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국·김치’에 다 들어 있다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 승인 2007.12.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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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식에 녹아 있는 상상 밖의 우리 문화 읽기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로 현대는 다양한 ‘미각’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음식 관련 정보가 쏟아지고 각국의 음식을 한 건물에서 모두 맛볼 수 있기까지 하다. 음식은 ‘먹는다’는 행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의학에서는 치료 행위의 하나로, 또 끊임없이 미각을 창조하는 등 문화 행위로 그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상류층에서만 세련된 음식 문화를 향유하던 것은 옛말이다. 명품을 구입하듯 고급 식당에서 ‘요리’를 맛보는 것은 촌스럽게 여겨지는 시대이다. 물론 경제적 풍요가 따르면 편하겠지만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은 경제적 풍요보다 앞선 미식 감각과 문화적 취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문화적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정보와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고급 식당을 찾아도 그냥 ‘먹었을’ 뿐이고, 뭘 제대로 아는 삶은 동대문 먹자골목에서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센스 있는 사람이 음식 만드는 데도 센스를 보인다’라고 할 수 있는데, 밥을 지을 때 쌀과 잡곡을 어떤 비율로 섞는지 센스 있는 사람은 참 맛깔나게 밥을 차려낸다. 국 끓일 때 어떤 재료들을 얼마만큼 넣을 것인지도 ‘눈썰미’에 달렸다. 눈썰미는 굳이 요리학원에 다녀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관심의 깊이와 넓이에 좌우된다. 그래서 프랜차이즈 외식 업체인 원앤원이 최근 외식 산업의 발전과 한식의 세계화를 이끌어나갈 역량 있는 인재들의 논문과 아이디어를 찾는 공모전의 제목을 ‘지(知)&미(味)’로 정한 것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 옛말에 ‘약식동원(藥食同原)’이라는 말이 있다. ‘약과 음식은 그 근본이 동일하다’라는 뜻인데, 한식은 이 말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음식이 영양을 보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몸을 고치는 기능까지 갖고 있다’는 우리 조상들의 믿음은 유난히 약식, 약과, 약쑥, 약주 등 ‘약’자가 들어간 음식들을 많이 탄생시켰고, 건강에 좋은 제철 음식을 애용하는 음식 문화를 이루어왔다. 특히 요즘 한식은 국제적으로 ‘비만과의 전쟁’에서 가장 유리한 음식으로 주목되고 있다. 영양학적으로 동물성 기름과 식물성 기름이 7 대 3의 비율을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건강식인데, 한식만큼 육식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음식은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어쩌다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 우리 조상들의 관심의 깊이와 넓이에 기인한 것이다.

한식에서 건강 비결과 한국인의 정체성 찾아

서구 영양학을 공부했지만 한국 음식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건강식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늘 ‘한국 음식 전도사’를 자칭하고 다니는 정혜경 교수는 최근 펴낸 <한국음식 오디세이>에서 우리 음식의 가장 큰 특징으로 ‘건강함’을 꼽으며 한식에 숨어 있는 과학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전통적인 구황식이었던 무, 당근, 시금치, 냉이, 아욱 등의 재료에 섬유질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 또 조상들이 즐겨 먹은 나물에도 과학이 숨 쉬고 있다. 채소는 삶으면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에 생으로 먹는 샐러드보다 야채 섭취를 늘릴 수 있고, 말린 나물은 말려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불려 먹을 수 있으니 서양의 샐러드보다 ‘재활용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한식의 건강성에 주목한 저자는 ‘한식 세계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전통 음식과 관련한 문화 상품 개발 등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 물론 음식학자답게 고려 시대부터 근대 이후까지 한식당의 변모를 살피면서 개선해야 할 지점과 벤치마킹해야 할 지점도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먹을거리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라고 말한다. 한식을 보면 한국 문화가 보인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씌어진 음식 ‘뒷담화’라고 할 수 있다. 뒷담화들이란, 아기 돌잔치상에 붉은 팥고물을 묻힌 수수경단을 올리는 것은 붉은색을 싫어하는 액신을 막기 위함이고, 한국에서만 발달한 고배상(높이 쌓아 올리는 상) 상차림은 조상께 최대한 경의를 표하려는 자손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는 내용들이다. 또 안동 특식 ‘헛제삿밥’은 유교 문화가 발달했던 안동 지역에서 남은 제수 음식을 이웃과 나누던 풍습에서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음식에 문화가 깃들어 있다’는 말이야 이제는 상식이다. <한국음식 오디세이>는 우리가 매일 먹는 밥, 국, 김치 등에서도  우리 문화를 살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빛난다. 그것에 한국인의 정당한 문화 코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음식을 만들고 맛보며 그 조리법과 재료, 특색을 아름다운 언어로 기록했던 우리 조상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밥, 국수, 국, 김치, 떡 등 한식을 종류별로 나누어 문화적 의미를 들려준다.
이 책은 음식을 ‘눈으로 먹고 코로 먹고 입으로 먹고 마음으로 먹는 것’으로 바라본 한국 음식의 깊은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밥, 국, 김치만으로 식사를 해도 마음으로 먹어야 함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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