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에 빠진 나라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이다”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7.11.1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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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큰소리…실용주의 노선으로 팽창 정책 가속

 
한때 잡초가 무성했던 들판이 현대적 도시로 변했다. 20년 전 중국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늘의 변화를 보고 떠올리는 공통된 생각은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黑苗白描)론이다. 고양이가 쥐만 잘 잡으면 되지 색깔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마오쩌뚱(毛澤東)의 원칙을 송두리째 뒤엎는 반동이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충성스런 공산당원이 더 소중하다는 사상이 휩쓸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마오쩌뚱은 이념으로 채색된 많은 운동을 전개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물론 홍위병 소동이다. 무슨 기술을 배우고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가슴을 붉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물들이는 일이 지상 과제였다. 그 결과 중국은 거의 황폐화되었다.
흑묘백묘주의는 이념을 추방하고 실용주의를 정착시켰다. 덩샤오핑은 완벽한 사회주의 인간을 창조하는 일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발견하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새로운 화두를 찾아냈다. “부자가 되는 것이 가장 영광스럽다.”
많은 중국인들이 이 금언을 실천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는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진 부자가 1백6명이나 된다고 한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이다. 2002년까지는 1명도 없었다. 최근 열린 공산당 대회 기간 중 중국 언론들은 중국이 미국, 일본 다음으로 세계 3위의 경제를 건설했음을 거듭 자랑했다. 20년 전 중국 경제는 세계 29위였다.
덩샤오핑은 30년 전 권력을 잡기 전 두 번이나 숙청되었다. 자본주의 노선을 따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시장경제가 꽃피는 지금 중국인들은 마오쩌뚱 사상에 맹종하던 시절을 아련한 전설로만 기억한다. 상하이의 마천루와 소가 쟁기를 끄는 시골이 공존하는 세상이 왔다. 
사회주의가 상징하는 것은 공산주의 지배이다. 덩샤오핑은 고르바초프의 소련처럼 중국이 분열되는 것을 걱정했다. 공산주의가 실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르바초프보다 먼저 알았다. 그러나 그는 민주주의가 곧
 
혼란이라는 점도 간파했다. 문화혁명을 통해 그 증거를 충분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혼란에 지친 나머지 더 이상의 혼란은 견딜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공존할 수 없다는 점도 알았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권력 분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능청을 떨었다.
덩샤오핑의 개혁이 초래한 정치적 기대는 18년 전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국가 권력에 대한 도전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20년간 지난 수 세기 중 최상의 기적을 연출했다. 중국의 달 로켓은 당 대회에 타이밍을 맞추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은 어떤 의미에서 중국의 커밍아웃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중국처럼 거대한 나라에 문제도 많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극심한 공해는 도시와 농촌을 질식시킨다. 급속한 경제 발전은 사회를 동요시키고 느슨한 규제는 수출을 저해한다. 또한 수출 증대를 위한 상품 수요는 세계 시장을 교란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사실상 아프리카를 통째로 획득하려는 중국의 노력이다.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1950년대 주언라이(周恩來)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프리카를 희망 없는 땅으로 알고 포기했다. 중국은 최근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투자는 이념과는 무관하다. 오로지 경제를 위한 것이다.

 미국이 민주주의 이념 때문에 망할지도 모른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상품이다. 아울러 이 상품을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과 호혜적 공영을 이루는 것이다. 중국은 무력을 통해 민주주의를 확산하려는 미국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11월7일 중국 학자의 말을 인용해서 지구상에 이념을 중시하는 나라로 쿠바, 북한, 이란, 미국을 열거했다. 미국을 이념의 포로로 보는 인식이 파격이다. 세계에서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확산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풍자이다. 아니, 풍자의 단계를 넘어 거의 조롱의 수준이다. 부시의 외교가 민주주의의 미명을 빌려 세계 도처에서 망발을 자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키스탄이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무샤라프 대통령의 협조 때문에 그의 독재를 묵인·방조한다. 이라크를 침공한 것도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때문이 아니라 중동의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임이 드러났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도 이를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세계 유일 강대국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때마침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로마제국과 대영제국의 멸망을 예로 들면서 미국이라는 제국도 언젠가는 해가 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몇 세기 후 중국의 여행자가 폐허로 변한 백악관 터를 바라보며 기념 사진을 찍는 광경을 묘사했다. 로마제국이 오만과 부패로 망했다면 대영제국은 실리를 추구하는 미국의 상업주의에 의해 침식당했다. 13개의 식민 국가를 거느렸던 대영제국이 미국 때문에 망할 것이라는 경고를 당시의 영국은 무시했다. 에이레의 철학자 버클리 주교는 제국의 영화가 서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새로운 제국의 동이 대서양의 다른 쪽에서 틀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철의 여인 대처 총리는 레이건의 영국 잠식 음모를 알았지만 그것을 저지할 타이밍을 놓쳤다.
30년 전 미국은 이란의 팔레비 왕을 전폭 지원했다. 그는 미국의 힘을 믿고 독재를 자행했다. 미국은 팔레비의 친미 정책이 고마워 그의 독재를 묵인했다. 이는 결국 호메이니의 혁명을 유발했다. 미국이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이란은 지금 미국의 잠재적 적이 되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파키스탄이 제2의 이란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런 조짐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을 향해 미국이 언젠가는 민주주의 이념 때문에 멸망할지 모른다고 보는 중국의 인식은 과대망상으로 끝날지 모른다. 중국의 기적적 성장에 같은 파장의 함정이 수반되고 있다는 경고도 있다. 그러나 영원한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사의 교훈은 엄숙하다. 그러고 보면 고르바초프의 방황을 보고 사회주의보다 경제를 앞세운 덩샤오핑의 예지는 놀랍다. 그는 사회주의 이념의 뒤안길에서 은밀히 ‘먹고 사는 이념’을 개발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반도에서는 ‘민족끼리’의 이념이 퍼지고있다. 주체사상의 환영 속에서 시들어가는 북한을 보면서도 세계 12위의 경제를 건설한 한국에 북한의 이념 잔재를 도입하려는 세력이 발호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중국에 잠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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