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좀 멀리...중국은 가까이
  • 조홍래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7.12.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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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11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호주의 케빈 러드 신임 총리는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펼칠까.

호주에 중도 좌파의 노동당 정권이 들어섰다. 호주 유권자들은 지난 11월24일 총선에서 우파 자유연합을 이끈 존 하워드 총리의 집권을 종식시켰다. 이번 총선 결과는 11년 반에 걸친 장기 집권에 대한 염증에다 맹목적 대미 밀착 외교, 그리고 ‘삶의 질’ 논란을 일으켰던 기후변화 도쿄협약 서명 거부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짙다. 당장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 통으로 알려진 케빈 러드 신임 총리가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고, 중국과는 얼마나 가까워질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는 대북 강경책을 구사한 부시 행정부를 비판해와 한반도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러드는 개표가 완료되기도 전에 전임자의 대미 외교를 수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실익을 챙기지 못한 채 거의 굴종에 가까운 ‘친부시 정책’으로 일관한 보수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서둘러 부응한 것이다. 그는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호주는 미래로의 전진을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는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중립’을 유지하면서 대신 아시아의 거인으로 부상한 중국과 더 가까워지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는 당장 이라크에 파견된 5백50명의 호주 병력을 철수하고 도쿄협약에 서명하는 한편 중국과는 경제 협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호주가 교토협약에 서명하면 미국은 서명을 거부하는 유일한 나라로 남게 된다. 뉴욕 타임스는 이것만으로도 부시의 외교적 고립은 더 심화된다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은 다음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되는 유엔 기후회의에서 적지 않은 국제적 압력에 직면할 것이다.

 

러드 총리, 호주·미국·중국 3국 동맹 구축에 관심

 하워드의 무비판적 대미 관계는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았으나 양국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시드니에 있는 로위(Lowy) 국제정책연구소의 마이클 풀리로브는 부시가 백악관에 있는 한 대미 정책은 다소 조정될 터이지만 2008년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다면 양국관계는 다시 밀접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호주는 그동안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는 논란이 있었으나 뉴질랜드 및 미국과의 3국 앤저스 동맹에는 충실했다. 
호주의 권력 변동이 만들어낸 최대의 관심사는 중국과의 관계이다. 호주는 군사적으로는 미국과 철석 같은 동맹을 유지했으나 그 반대 급부, 즉 경제적 이익은 별로 챙기지 못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중국이 더 중요했다. 전임 정권은 미국 및 일본과의 3각 동맹에 치중했다. 러드는 일본 대신 중국을 참여시키는 호주·미국·중국 3국의 새로운 전략 동맹을 구축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는 환태평양 지정학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 확실하다. 그동안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 미국, 영국 및 일본을 중심으로 실시된 핵확산방지구상(PSI) 작전에서도 호주는 유연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고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러드는 지난 9월 후진타오(胡錦渡) 중국 주석이 호주를 방문했을 때 중국어로 회담을 해 중국계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후주석은 비민주 국가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호주 의회에서 연설했다. 호주의 친중국 정책은 하워드 때부터 뿌리를 내렸으나 러드의 집권으로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호주는 석탄과 철광석을 중국에 대량으로 수출해 중국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양국 무역은 지난 10년 동안 거의 10배 늘어 지난해에  3백30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중국 특수는 그  혜택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배분되지 않고 석탄과 철광석 생산지인 서부 호주와 퀸스랜드에 집중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러드는 승리를 쟁취한 후 중국 TV와 회견에서 ‘50년 협력’을 약속했다. 그는 루커원(陸克文)이라는 중국 이름을 사용할 정도로 중국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양국 경제 교류는 더욱 업그레이드될 것이고 군사적 측면으로까지 협력 분야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보면 러드의 등장은 호주의 새 시대를 상징한다. 그의 노동당은 테러와의 전쟁 같은 미국 주도의 거창한 과제보다는 기후 변화 같은 삶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실권한 하워드 전 총리가 호주 역사 1백6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의원 직까지 상실하는 불명예를 당하게 된 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외면하고 미국의 이념을 추종한 업보인 셈이다.

‘명분보다 국익’ 선택한 실용주의 노선 추구할 듯

호주 선거로 하워드 못지않게 속이 쓰린 사람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 부시는 이라크 전쟁과 기후협약 문제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을 잃었다. 하워드 전 총리는 백악관과 부시의 텍사스 목장을 가장 자주 방문한 외국 지도자 중 하나이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요르단의 압둘라 왕,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 다음으로 그는 부시의 귀빈이었다. 러드는 선거 이후 가진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부시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다고 밝히면서 내년에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워드만큼 미국에 자주 가지도 않을 것이고, 부시와의 밀착은 더욱 더 없을 것이다. 
러드 치하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예상되는 영역은 환경, 핵 및 이라크 문제이다. 그는 승리를 자축하는 기자회견에서 이라크 주둔 병력을 철수하고 지구온난화에 관한 도쿄협약에 서명할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호주 국립대학의 존 하트 교수는 미국과 영국도 이라크 철군을 논의하고 있는 만큼 호주의 철군은 상징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호주군은 5백50명이 철수해도 3백명이 남는다. 철군은 외교적 제스처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적 지지 없이 치르는 전쟁에서 이런 제스처는 의미가 있다. 러드의 철군 정책은 하워드와 너무 대조적이다. 호주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부터 현지에 특수부대를 파견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마찰이 예상되는 또 다른 분야는 우라늄 정책이다. 호주는 세계에서 많은 우라늄 매장량을 가진 나라 중 하나이다. 미국은 인도에 우라늄 판매를 추진하고 있으나 러드는 핵실험금지조약(NPT)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에 대한 우라늄 수출에 반대한다. 또  호주에 있는 미군 기지를 놓고도 논란이 예상된다. 호주 북부에 있는 미군기지는 지금까지 별로 주목되지 않았으나 러드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호주의 정권 교체는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와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무작정 부시를 지지했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정치적 패배를 맛보았고 이번에는 하워드가 뒤를 이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친미로 전환한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세계사의 조류는 노선 자체가 아니라 어떤 노선이 국익에 얼마나 기여하느냐를 따지는 실용주의로 흐르고 있다. 하워드의 11년은 실패라고 할 수 없다. 경제도 그럭저럭 성장했다. 그럼에도 실각한 것은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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