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터져도 민심은 꼼짝마?
  • 프랑스 파리·최정민 통신원 ()
  • 승인 2007.12.24 1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와 한국, 대선 ‘닮은꼴’ 민생 택한 국민들, ‘불도저’ 후보에 표몰이

BBK 파동에도 꿈쩍 않았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지지율이 한국의 이야기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2006년 5월 프랑스 대선을 1년여 남겼던 시점 르몽드의 이브 마리 기자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당시 르몽드는 클리어스트림 스캔들로 분주했다. ‘클리어스트림’ 스캔들은 빌팽 전 총리가 지난 2004년 외무장관 시절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인 사르코지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사르코지가 타이완과의 프리기트 함 거래 과정에서 불법으로 중개료를 금융기관인 클리어스트림의 비밀 계좌에 보관했다는 허위 문서를 문제 삼은 사건이다. 연이은 증언과 폭로전으로 언론은 숨가쁘게 움직였지만 여론은 조용했다.
“너희 프랑스 사람들은 왜 이번 스캔들에 그렇게 관심이 없느냐?”라고 이브 마리 기자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나도 모르겠다”였다. 이 대형 사건은 그해 국민적 관심을 얻지 못했다. 당시 무가 저널인 <20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리어스트림 스캔들의 보도가 한창 나올 때에도 프랑스 국민들의 첫 번째 관심과 근심은 ‘고유가’였다. 그만큼 정치 권력형 비리 스캔들보다 민생 문제가 주요 이슈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한 클리어스트림의 몸통이기도 했으며 세계 최초의 초대형 여객기 A380을 생산했던 EADS의 경우에도 최고 경영자가 A380의 납품일이 지연되는 것을 미리 알고 주식 폭락 직전에 주식을 매각했다는 의혹에 빠졌으나 역시 국민적 관심을 얻지 못했다.

‘소비자 구매력’이 대선 최대 화두

당시 우파 집권 여당의 당수이자 후보였던 사르코지가 바로 지금 프랑스 대통령이다. 당시 선거 때에 줄기차게 역설한 경제 개혁을 지금 말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정부의 첫 목표로 공공연히 거론되는 것은 소비자 구매력을 올리는 방안이다. 그것은 지난 대선의 막바지에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인이며 파리에 거주하는 한 여성 소설가는 대선 전 TV 정치 프로그램에서 “극좌에서 극우까지 모든 후보들이 똑같이, 한결같이 말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소비자 구매력이다. 프랑스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나에게 거의 충격이다”라고 말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 주재 각국 특파원들은 대선 풍경을 그린 글을 모아 책으로 낸 뒤에 밝힌 소감에서도 “세계에 어떤 비전이나 미래를 제시하던 프랑스의 모습을, 지난 대선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사르코지가 지난 죠스팽 정부에서 어렵게 통과시켰던 주 35시간 노동제에 대해 메스를 대겠다고 한 것은 오래된 일이었다. 그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개혁을 줄기차게 주장하며 “더 일하고 더 벌자”라고 외쳤고, 그의 측근들은 사회당의 반대를 “자선을 베풀려면 일단 부유해야 한다”라는 주장으로 물리쳤다. 당시 상대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은 자신이 내놓은 최저 임금 1천5백 유로 공약에 대해 한 시민이 “최저 임금이 오르는 만큼 물가도 오를 것 아닌가”라고 질문하자 적절한 답변을 하지 못해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사르코지가 대선을 겨냥하기 시작한 이후 자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한 단어는 바로 ‘단절’이었다. 그것은 과거의 정치적 행보와의 단절,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 프랑스식 모델과의 단절을 말한다. 이러한 차별화 시도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시라크와 불편하게 지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시라크의 견제는 도리어 사르코지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우파의 어느 누구도 건드리려고 하지 않는, 다시 말해 잘해야 본전인 난제였던 이민자 문제에서 경제 부문의 개혁까지 사르코지의 몫으로 떨어졌고, 그는 그때마다 정면 돌파로 승부했다.
이명박 당선자의 별명이 ‘불도저’인데, 사르코지의 추진력 또한 그에 못지않다. 재정부장관 시절 취임 다음날 대형 유통 업체의 사장들을 불러 모아 가격 인하를 받아내고, 치안 불안 지역을 직접 찾아가 쓸어버리겠다는 극언 또한 서슴지 않았다. 뤽페리 교육부장관이 교육 개혁으로 고전하자 직접 관여해 이해 당사자들과 담판을 짓기도 했다.

 

사르코지, 추진력·화합의 정치 돋보여

내각 장관 시절부터 그를 동행한 기자들은 “사르코지는 한 가지 문제를 던져놓고 관계자들과 언론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해결책을 풀어놓고 나면 이미 다른 문제로 넘어가 있다”라고 털어놓는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리비아에 포로로 잡혀 있던 간호사 구출에서 어부들의 파업 시위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참견하는 통에 ‘조로’로 풍자되었고, 내각의 수장이었던 프랑스와 피용 총리는 허수아비라는 빈축을 들어야 했다.
이러한 추진력과 개혁의 의지를 믿고 프랑스 국민들이 사르코지에게 신뢰를 준 것은 무엇보다도 취임 전 그가 거쳤던 화려한 정부 각료로서의 경험 때문이다. 상대 후보였던 세골렌이 가족부장관 정도밖에 맡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취약점이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업인으로서의 경력과 서울시장으로서의 성과를 자랑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같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사르코지는 시어머니 같았던 시라크의 숱한 견제를 견뎌내며 나름으로 정치력도 갖추었다. 사르코지는 후보 지명 후 기존 시라크 진영의 인사들을 하나씩 포섭해 당선 후 내각에 두루 기용하는 화합을 이끌어냈다. 심지어 좌파의 베르나르 큐슈네르를 외무부장관에 기용하는 등 폭넓은 인사를 단행했다. 지금은 저명한 지식인이자 경제학자이며 미테랑 정부 때 경제 고문이었던 쟈크 아딸리를 개혁위원회 수장에 앉히고 자문을 구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역량은 그가 시라크와 숱하게 마찰하면서 살아남은 정치적 지혜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이 당내 갈등을 무마하고 대립의 골이 깊을 대로 깊어진 다른 당과의 관계를 사르코지와 같은 화합의 정치로 원만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