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머리카락 보였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7.11.2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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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 삼성물산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이 삼성물산을 ‘돋보기’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10월 중순 국세청의 한 고위간부 책상에 보고서 하나가 올라가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보고서에 담긴 주요 내용은 이렇다. ‘삼성물산과 그 자회사인 삼성홍콩이 삼성그룹의 비자금을 투입하여 카자흐스탄의 최대 구리 채광·제련 업체인 카작무스(Kazakhmys)를 2000년에 매입하고, 2001년과 2004년 1, 2차에 걸쳐 매각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시세 차익을 남겼으며, 이를 삼성물산 샐러리맨 출신으로 카작무스의 공동대표였던 차용규씨가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은 지난 1995년 6월부터 2000년 6월까지 5년 동안  카작무스를 위탁 경영했고, 우수한 경영 실적을 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물산은 삼성홍콩과 지난 2000년 7월 카작무스 지분의 42.55%를 매입하면서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카작무스 지분을 매입한 자금은 대한광업진흥공사에서 융자받은 5천9백만 달러를 포함해서 모두 1억6천3백만 달러였다.
그런데 이처럼 의욕적으로 카작무스 지분을 매입했던 삼성물산은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지분을 매각했다. 지난 2001년 10월 지분의 15%를 주당 16만8천9백18원(당시 주당 순자산가치 8만1천6백32원)에 1차 매각해 7백84억8백만원의 투자 자산 처분 이익을 얻었다.
삼성물산과 삼성홍콩은 1차 매각 이후인 지난 2004년 6월에 카작무스를 런던 증시에 상장할 계획이라고 발표했고, 같은 해 7월 런던에 지주회사인 ‘KCC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이에 카작무스의 주가가 크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삼성물산과 삼성홍콩은 갑자기 한 달 뒤인 8월에 카작무스의 잔여 지분 24.77%를 주당 1만9천51원에 2차 매각(총액 1억 달러)했다.
삼성물산과 삼성홍콩의 2차 매각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2003년 말 기준 주당 순자산 가액 4만9천6백17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2004년 2~6월 카자흐스탄 증시에서의 평균 거래 가격이 3만원가량이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저가였다”라는 의혹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삼성물산과 삼성홍콩이 매각한 카작무스 지분을 매입한 ‘페리 파트너스’(Perry Partners)가 바로 ‘삼성맨’이었던 차용규씨의 회사라는 점이다. 삼성물산 등이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떠난 2005년 10월 런던 증시에 상장된 카작무스의 시가 총액은 1백억 달러에 달했고 국제 구리 값 상승도 이어졌다. 이에 페리 파트너스의 지분 100%를 보유한 차씨는 지난 4월 카작무스 지분을 모두 매각해 1조원대의 차익을 올렸고 이후 종적을 감춘 상태이다.
지난 3월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2007년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 따르면, 차씨는 세계 재산 순위 7백54위로 13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거부(巨富)’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29억 달러),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22억 달러) 등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국세청 보고서에는 ‘차씨가 페리 파트너스 설립과 카작무스 지분 매입에 들어간 자금 일부를 스위스 크레디트 펀드에서 대출하는 과정에 삼성물산이 보증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차씨가 삼성그룹 비자금으로 페리 파트너스를 설립하여 카작무스 지분을 매입·매각하면서 1조원대로 늘린 다음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라는 제법 구체적인 내용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공 신화’로 유명해진 차용규씨, 지분 매각 후 행방 묘연

이와 관련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세청 관계자가 최근 비공개로 삼성그룹 고위 인사를 접촉했는데 그 인사가 삼성 쪽 인사들이 페리 파트너스에 차명으로 지분을 투자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런데 국세청은 삼성물산의 비자금 조성 의혹 내사와 관련해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재 삼성물산 비자금과 관련해서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 없으며 설사 그런 게 있다 해도 말할 수 없다”라고만 언급했다.

 

삼성물산 고위 인사도 국세청 내사와 관련해 “전혀 못 들었고 사실과 다를 것이며 차용규씨와 우리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카작무스 지분을 모두 매각한 다음 차씨의 행방은 묘연하다. 일부러 잠적한 것인지 아니면 ‘성공 신화’의 주역이라는 세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피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재계 일각에서는 차씨의 부인 양 아무개씨가 국내 유명 관광지에 있는 수백억원대의 호텔을 인수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국세청도 이같은 루머를 포착해서 양씨가 인수했다는 호텔과 자금의 출처에 대한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 인수 자금이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왔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은 이용철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5백만원 돈 뭉치를 전달하려다 실패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궁지에 몰려 있다.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도 “해외 자재금이나 기계 구매를 대행하는 삼성물산에서 비자금 만들기가 편하다. 그래서 거기에서 오는 양(비자금)이 제일 많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래저래 삼성물산이 삼성 비자금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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