전 대표의 비밀 친위 조직을 지칭하며, 박 전 대표를 ‘박대표님’이라 칭하고 있다.
파랑새단의 역할은 △MB(이명박)와 박 전 대표 간 권력 분점 계기 조성 △MB 낙선 때 새로운 정치 조직 결성 준비 △MB 당선 때를 대비한 인재 발굴 등 세 가지로 규정되어 있다.

A4용지 다섯 장 분량에 철저 보안 유지 당부

이같은 역할 가운데 우선 △MB와 박 전 대표 간 권력 분점 계기 조성과 관련해, 문건에는 “MB는 현재(지난 9월로 추정) 박대표님과 연대가 없어도 당선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권력을 나누지 않겠다는 오만함에 빠져 있다. 따라서 (MB와 박 전 대표 간) 연대가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1차적으로 MB에게 위기가 도래했을 때, 후보 교체 요구를 위한 총궐기를 통해 권력 분점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여기에 “MB측에서 권력 분점(5년 임기 보장 책임총리+공천권 보장)을 제안하도록 유도하여, 박대표님이 5년 책임총리 후 대권에 재도전하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라는 ‘천기(天機)’까지 싣고 있다.
한마디로 박 전 대표의 절대 지지층 20%가 움직인다면 MB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MB를 돕는 조건으로 5년 책임총리와 공천권을 확보하자는 전략인 셈이다.   
그런데 파랑새단의 역할은 권력 분점의 계기를 조성하는 것보다는 내년 총선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랑새단의 또 다른 역할인 △MB 낙선 때, 새로운 정치 조직 결성 준비와 관련해 문건에는 “대선 패배 이후 네 달만에 치러지는 총선을 대비하고자 하면 ‘지금부터’ 박대표님 친위 조직 결성이 필요하다”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지금부터’라는 시점은 지난 9월 추석(25일) 이전을 가리킨다. 따라서 박 전 대표측에서는 경선 패배 직후부터 내년 총선을 겨냥한 비밀 조직 구축에 나섰으며, 그것이 바로 ‘파랑새단’인 것이다.
문건에는 “대선 이후 박대표님이 새로운 정치 모토를 가지고 신당을 창당할 경우에만 영남을 중심으로 새로운 야당을 정립할 수 있고, 대표님도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더불어 “MB 낙선 때, 영남권 및 박대표님 지지가 높은 지역에서는 박대표님의 새로운 신당에 몰표를 줄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문건 작성자는 MB가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안팎에서 나돌고 있는 ‘MB의 대선 패배→한나라당 분당 사태’ 시나리오가 뜬금없는 낭설은 아닌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박 전 대표측에서 당내 경선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내년 총선을 대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대선 이후에 신당을 준비한다면 인재 발굴, 공천 등 물리적인 일정 부족으로 총선을 제대로 치루기 힘들다”라고 밝혔다.

인재 발굴 등 총선 기획도 담아

또한 “대선 이후 바로 총선 체제로 가동될 수 있도록 하여 박대표님 세력들이 원내에 최대한 많이 진입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파랑새단은 MB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를 대비해서도 전략을 짜놓고 있다. △MB 당선 때를 대비한 인재 발굴 역할과 관련해 “(MB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총선에서) MB의 독식 공천이 예상되는 가운데 최대한 아측(박 전 대표측) 세력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총선 기획이 필요하다. 최대한 아측 인사들이 보안리에 원내에 진입, 이후 박대표님 지지 세력으로 차기 대권을 준비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MB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총선에서 공천권을 ‘독식’해서 상당수의 박 전 대표측 인사들이 총선에 출마하기 힘들 것이라는 위기 의식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MB의 ‘공천 독식’에 대비해 “박근혜 맨(Man)으로 표 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면서 지역 내 명망 있는 인재나 새로운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또한 “지역 내 인지도 및 지지도를 선점하여 MB측의 전략 공천이나 기획 공천 등 독식 구조를 타파해야 하며 지역 내 조직 결집으로 MB측이 전략 공천할 경우, 집단 저항으로 MB의 독식 구조에 항쟁해야 한다”라는 전략이다. 이처럼 ‘타파’ ‘항쟁’ 등 다소 과격한 표현까지 써가면서 MB측의 ‘공천 독식’을 경계했다.
그리고 “(총선 때) 전 지역에서 아측 조직이 출마하는 것이 아니기에 아측 인사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 조직들은 체계적인 활동으로 출마 지역 인사를 지원, 반드시 당선되도록 기획해야 한다”라는 구체적인 전술도 적시했다.
 문건에서 드러난 파랑새단의 조직 체계를 보면, 경선 기간 동안 박근혜 전 대표 선대위에서 활동했던 주요 인사들이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파랑새단의 총단장은 박 전 대표 선대위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던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가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이인제 경기지사의 중도 사퇴로 직무대행을 맡았던 임수복 전 경기지사가 중앙단장을,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던 이상진 선대위 민원행정실장이 포럼총단장을 각각 맡고 있다. 서 전 대표와 임 전 지사는 박근혜 선대위에서 수도권특별대책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이미 손발을 맞춘 바 있다. 
여기에 조직단장은 권부익 선대위 서민대책본부장, 기획단장은 강동훈 조직상황팀장, 정무단장은 류길호 일정팀장, 행정단장은 김규준 민원행정팀장이 각각 맡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문건에는 “(9월) 현재 중앙단 조직은 임수복 전 경기도지사, 이상진 캠프 민원행정실장님을 중심으로 캠프 팀장급으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총단장으로 명시된 서청원 전 대표 “나는 관계 없다”

파랑새단의 총단장으로 명시된 서청원 전 대표는 “경선 때 알던 사람들이 경선 이후에 찾아와서 그런 얘기(파랑새단)를 하기에 그런 것 해서는 안 된다고 꾸지람해서 돌려 보낸 적이 있다. 한 번 만나고 안 만났다. 또 내 지인들이 그것에 대해 물어보기에 그런 것 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라며 파랑새단과 무관함을 강하게 역설했다.
파랑새단에 대한 취재가 진행 중이던 지난 11월15일 ‘파랑새단의 핵심 인사’라고 자신을 밝힌 한 인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 인사는 “서청원 전 대표는 파랑새단과 무관하며, 현재 파랑새단은 유야무야된 상태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건에 따르면, 파랑새단의 향후 계획도 제법 구체적이다. “(9월 현재) 경선 때의 전국 16개 시·도 및 시·군·구별로 구성된 조직을 정비 중”이라고 했다. “일부 (박 전 대표측 인사가) 부족한 지역 및 확실한 아측(박 전 대표측) 인사들로 재정비 중이며 가급적 출마 예상 인사 위주로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특히 “경기도는 지난 경선 당시 활동했던 손재필 당 해양수산분과위원장과 김찬기 도울터 대표가 단장으로 조직을 정비 중”이라고 적시했다. 이밖에 “경북, 경남, 부산 등 주요 지역 인사 면담 후 입단을 확정할 예정이며 기타 지역도 절대 배신하지 않을 주요 지역 인사로 단장급을 선정해 조직을 강화하는 중”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시사저널>이 이번에 입수한 문건이 작성되기 이전부터 파랑새단은 비밀리에 중앙단을 비롯해 지역별 조직을 정비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같은 일련의 정황을 살펴볼 때, 파랑새단이 태동한 시점은 지난 8월20일 전당대회가 끝난 후인 지난 9월 초로 추정된다. 문건에서는 “사무실은 선정한 상태로 추석 이후 계약해서 오픈할 예정”이라고 언급함으로써 ‘비밀 아지트’도 이미 물색해 놓았음을 시사했다.

 

박 전 대표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알려져

이후 일정과 관련해서는 “10월5일까지 모든 업무가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며 10월 중순부터 총선 기획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총선 기획의 방안으로는 “선거 홍보 기획 파트의 유능한 인재를 중심으로 출마 예정자에 대해 맨투맨 지원과 함께 대선이 끝난 직후 곧바로 예비후보 등록과 홍보물 발송이 가능하도록 인지도를 선점할 계획”이라고 명시했다.
문건에는 이밖에도 파랑새단 단원은 “어떤 내용도 보안을 철저히 지킨다”라는 의무 조항을 지켜야 하며, 단장급은 매월 10만원 또는 연 100만원을, 단원은 매월 2만원 또는 연 20만원의 단비를 납부해야 한다. 후원회는 별도의 회비 없이 매월 20만원 또는 연 2백만원 이상을 후원해야 한다”라고 규정해놓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문건은 박 전 대표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박 전 대표는 경선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했음에도 ‘물밑에서는’ 내년 총선을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측 이정현 특보는 “파랑새단이 무엇이냐. 용어 자체를 처음 듣는다. 박대표는 사조직을 만들거나 용인하는 성품이 절대 아니다. 다른 정치인들이 정치적 야심 때문에 그런 구상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박대표와는 전혀 무관하다”라며 파랑새단과 박 전 대표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강조했다.
이명박 후보와 박 전 대표는 경선 기간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관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위기에 몰린 이후보가 박 전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라고 치켜세우면서 ‘박심(朴心)잡기’에 나섰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출마는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본다”라면서도 이후보가 추진하는 ‘이명박+박근혜+강재섭’ 정례 3자 회동에 대해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를 놓고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박 전 대표가 ‘반(反)이회창, 비(非)이명박’ 노선을 분명히 한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여전히 이후보와 박 전 대표 사이에는 냉랭한 기류가 흐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 전 대표의 복심은 무엇일까. 이 전 총재의 출마와 BBK 주가 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의 국내 송환 등으로 조성된 ‘MB 위기’를 통해 권력 분점의 계기를 조성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파랑새단을 통해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박 전 대표의 속내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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