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초강수’ 뒤로는 ‘악수’?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7.11.1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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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노조 파업으로 ‘개혁 마찰’… 사태 추이에 정치 생명 달려

 
예상대로 제대로 맞붙었다. 우파 대통령 사르코지의 당선 때부터 프랑스 노동자들은 그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국정 전반에 반영할 것을 우려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9월 사르코지 대통령이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특별연금 제도를 문제 삼고 나서자 노조는 지난 10월18일부터 이틀간 시한부 파업을 벌였다. 국영철도(SNCF)·전기·가스 노조가 참여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추진하는 연금 제도 개혁의 골자를 정리하면 노동자들의 연금 납입 기간은 현재의 37.5년에서 40년으로 길어지지만 실제로 받는 액수는 20~30% 정도 줄어들게 된다. 프랑스에서 연금은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큰일 나는 이슈이다. 1995년에도 프랑스의 중도 우파 정부가 공공 부문 개혁을 단행하면서 연금 개혁을 계획하자 노동자들은 3주 동안 파업을 벌여 정부의 의지를 꺾은 바 있다. 2003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결국 정부가 손을 들었다.
그러면 새로 바뀐 사르코지 정부는 이번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사르코지 대통령은 선거 운동 기간에 이미 파업에 관대한 프랑스의 전통을 바꾸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그의 생각은 “파업 기간에 지하철이 계속 달릴 수 있게 하겠다”라는 발언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거 정부보다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뉘앙스를 이미 풍긴 셈이다.

철도·지하철 등 공공 부문 노조, 무기한 파업 돌입

그 때문에 이번 11월 노동자 파업은 1995년의 그것만큼 거셀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지난 11월13일 국영 철도(SNCF)와 파리 지하철 공사 노동조합을 포함한 공공 부문 노조가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 노조의 파업은 파리를 ‘동작 그만’ 상태로 몰아넣었다. 파리 시내 지하철 노선 중 9개 노선이 멈추었고, 버스도 15% 정도만이 운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프랑스 수송의 핵심인 테제베 역시 11월14일부터는 총 9백여 대 중 70대 정도만이 정상 운영된다고 파리철도공사는 밝혔다.
11월14일에는 에너지 산업을 책임지는 전력공사(EDF)와 프랑스 가스공사(GDF) 노조도 파업에 나섰다. 20일에는 공무원과 교사, 우체국 노조도 파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사르코지 정부가 내년까지 공무원 수를 2만2천명 줄이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원 수 감축에 반대하는 법원노조도 11월29일부터 연대 파업한다고 밝혔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전방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프랑스의 전 사회 부문이 파업으로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의 파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프랑스에서 파업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respectez, et faites respecter)라는 프랑스 공원의 팻말은 파업에도 적용된다. ‘남의 파업을 존중하면 당신의 파업도 존중된다’라는 프랑스식 사고는 항공기가 파업했다는 말에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면서 되돌아가는 프랑스인의 모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록 AFP통신 등은 “며칠 동안 지옥 같은 교통 대란을 겪을 것이다”라고 경고했지만 생각보다 파리의 모습은 평온해 보인다. 파리 2대학의 한 한국인 유학생은 “자전거도 많이 타고 걷는 사람도 많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 지도책 판매가 증가했다는 보도도 있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파업에 익숙한 파리 시민들은 카풀 운동을 전개하고 자전거 대여를 예약하는 등 사전 대비도 끝내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사르코지 당선에서 볼 수 있듯이 프랑스 역시 우경화의 바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정책 중 없앨 것은 과감히 없애고 정부의 역할을 가볍게 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어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궤를 함께할 공산이 크다. 당선 뒤 사르코지측은 “경제성장 지향 정책,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이 예고되어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연금 개혁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국민 58% “정부가 굴복하면 안 된다”

 
노조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1993년 에어프랑스의 구조 조정 계획이 뒤집히면서 시작된 프랑스 노동자의 힘은 이후 15년간 의회의 결정을 뒤집을 정도로 막강했다. 하지만 만약 자신들과 각을 세우고 있는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밀린다면 노조의 힘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위기 의식이 팽배한 상태이다. 특히 프랑스의 대표적 강성 집단인 공무원 노조와 대학생들이 연대하는 이번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피플파워’는 무력화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론이 ‘오른편’으로 이동하고 있는 점은 노조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파업에 대한 관대함과는 별도로 여론이 예전만큼 호의적이지 못하다는 분석이 여러 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지난 11월14일 발표된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BVA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58%의 프랑스인들이 정부가 굴복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사르코지는 현지 언론을 통해 “프랑스는 개혁해야 할 부분이 많으며 국민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라고 말하며 여론에 기대 이번 파업을 해결할 뜻을 내비쳤다.
노조도 강경 분위기와는 별도로 이런 사회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파업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올인’을 택하지 않고 협상 전략을 함께 병행하고 있다. 전략적 판단 실수로 ‘올인’했다가 실패했을 경우, 프랑스 노동운동이 입을 타격이 너무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최대 노동단체인 노동총동맹(CGT)의 베르나르 티보 위원장은 정부와 사용자측에 3자 협상을 제안해놓은 상태이다.
사르코지 정부도 이번 파업을, 대결보다는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 원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과거 노조에 밀린 대통령은 그 책임을 총리에게 떠넘겨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번 노조와의 대결에서 밀릴 경우 정치력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집권 초기 70%를 넘던 지지율은 친미적인 그의 행보와 정책 때문에 50% 아래로 추락했다. 현재의 파업이 앞으로 예정된 다른 부문과의 연대로 확대된다면 지지율이 더욱 요동칠 수 있다. 한시바삐 극한 대립을 피해야 할 처지이다. 그래서일까. 자비에 베르트랑 노동장관이 티보 위원장의 협상 제안과는 별도로 각 부문별 노조 지도자들과 잇달아 회동하며 파업의 해결을 위해 조율에 들어가 바삐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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