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님 믿습니다, 아멘!
  • 김지방(국민일보 기자) ()
  • 승인 2007.12.0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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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특정 후보 지지 움직임 ‘꿈틀’…보수 - 이명박, 진보 - 정동영으로 ‘분화’

서울 망우동 금란교회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오는 12월12일부터 4일간 특별 금식 기도회가 열린다. 기도회를 알리는 포스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공산주의의 영, 음란의 영, 물질숭배의 영을 멸하고, 대통령 선거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선출되도록 이 나라를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하고, 하나님 앞에 금식할 기도자들을 찾습니다.”
금란교회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일련의 보수 집회를 주도한 김홍도 목사가 담임으로 있다. 1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금식 기도회에서 김목사는 격려사를 할 예정이다. 이 특별 금식 기도회가 어떤 분위기가 될지는 김목사의 지난 7월8일 설교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김목사는 이날 “하나님의 백성이 내밀 수 있는 최후의 히든 카드는 금식 기도이다. 친북 좌파 세력이 전자 개표기 조작이나 부정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아 적화 통일을 획책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왕이면 예수님 잘 믿는 장로가 (대통령)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라고 설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김목사의 설교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경고했다.
올해 대선의 특징 중 하나는 이처럼 개신교가 전면에 등장해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때로는 노골적으로 선거법을 무시하고 정치적인 발언을 쏟아놓는 모임이 수두룩하다. 오는 12월6일에는 ‘한국 교회 지도자 금식 기도대회’가 서울교회에서 열린다. 이 기도회의 주제는 ‘바알(성경에 나오는 이방 종교의 신)에게 무릎 꿇지 않는 한국 교회 지도자 금식 기도대회’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12월1일 재향군인회와 함께 안보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한기총 회원인 62개 교단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선관위는 이들 모임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이 나오지 않을지 주시하고 있다.
선관위는 김목사의 선거법 위반 행위를 두 차례 적발해 서면 경고했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는 부흥회에서 이명박 후보를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설교했다가 역시 선관위의 경고를 받았다. 서울 신사동 소망교회는 주일예배 시간에 이후보가 당선되도록 해달라고 공개적으로 기도했다가 선관위의 경고를 받았다. 두레교회 담임이자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인 김진홍 목사도 선관위에 고발당했다.

 

정치권도 교회를 적극 이용하려 한다. 이명박 후보는 지난 10월3일 자신이 출석하는 서울 신사동 소망교회에서 강연을 했다. 소망교회 교인들은 강연이 끝나고 나오는 이후보를 둘러쌌다. 성경을 펴서 이후보의 사인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후보의 손을 꼭 잡고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되어 달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교회 청년들은 “장로님 사랑해요. 기도하겠습니다”라고 외쳤다.
지난 11월7일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는 당중앙위원회 필승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명박 후보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당원들 사이에서는 ‘아멘’ ‘아멘’하는 소리가 들렸다.
올 대선에서 유독 교회의 정치 참여가 이처럼 노골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보수 진영의 위기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대선에서 패배한 보수 진영은 이번에도 정권을 얻는 데 실패하면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을 느끼고 다각적으로 준비해왔다. 이들은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실패한 이유를 두 가지라고 분석하고 있다. 첫째는 후보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진보 진영의 공세를 막지 못했고, 둘째는 노사모와 같은 강력한 대중적 지지 기반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의혹이 불거지자 보수 진영 일각에서 이회창 후보를 차선책으로 내놓은 것은 첫째 요인에 대한 대비책이다. 둘째 요인에 대한 대비책이 바로 교회를 정치로 호출한 것이다. 한국 보수 세력의 이데올로그인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은 2002년 대선 패배 직후부터 교회를 상대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교회가 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3년 1월 시청 앞 기도회를 앞두고 그는 이렇게 썼다.
“7천만 민족을 겨냥한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과 전쟁 책동에 대하여 애국 기독교 세력이 거대하게 움직인 것은 문명 국가들의 국제적 연대에 의한 김정일 봉쇄 전략에도 일조가 됩니다. 머지않아 국내외 정세는 한국의 자유-애국-기독교 세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정치 엘리트들의 대리전” 비판

이번 대선에서 보수 교회가 정치에 적극 나선 것은 이미 5년 전부터 준비되어온 정권 탈환 프로젝트의 일환인 셈이다.
보수 교회의 정치 개입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정치에 개입하기는 개신교의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이다. 한국민중신학회 인권목회자동지회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열린평화포럼은 지난 11월23일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한나라당 집권은 막아야 한다” “부패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면서 노골적으로 정후보 지지 입장을 밝혔다. 정후보도 “(진보진영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든든한 백으로 생각한다”라며 자신에 대한 지지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보다 앞선 11월19일에는 박형규 목사, 조화순 목사, 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 등 개신교 진보 진영의 원로들이 지난날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 개혁 세력의 후보 단일화’를 촉구했다. 사실상의 ‘정동영 지지 선언’이었다.
그 3일 전인 11월16일에는 호남 출신 목회자 모임인 호산나선교회에서 정동영 후보를 초청했다. 이 모임 회장이자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한 전병금 목사는 “정후보가 당선되게 기도하자”라고 말했다. 같은 교단 원로인 김인호 목사는 “정후보가 반드시 대선에서 이기게 하시고, 민족을 위해 (도구로) 써주소서”라고 기도했다. 김영곤 사무총장은 “5년 전 (이 모임에서) 노무현 후보를 만나 기도를 같이 했는데, 힘을 얻어 승리했다. 이번에도 정후보가 잘 되기를 바란다”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렇다면 개신교의 정치 개입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보수와 진보로 분열된 한국 사회의 화해와 통합을 위해 애써야 할 교회가, 오히려 신의 이름을 빌어 분열을 대립으로 더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교회의 정치 참여가 결국 정치 엘리트들의 대리전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1월26일과 27일, 한국 교회의 중심지인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과 기독교연합회관에는 두 손님이 찾아왔다. 26일에는 외국인 노동자와 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려온 목회자와 교인 3백여 명이, 법무부가 불법 체류자 단속을 이유로 예배 시간 교회에 난입해 들어왔다며 항의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튿날에는 1백50일째 파업 중인 이랜드 노조원들이 교회협 사무실을 점거해 사태의 해결을 위해 교회가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외국인 노동자와 비정규직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슈이다.
교회의 정치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이 두 농성이 벌어지는 곳에, 대선 후보를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 금식 기도까지 했던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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