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져 보이거나, 휘어 보이거나
  • 이문신 (관악연세안과 원장) ()
  • 승인 2007.12.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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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반변성, 망막 중심부에 문제 생기는 노인성 질환…근본 치료는 아직 멀어

 
몇 년 전부터 부쩍 이름이 알려진 안과 질병이 하나 있다. 흔히 황반변성이라고 하는 ‘노인황반변성’ 혹은 ‘연령관련성황반변성’(age related macular degeneration)이 그것이다. 매년 11월11일을 ‘눈의 날’로 정해 눈의 건강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를 삼는데 올해 주제가 바로 ‘(노인성)황반변성’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인연이 깊은 질병이기도 하다.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이 전부 노인성황반변성과 연관된 맥락막신생혈관에 대한 내용이었다. 많은 안과 질환이 이름만으로는 도대체 무슨 병인지 알기 어렵다. 특히 눈 속 망막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름도 비슷하고 증상도 비슷한 점이 많아 헷갈리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선 용어부터 간단히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황반변성은 말 그대로 황반이 변했다는 것이다. 황반은 사진기의 필름에 해당하는 조직인 망막 중에서도 중심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한다. 요즘 일상에서는 필름카메라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디지털카메라 액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한데 단순히 필름 혹은 액정에 비교한다면 중요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사진기에서는 필름이든 액정이든 중심부 일부가 망가져 보인다 해도 그 이외 부분의 사진 선명도가 중심 부분과 같기 때문에 그 부분을 피해서 사진을 찍는다면 물체를 식별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 눈에 있는 망막은 전혀 다르다. 망막 중심부인 황반을 벗어나면 망막의 기능이 황반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우리가 시력을 재는 것도 사실상 황반의 기능이지 전체 망막의 기능이 아니다. 만약 황반부가 기능을 못하고 주변 망막은 정상이라면 사진기처럼 중심 부분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시 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된다.
황반변성의 증상은 보려고 하는 물체의 모양이 일그러져 보이거나 선이 휘어 보이거나 심하면 안 보이는 것이다. 이는 황반변성의 특징적인 증상은 아니다. 여행 가서 독사진을 찍는다고 가정해보자. 좋은 경치를 배경으로 중앙에 사람을 배치하고 찍었는데 막상 사진을 보니 사람은 일그러져 나오거나 아예 나오지 않고 배경만 나온 셈이다. 필름이 찢어져서도 그럴 수 있고, 뭔가 묻어서 그럴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그 부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것이 무엇인지는 사진기를 열어서 필름을 보아야 안다. 황반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원인이 무엇이든 비슷한 증상을 보이게 된다.
비슷한 증상을 보일 수 있는 질환으로 황반열공(macualr hole), 황반주름(macular pucker), 중심성맥락망막염(중심성망막증, chorioretinitis centralis) 등이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단순히 중심부만 가려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된 시력의 기능이 손상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시력 기능 손상이 가장 큰 문제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대부분 연령이 높을수록 많이 발생하므로 노화가 주원인으로 생각되기는 한다. 나이가 드는 것은 막을 방법이 없으니 조절할 수 있는 다른 원인이 더 중요한데 흡연이나 고혈압, 고지혈증 등은 꽤 의미 있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자외선도 영향을 준다고 되어 있다.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C, E 등 항산화비타민, 아연, 구리 등 미네랄의 섭취가 황반변성의 진행 억제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시중에 있는 대다수의 눈 영양제는 이와 같은 성분으로 되어있다.
치료 방법은 딱히 이렇다 할 것이 없다. 황반변성은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면 황반이 녹아버리는 질환이다. 황반변성에서 실명이 되는 이유는 변성된 조직 때문은 아니다. 망막과 바로 인접한 구조가 맥락막이라는 혈관이 매우 풍부한 조직이다. 황반변성으로 녹아버린 황반 부분으로 맥락막에서 혈관이 자라게 된다. 이 혈관은 정상 혈관이 아니라 매우 약한 구조를 가지게 된다. 약한 혈관이기 때문에 쉽게 출혈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 출혈이 시력 손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이 출혈을 유발하는 신생혈관, 즉 맥락막신생혈관이다. 대상이 정해졌으니 치료 방법은 어떻게든 맥락막신생혈관을 없애거나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인터페론 주사를 이용한 치료를 하기도 했으나 효과가 없다고 하여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 가장 대표적인 치료인 레이저 치료는 출혈을 유발하는 신생혈관을 태워버리는 방식이다. 비쥬다인이라는 약재를 이용한 광역학요법(PDT:photodynamic therapy)도 신생혈관을 주로 레이저로 치료할 수 있게끔 특수 약재를 병용한다. 최근 아바스틴, 루센티스 등 혈관형성억제제를 눈에 주사해서 신생혈관을 치료하는 방법도 있다. 임상적으로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치료법은 황반변성 자체의 치료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맥락막신생혈관을 처치하는 것이며, 실제로 광역학 요법의 경우는 고도근시나 외상 등으로 인한 신생혈관의 치료에도 많이 사용된다.
황반변성은 선진국형 실명의 3대 원인 중 하나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서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해 연구를 하는 질병이기에 예전에 비해 좋은 치료법이 많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한계는 있다. 우선 아직은 근본 치료가 요원하다는 것이다.  뚜렷한 진행 억제 방법이 없는 것도 병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황반변성에서 실명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확실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없어 환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이 문제는 황반변성뿐 아니라 많은 망막 질환에서 동일하다. 안과의사끼리 우스갯소리로 ‘망막은 막막하다’라고 말한다. 망막은 뇌세포가 눈으로 나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손상을 받으면 정상 회복이 어렵다. 예를 들어 겨우 눈앞에 물체가 있는 것을 보는 정도의 눈을 치료해서 0.1 정도가 되었다면 분명히 치료의 효과는 있고 이전에 비해 삶의 질도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 시력이라는 것이 휘어 보이고 가려 보이고 일그러져 보이는 증상들이 같이 있는 상태이므로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황반변성은 노화가 주원인으로 생각되지만 흡연이나 고혈압도 원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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