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실탄’ ‘육탄’으로 메워라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7.11.1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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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캠프마다 선거 자금 모자라 ‘난리’…“법 고쳐라” 목소리도

 

신용카드 메우기 바쁘다.” 대통합민주신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일하는 한 실무자의 푸념 섞인 말이다. 오랫동안 당직자로 활동해온 그는 정동영 후보 캠프에서 홍보 업무를 맡았다. 몇 달째 밤낮을 모른 채 선거운동에 매달리고 있지만 월급은커녕 경비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캠프에서 정상적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리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생기는 이른바 ‘자봉(자원봉사자의 준말)의 비애’이다. 다른 당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당 활동비조차 부족해 그야말로 ‘돈 가뭄’에 허덕이는 실정이다.
선거를 돈으로 치르던 시대는 갔다고들 하지만 돈 없이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미디어 선거가 정착되면서 돈과 조직의 영향력이 줄었지만 여전히 선거운동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물론 과거처럼 수천억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지는 않다. 현재 한 후보가 법적으로 쓸 수 있는 선거 비용 상한액은 4백65억9천3백만원이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불법 대선 자금이 국가적 문제가 된 이후 불법적인 돈을 받아 선거 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엄두를 못내는 상황이 되었다.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차떼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오히려 상한액을 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후보나 중앙당 명의로 후원회를 개최할 수도 없어 자금줄은 더욱 말라가고 있다.
물론 정당의 경우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이 있다. 올 4분기 경상 보조금으로 통합신당이 29억원, 한나라당이 23억원가량을 받았다. 여기에 후보 등록 직후 선거 보조금으로 통합신당이 1백16억원, 한나라당이 1백10억원가량을 받게 된다. 통합신당과 민주당이 합당할 경우 지급액은 1백28억원가량으로 늘어난다. 양대 정당의 경우 후보 등록이 마감되는 11월26일 이후 일단 숨통은 트이는 셈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어떻게 버티느냐’와 ‘국고보조금만으로 선거를 치르기는 어렵다’는 현실이 남는다.
결국 ‘실탄’을 마련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통합신당은 최근 소속 의원 1백40명 전원에게 신용대출 3천만원을 받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돌렸다. 당초 5천만원으로 하려고 했다가 부담이 크다는 당내 여론에 따라 액수를 줄였다고 한다. 문학진 선대위 총무본부장은 “오죽했으면 의원들에게 신용대출을 받자고 했겠느냐. 유세차를 구하려 해도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계약금이 없어 못 구하고 있다”라고 어려운 재정 상황을 설명했다.
이 방안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42억원이라는 뭉칫돈을 모을 수 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급한 대로 해갈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초 기대했던 만큼의 결과물이 나와 줄지는 미지수이다. ‘십시일반’이라고 하기에 3천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이미 은행 대출이 턱밑까지 차 있는 의원들이 많다. 문본부장에 따르면 11월14일 현재 동의서에 서명한 의원 수는 62명이다.
이에 앞서 각 의원실로 ‘보좌진 파견 협조’를 요청한 것도 비용 절감을 위한 측면이 크다. 의원실 별로 최대 두 명의 보좌진이 선대위 산하 각 위원회에서 행정 실무를 맡거나 지역으로 파견되어 선거운동을 돕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국정감사 준비 등을 이유로 상당수 의원실에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당비를 거두어 선거 자금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특별당비에는 한도가 없다. 하지만 이 역시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문본부장은 “특별당비를 많이 거두기 위해서는 후보 지지율이 높아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역부족인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대선 후보가 공천권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점도 특별당비에 대한 기대를 낮춘다. 과거 특별당비는 총선 공천에 대한 보험 성격이 강했다.
남은 방법은 목돈을 차입하는 것이다. 담보는 선거 후 환급되는 국고보전금이다. 후보가 유효 투표의 15% 이상을 얻을 경우 국가로부터 선거 비용의 약 80%를 보전받을 수 있다. 관건은 당과 후보를 믿고서 투자해줄 우호적인 ‘전주’를 만날 수 있느냐에 있다. 문본부장은 “현재로서는 쉽지가 않다”라고 털어놓았다.
상대적으로 넉넉한 살림을 꾸려온 한나라당도 ‘실탄’이 부족하기는 매한가지이다. 통합신당보다 두 달여 앞서 경선을 치른 만큼 ‘곳간’이 먼저 비었다. 당에 들어오는 돈은 당비와 국고보조금이 전부인데 당 운영에 충당하기도 빠듯하다고 한다. 선대위 실무진들 사이에서는 ‘성과금 후불제’라는 말도 나온다. 월급이나 경비가 잘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박형준 대변인은 “선거자금이 부족한 상황이다. 후원회를 열 수 없어 어려움이 있다”라고 전했다.

통합신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신용대출 동의서 돌리기도

선거 후 국고보전금으로 갚기로 하고 최근 2백80억원가량을 빌리기로 해 다소 여유를 찾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나머지 선거 자금 마련에는 역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박대변인은 “재정위원을 확충해 특별당비로 모을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70억원가량의 특별당비 모금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실적은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조한국당은 사정이 더 어렵다. 당원들로부터 걷은 당비가 있지만 아직까지 큰돈은 못 된다. 여기에다 소속 의원이 한 명뿐이라 국고 보조금도 2천여 만원에 불과하다.
사무실 임대료 등은 문국현 후보가 직접 부담하고 있다고 한다. 장유식 대변인은 “당비가 늘어나고 있지만 선거운동은 대부분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처지도 다를 바 없다. 소속 정당이 없는 만큼 국고보조금도 받을 수 없고 후원금 모금도 금지되어 있다. 사재를 털어 쓰든지 아니면 돈을 빌려서 선거 자금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전 총재가 2002년 대선 당시 신고한 재산은 12억8천5백만원이다.
투표일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도 자금난이 해결되지 않자 현행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2004년 3월 개정된 정치관계법은 정당 후원회를 금지시켜 정치 자금을 당비, 국고보조금, 자체 자산, 차입금 등으로 조달하도록 만들었다. 정치권에서는 현행법이 너무 엄격하고 비현실적인 조항이 적지 않아 정당 활동과 선거운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업자득’ 측면이 크다. 천문학적인 불법 대선 자금으로 선거를 ‘돈 잔치’로 만들어 국민의 신의를 저버린 것은 정치권이다. 그래서 법 완화 주장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이다. 불만의 소리는 높지만 유권자의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는 정치인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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