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대란 오는가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07.11.1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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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가 심상치 않다. 주식형 펀드가 1백조원을 돌파하고 인사이트 펀드에 4조원이 몰리는 등 연일 수탁고 신기록이 터져나오지만 시장 분위기는 살얼음 위를 걷는 듯 불안하다. 악재만 터지면 폭락했다가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회복하는 등 일진일퇴의 혼전 양상이 거듭되고 있다. 국내 증시가 밤새 전해지는 미국 뉴욕 증시의 시황과 오후부터 이어지는 홍콩 및 상하이 증시의 장세 에 따라 널을 뛰고 있다.
국내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돌파한 것이 지난 7월25일. 이후 다시 밀리다가 2000고지를 재돌파한 것이 10월 말이었다. 1000포인트를 넘어선 시점이 2005년 2월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증시 기준으로 단순화할 경우 우리 경제의 볼륨이 지난 2년여 동안 두 배로 커졌고 증시 참여자들은 두 배의 돈을 벌었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이를 달리 풀어서 얘기하면 증시에 그만큼 많은 돈이 몰려들고 있고 지난 2년여 동안 국내 증시가 쉬지 않고 상승한 것이다. 이렇다 할 조정 없는 상승장은 거꾸로 불안 국면을 예고한다. 투자자들에게 ‘언젠가는 조정이 올 텐데’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증시가 코스피지수 2000의 문턱에서 확 올라서지 못하고 널뛰기 양상을 보이는 배경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최근 차이나 펀드를 불쏘시개 삼은 펀드 붐은 ‘펀드 대박’이라는 집단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시장에서 ‘쉼 없는 성장’이라는 명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지만, 최근 2~3년간의 중국 증시는 예외적으로 움직였다. 미국 증시가 신용 위기를 겪을 때도 꿈쩍 하지 않고 ‘나홀로 성장’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국내에 본격 출시된 중국 펀드, 정확히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주식 펀드 상품의 수익률이 국내 펀드의 수익률을 압도했다. 이는 부동산 경기가 시들해지면서 갈 곳 잃은 국내의 유휴 자금을 증시로 몰리게 하는 촉매제 구실을 했다. 하지만 4분기 들어 중국 펀드의 과열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기 시작하자 투자자들도 움츠러들고 있다. 이들은‘조정은 반드시 올 것이다’라고 믿는 경험론과 중국 경제 낙관론 사이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대형 펀드의 출현과 꺾임 없는 중국 경제 상승론에 대한 불안감, ‘조정장 필연론’이 겹치면서 ‘펀드 대란’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미래에셋이 최근 출시한 인사이트 펀드에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4조원의 돈이 몰리는 등 쏠림 현상이 심화되자, 2000년대 초반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이 불러일으켰던 ‘바이코리아’ 붐과 ‘인사이트 펀드’ 붐을 비교하는 시각까지 나오고 있다. 바이코리아 캠페인과 인사이트 펀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모두 한국 증시를 뒤흔들 만큼 자금을 끌어 모았고, 투자자들에게 한탕 심리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바이코리아 붐은 결국 수많은 투자자를 울린 채 수그러들었다.
 미래에셋에서는 인사이트 펀드를 발매하자마자 1조원의 자금을 모았다고 자랑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미래에셋 계열사인 미래에셋생명의 운용 자금이 초기 자금 모집에 상당액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미래에셋생명에서 보험 계약자들의 위탁 자금을 좀더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 ‘신중하게’ 운용처를 고른 결과이겠지만 초기 인사이트 펀드의 빛을 내는 데 미래에셋 계열사가 찬조 출연한 셈이다.
 ‘순식간의 수탁고 1조원 달성’은 인사이트 펀드에 ‘뭐가 있다’라는 입소문을 돌게 하며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판매 창구 직원들에게는 인센티브도 지급되었다. 미래에셋증권 일선 지점의 인사이트 펀드 판매 창구에서 번호표를 뽑아 한 시간을 기다리며 현장 상황을 직접 체험한 한 은행 관계자는 결국 자신의 은행에서 인사이트 펀드를 팔자고 건의했다. 이 은행도 인사이트 펀드 판매 창구에 합류했으며, 인사이트 펀드 붐은 이런 식으로 급속히 확산되어나갔다. 미래에셋은 애초 설정했던 수탁고 한도도 없애버렸다.
인사이트 펀드 붐은 ‘박현주 신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지난 1990년대 중반 박현주 회장이 동원증권 압구정 지점장 시절부터 7천억원대 취급액을 기록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부자들의 ‘박현주 브랜드’에 대한 믿음은 최근 몇 년간 디스커버리 펀드나 차이나 펀드의 성공으로 인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미래가 하면 뭔가 다를 것이다’라는 기대 심리가 팽배해진 것. 사실 국내 증시에서 외환위기 이후 절대강자이던 삼성전자를 황제주 자리에서 밀어내고 올해 들어 포스코나 현대중공업이 1위 자리에 오른 것은 ‘미래에셋의 힘’이라는 증권가의 평가가 있을 정도이다.

삼성전자 밀어낸 ‘미래에셋의 힘’ 사실일까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금감원이 나섰다. 금감원에서 인사이트 펀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자 박현주 회장이 지난 11월14일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하고 나섰다.
박 회장은 “인사이트 펀드는 몰빵 펀드가 아니다”라고 해명하는 등 그동안 인사이트 펀드에 쏠렸던 의혹을 일일이 해명했다. 그는 증시 폭락과 이로 인한 대규모의 펀드 환매 요구가 있을 위험성이나 미래에셋으로의 돈 쏠림 현상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그는 펀드 환매 요구가 몰릴 가능성과 관련해 “한국의 펀드 규모가 튼튼해졌다. 한국 투자자들은 대단히 똑똑한 사람들이다. DNA가 대단한 민족이다. 지금 부동산·예금에서 펀드로 넘어오고 있다. 자금이 수익이 나는 곳으로 흐르는 것이다”라며 직접적인 답을 피했다. 미래에셋으로 돈이 쏠린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 시장에서는 크게 보이더라도 국제 무대로 가면 아무것도 아니다. 외국에는 30조~40조원 규모의 펀드도 많다. 미래에셋이 세계 자산운용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밖에 안 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중의 펀드 환매 움직임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미 가시화된 상태이다.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한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킹 담당자는 “최근 들어 고객의 80%가 중국 펀드를 환매했다”고 밝힐 정도로 일부 ‘선도 투자자’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물론 이들은 그동안의 차이나 펀드 수익률에 만족해 빠져나간 측면도 있다. 또 다른 프라이빗뱅킹 담당자는 “차이나 펀드의 성장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지만 당분간은 공격적인 투자보다는 쉬어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라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물론 아직 시장의 전반적인 반응은 환매 요구와 거리가 있다. 실제로 시중 은행의 일선 지점 펀드 판매 창구에는 차이나 펀드의 과열음이 나돌았던 최근에도 별다른 환매 요구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펀드 매니저는 “부동산 투자 메리트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은행 금리도 별 볼일 없기에 유일한 투자 대안으로 떠오른 펀드 상품에 대한 기대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코스피지수가 3.37% 급락했던 지난 11월12일을 전후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온 주식형 펀드 설정액만 1조원이 넘었다. 이 중 단기성 자금인 MMF 자금이 1조7천6백79억원이 일시에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되었다. 상황을 관망하며 MMF에 넣어두었던 돈을 주가가 급락하자 대거 주식형 펀드 상품으로 돌린 것이다.
조정 없는 상승 국면에 대한 불안감, 펀드 투자에 대한 대박 심리, 시중 자금의 블랙홀로 불리는 대형 펀드의 출현 등이 맞물려 펀드 대란에 대한 불안감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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