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이상하다고?
  • 정은호 (제로인투자자문 대표) ()
  • 승인 2007.12.1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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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언론, 인사이트 펀드에 “한국적 사고의 산물” 평가…자금 쏠림 현상은 당연한 일

 
"인사이트 펀드는 한국적 사고의 산물, 우리의 방식으로는 이해 못해.” 며칠 전 발간된 어느 신문의 외국계 자산운용사 대표이사 인터뷰 기사 소제목이다. 기사에 따르면 자신들은 “다양한 나라에서 해외 펀드를 운용해왔지만 지금까지 인사이트류의 펀드는 하나도 없었고, 앞으로도 운용할 계획이 없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뭔가 우리 투자자들을 자신들이 속해 있는 세계와 다른 영역의 사람들로 구분하고 있다는 느낌은 필자 혼자만의 생각일까?
 필자가 인터뷰 과정을 지켜보지 않아서 그 내용이 제대로 활자화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이 평소 국내 운용사와는 ‘확실히’ 차별화된 세계적인 컴플라이언스 수준을 자랑해온 것으로 보아 의도와 다른 기사가 나오도록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투자 문화는 이렇게 투자에 대해 독특한 문화와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과연 이러한 외부의 시각이 적절한가에 대해 몇 가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CEO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한국적 투자 문화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는 아마 급격한 자금의 이동과 몇몇 운용사(펀드)로의 쏠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산업은행의 자료에 의하면 2004년 우리나라 가계 금융 자산 중 현금 및 예금의 비중은 55.3%로 미국 15.5%의 세 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6년 말의 한국은행 통계를 보아도 가계의 현금 및 예금 비중은 47.2%에 달한다. 이러한 비중은 2020년이 되어도 25.5%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어 미국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한편 주식 비중은 2004년 7.6%로 미국의 45.2%의 6분의 1 수준이다. 미국이나 선진국의 가계 금융 자산 구성이 그들의 시각처럼 세계적인 표준에 가깝다면 우리나라의 향후 방향은 단순하다. 현금 및 예금의 비중은 획기적으로 낮추어야 하고 그만큼 주식을 비롯한 금융 자산의 비중은 높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금이 펀드를 중심으로 한 증시로 쏠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적립식 펀드를 통해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투자 비중 상승에도 우리나라의 금융 자산 비중은 아직 초라한 수준이다. 올해 나타난 국내 주식시장과 중국, 이머징마켓의 놀라운 수익률에 맞추어 펀드 투자가 증가하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까?
몇몇 회사로의 쏠림 현상도 시각에 따라서는 다르게 볼 수 있다. 미국 주식시장은 1964년부터 1980년까지 17년 동안 다우지수가 874에서 1포인트 상승한 875로 끝났다. 그 이후 1981년에서 1998년까지 후반 17년간 875에서 시작해 9181까지 9493%가 상승했다. 그 이후 주가는 본격적인 상승 추세에 돌입해 올해 14000을 넘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인터뷰를 했던 그 CEO가 속해 있는 세계 최대 운용사도 바로 그 시기에 특정 펀드를 통해 명성을 쌓았고 본격적으로 성장을 하게 되었다.

한국 투자 문화는 오히려 서구적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1987년부터 2004년까지 500포인트와 1000포인트 사이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어느 시기에 투자해도 자신 있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시기를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간 우리나라 시장에서 장기 투자를 말하기가 어려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금이 회복되려면 얼마를 기다려야 하는지, 어느 정도가 장기인지에 대해서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상황이 20년 가까이 이어졌던 것이다.
증시가 고점을 돌파하고 본격적인 상승 추세에 들어선 것은 2005년의 일이다. 당연히 증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자금이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어디로 자금이 몰릴 것인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성과가 좋았던 펀드와 운용사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열린 한 세미나에서 금감원 부원장이 발표한 것처럼 1990년대 미국 상위 5개 운용사의 점유율은 37%, 우리나라는 2007년 9월 현재 39.4%이다. 즉 상위 5개사만 비교하면 현재 국내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금의 쏠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차피 이것은 시간이 해결할 일이고 우리는 그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인사이트류라는 표현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아마도 그분은 인사이트 펀드의 투자 대상이나 투자 비중이 자유롭다(속칭 ‘몰빵’이 가능하다)는 점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한국적 투자 문화라고 표현한 것 같은데 이것은 전혀 ‘한국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서구적’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펀드가 거의 없었고 성공하지도 못했다. 가장 비슷한 형태로는 2006년 4월에 설정된 ‘푸르덴셜Advisor성장배분형재간접’ 펀드가 약관상 주식 비중이 90%, 채권 비중이 10~100% 정도로 비교적 많은 재량권을 가지고 운용되는 형태였지만, 재간접 펀드였고 설정액도 미미한 상황이었다. 투자 대상이 자유롭고 투자 비중에도 제한이 없는 형태의 펀드는 오히려 외국에서 자산배분 펀드(asset allocation fund)라는 명칭으로 일찍부터 운용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 최대의 인덱스펀드 그룹인 뱅가드그룹(Vanguard Group)에서 1988년부터 1백20억 달러 규모로 운용하는 펀드가 대표적이다. 이 펀드는 전망이 확정되면 주식, 채권, 유동성 등 어떤 자산에든 100%까지 투자하는 형태로 운용될 수 있다. 인터뷰를 했던 CEO가 속해 있는 회사에서도 미국 주식, 해외 주식, 채권, 현금성 자산 등에 20~80%까지 마음대로 투자할 수 있는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대체 무엇이 한국적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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