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BBK 뒷바람’ 타는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7.12.1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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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소폭 상승…정동영, 이회창 제치고 2위 올라

 
대통령 선거를 10일 남겨놓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이후보는 BBK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지지도가 올라 다시 40%대에 진입하며 대세론 굳히기에 들어가는 모양새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도 BBK 발표 이후 지지도가 올랐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대선판이 이명박-정동영 구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후보들도 ‘이명박 때리기’에 가세하면서 막판 대권 전선은 표면적으로는 ‘이명박 대 반(反)이명박’ 구도를 보이고 있으나,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반이명박’ 전선은 언제라도 변화할 수 있다.
큰 흐름으로 보면 ‘이명박 대세’는 맞다. 더구나 과거 예로 볼 때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간 뒤 흐름이 바뀐 적이 없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이 흐름을 뒤집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무엇이 터져나올지 알 수 없는 대선의 특성과 이명박 후보에게 늘 따라붙는 ‘불안한 후보’라는 별칭이 섣부른 예상을 주저하게 하는 것도 현실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BBK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50%를 넘는다. 수사 결과는 발표되었지만 정치권에서 “이번 대선은 BBK 대선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BBK에 다 걸고 있다. 연일 서울 광화문과 명동거리에서 검찰을 규탄하는 데 나서고 있다. 지난 12월5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검찰이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진술해주면 형량을 조절하겠다는 내용이 쓰여 있는 ‘김경준 메모’를 펼쳐들고 검찰을 강하게 비난했다. 분위기는 흡사 1980년대 군사 독재에 저항해 싸우던 민주 인사들의 집회장 같았다. 정동영 후보측이 느끼는 위기의 강도가 비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하는, 시위 현장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연단에 오른 김근태 공동선대위원장은 “군사 독재에 저항해 싸울 때가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손학규 공동선대위원장도 “대통령 선거전에 앞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다시 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횡포로부터 정의를 지키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2월6일 낮 명동에서 열린 집회에서도 분위기가 비슷했다. 참가자들은 ‘진실 승리’ ‘수사 무효’라고 쓰인 종이팻말을 들고 검찰을 비난했다. ‘정치 중립 한다더니 줄 서기가 웬 말이냐’ ‘거짓말 후보 비호하는 정치 검찰 자폭하라’ 등의 구호도 외치며 20년 전 6월 항쟁의 분위기를 되살렸다. 정동영 후보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과 함께 나라의 장래에 대해 토론한다는 것이 부끄럽다”라며 이명박 후보를 비판했다.
BBK 수사 발표에 대해 정동영 후보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이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잘 드러난다. 정후보는 명동 집회가 열리기 전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BBK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무서운 시대가 다시 오고 있다는 전율을 느꼈다. 검찰이 아니라 이명박 후보 선대위의 발표문을 듣는 것 같았다. 검찰은 이명박 후보에게 줄 섰다. 수구 정치 세력과 특정 언론, 검찰 등의 수구 부패 동맹이 결성되었다”라고 현실을 규정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은 서울구치소와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해 김경준씨를 만났다. 정성호 의원은 “김씨가 ‘검찰이 검찰도 살고 당신도 살 수 있는 길은 이면계약서를 위조했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다”라며 면담 결과를 설명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관계자는 “BBK 사건의 수사 결과에 의문점이 많다. 국민들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투표일까지 계속 이 문제를 붙들고 갈 수밖에 없다. 여론 흐름이 어떤 쪽으로 흘러가느냐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투표일을 10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정후보는 호남 표심과 민주·개혁 표심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집토끼를 확보하고 산토끼를 잡으러 나가야 하는데 아직도 집토끼를 확실하게 잡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BBK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정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한 원인을 ‘호남 표심의 결집’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호남 표심의 결집도는 과거와 비교할 때 훨씬 낮다.

정후보, 믿었던 호남권에서도 확실한 성과 못내

지난 11월23~24일 광주일보가 광주·전남 지역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후보의 지지도는 36.9%였다. 2위인 이명박 후보를 20% 이상 앞섰지만 1997년 김대중 후보나 2002년 노무현 후보가 비슷한 시기에 70% 가까운 수치를 기록했던 것과 견주어보면 결집도가 낮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호남 지역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정보리서치가 11월30일 광주·전남 지역 19세 이상 성인남녀 6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현재 마음에 드는 후보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라는 응답자가 42.7%에 달했다. 20% 남짓에 불과한 다른 지역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정후보로서는 가장 든든한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호남 유권자들의 이런 냉정함이 아쉽기만 할 것이다.
BBK 수사 결과를 규탄하는 것은 민주·개혁 세력을 결집하는 데 일정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판세를 흔들 만큼 파괴력을 갖기는 힘들어 보인다. 검찰이 정예 수사 인력을 투입해 결론 낸 사항에 대해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을 뒤집을 만한 결정적인 물증이 나오지 않는 이상 힘을 갖고 굴러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눈길을 끄는 것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민주당 이인제 후보와의 단일화 여부이다. 이것을 성사시켜 정후보가 대표 주자로 나선다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가까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확실하게 정동영-이명박 구도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형평성 문제 등을 들어 단일화를 위한 정동영-문국현 후보의 TV 공개토론을 허락하지 않았고, 시민·사회단체 인사들도 적극적으로 단일화를 중재하는 노력을 접음에 따라 성사 여부는 안갯속이다.

 

범여권 후보 단일화도 ‘가물가물’

문후보 선거대책위 내부에 단일화에 회의적인 시각도 많기 때문에 단일화가 무산된다면 문후보는 내년 총선을 바라보고 이른바 ‘가치 정당’을 추구하는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와의 단일화도 한 번 틀어진 이후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2%대에 불과한 낮은 지지도를 보이는 상황이어서 안팎으로부터 단일화 압박을 받고 있고 내년 총선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막판에 정후보와 단일화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애초 민주당과의 단일화를 바탕으로 호남-충청-수도권을 잇는 서부벨트를 구축해 승리하는 시나리오를 그렸던 정후보측의 구상은 어긋났다. 충청권은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를 끌어들인 무소속 이회창 후보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JP)와 손을 잡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패권 싸움장이 되었다. 호남 표심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정후보는 수도권에서도 이명박 후보에 대해 우위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남은 선거 기간 동안 정후보는 BBK 쟁점을 살려 이후보를 공격하면서 단일화에 진력할 것으로 보인다. 호남·수도권 표심을 잡기 위한 특별 대책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 표심은 곧 수도권 표심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정후보로서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한나라당은 승기를 잡았다고 보고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박형준 대변인은 12월6일 “BBK 수사 결과가 발표됨으로써 이명박 후보가 정권 교체의 중심 세력이자 정통 후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명박 대세론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후보는 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 참석해 “더 낮은 자세로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BBK 사건 수사 결과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리하게 나오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애초 당 주변에서는 주가 조작과 관련해서는 무혐의를 예상했지만, 다스의 실소유자 의혹 등과 관련해서는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후보측의 한 관계자는 “BBK 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는 실제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상 기류가 생겨난 충청권을 JP가 중심이 되어 막아주고 연령별로는 30~40대, 지역적으로는 호남·충청, 사회적으로는 약자 계층을 타깃으로 한 공약을 내놓으면서 막판 표심을 관리할 것이다. 그러면서 김경준씨가 귀국한 막후에 여권의 공작이 있었다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운동에 적극 나서면서 영남권이 안정 기조에 들어간 것도 이후보측에 여유를 주었다. 한편으로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에 대한 공세도 펼치고 있다. 박형준 대변인은 12월6일 “역할이 끝났으면 이회창 후보는 후보를 사퇴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명예를 지키는 길을 택하라”라고 압박했다.

영남권, 이명박 후보 쪽으로 급속 결집

영남권은 이명박 후보 쪽으로 급속하게 결집하고 있다. 호남권이 정동영 후보에게 몰리는 것보다 결집도가 높다. 12월6일 대구에 있는 매일신문이 대구MBC와 공동으로 만 19세 이상 대구·경북 유권자 1천2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56.4%를 기록했다. 2위인 이회창 후보(17.1%)와는 세 배 이상 차이(39.3%포인트)가 났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11월10일 조사 때보다 10.6% 상승한 반면 이회창 후보는 오히려 10.4% 하락했다. 이후보는 영남권은 박근혜·정몽준 의원에게 맡기고 자신은 호남·충청·수도권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대선 이후’를 겨냥한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미 누가 인수위에 들어갈 것인지 인선이 끝났다는 말이 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고위 인사를 만나게 되면 얘기 좀 잘해달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책 결정 채널을 둘러싼 신경전이 벌어지는 모습도 눈에 띈다.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한나라당 내부의 권력 투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BBK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지지도가 빠지고 있는 이회창 후보는 한나라당이 중심이 되어 제기하는 ‘후보 사퇴론’을 일축하고 대선에 완주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12월7일 충남 아산 현충사를 참배한 이후보는 “사즉생의 각오로 대선전에 임하겠다”라는 결의를 밝혔다. 그러나 이후보의 지지도는 투표일이 임박할수록 빠질 가능성이 크다. 출마 명분도 취약한 데다가 뚜렷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세력으로 보아도 믿을 구석이 든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충남을 기반으로 둔 국민중심당이 이후보를 지지하기로 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이다. 하지만 이 또한 JP가 한나라당에 입당해 충남을 휘젓고 다니면서 유세까지 하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효과가 반감되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12월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후보가 끝까지 완주해 내년 총선에서 선명 보수당을 창당해 보수 양당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후보는 이미 이런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중심당을 기반으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규합해 세를 불려 내년 4월 총선 때 선명 보수당의 기치를 드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같은 이가 대선 이후 합류하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이후보는 내년 총선 때 쓴맛을 볼 가능성이 크다. 이후보로서는 대선 승패 여부보다도 자신의 정치 인생 자체를 건 대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라는 야심찬 슬로건을 내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노당은 요즘 12월7일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는 등 삼성에 대한 비판적인 기류를 흡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권후보는 유세 현장에서 “삼성 특검은 권영길 법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권후보의 지지도는 5~6%에 머무르고 있다. 이번 대선을 전환점으로 삼으려고 했던 민노당으로서는 내년 총선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대선 후보들은 ‘BBK 언덕’을 넘어 결승점을 향해 마지막 안간힘을 내고 있다.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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