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수입차 “없어서 못 팔아요”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01.0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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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물량 달리자 비공식 루트로 들여오기도…중고차 시장도 활성화될 듯

 
수입차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 국내 신차 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수로는 5%이지만 금액으로는 20%에 육박한다. 시장이 커지다 보니 비싼 가격에 대한 저항도 생기고, 이 틈을 노리고 병행 수입업체가 물량 공세를 펴는가 하면, 수입 중고차 시장도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성장통을 앓고 있는 국내 수입차 업계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
프리미엄카의 대명사인 벤츠도 최근 국내 물량이 달릴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벤츠는 ‘독일 내에서만 생산한다(Made in Germany)’는 글로벌 전략 아래 최상급 차인 뉴S클래스를 2006년 하반기부터 세계 시장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벤츠는 수요 대비  공급 수량이 부족해 국가별·딜러별로 수량을 할당했다. 한국 시장은 구 모델 판매량을 기준으로 할당되었는데,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 영향으로 갈 곳 없는 시중 자금의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뉴S클래스와 같은 고급 수입차에 수요가 집중되었다.
국내에서 벤츠를 수입하는 국내 병행 수입차 판매업자(그레이 임포터)들의 제품 조달처는 미국이나 일본이다. 특히 미국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서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늘고 있다. 애초에 미국 지역에 공급되는 벤츠의 가격은 유럽이나 일본 쪽으로 가는 벤츠보다 싼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각 주의 공식 딜러들로부터 판매 할당 여유 범위 내에서 차를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 동부에서 차를 구매하기도 한다. 이 경우 동부 지역의 벤츠는 철도로 미국 서부의 보세 창고나 선적 비용이 싼 창구로 모이게 되는데, 로스앤젤레스 항을 비롯한 세 군데의 미국 서부 물류 기지를 거쳐서 한국으로 운송된다.
벤츠는 미국에 뿌려진 물량까지 수입해 올 정도로 최근 2년간 병행 수입차 시장의 최대 인기 브랜드로 떠올랐다. 벤츠의 비공식 판매량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의 자동차 금융 회사인 현대캐피탈의 한 관계자는 “캐피탈 회사들의 운용 리스 상품 판매 실적치를 근거로 봤을 때 국내 공식 벤츠 판매 수치의 2.5배가량이 병행 수입 시장에서 팔렸다”라고 추정했다. 벤츠의 공식 딜러 관계자도 “벤츠 병행 수입 시장 규모가 공식 시장보다 1.5배 정도 된다”라고 언급할 정도이다. 지난 연말까지 벤츠 코리아를 통해 총 5천5백 대 정도가 판매됨에 따라 2007년 국내에서의 총 판매랑은 1만4천~1만9천 대로 추정된다.
이렇듯 인기 차종의 공식 공급 물량이 달리자 일부 유명 수입차 업체의 공식 딜러 영업 사원들 중에는 계약 후 차량 인도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신들이 직접 병행 수입차 업체로부터 차를 공급받아 고객에게 판매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수입차 업계 및 병행 수입차 업계에서는 “아우디를 제외한 거의 모든 브랜드가 간헐적으로 병행 수입 업체의 차를 사서 고객에게 판매한다”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을 정도이다. 
병행 수입차 시장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각종 편법의 온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소규모 병행 수입 판매상들이 공동 투자해 설립한 일부 대형 병행 수입차 업체는 판매상들이 해외 거래 딜러들로부터 할당량을 늘리기 위한 계산에서 등장했다고 한다. 이 중 일부 병행 수입차 업체는 세금 포탈 등 편법 영업 활동도 불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차의 미국 현지 판매 가격이 10만 달러이면, 현지에서 10만 달러 이하의 가격으로 서류를 작성하고 국내 반입 후 서류상 가격으로 차량을 등록하면 관련 세금 34%는 실제 판매가의 차액만큼 적게 납부한다. 서류상 가격이 낮을수록 세금을 적게 내기 때문에 공식 수입가를 낮춰 잡는 것이다.
고객이 리스 조건으로 이런 수입차를 사는 경우는 리스 회사가 서류상의 가격으로 병행 수입차 업체로부터 차를 사고, 리스 고객은 미국 현지에서의 실제 구매 가격과 병행 수입차 업체가 리스 회사에 판매한 가격의 차액만큼을 병행 수입차 업체에게 현금으로 낸다. 한 병행 수입차 업체의 영업 담당자는 “프리미엄 카의 경우 스폰서의 도움을 받아 차를 구매하는 고객들은 차액만큼을 실제 스폰서로부터 현찰로 받기도 한다”라면서 병행 수입차 구매 과정이 비자금의 조성 통로로도 이용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자동차 금융 시장의 상품 판매 패턴도 수입 신차의 판매를 촉진한다. 병행 수입차 업체들은 고객들에게 중고 수입차보다는 가급적 신제품 수입차를 권한다. 신차는 고객들이 캐피탈 회사의 운용 리스 이용이 가능하나 중고차는 금융 리스 상품만 이용할 수 있다. 금융 리스는 잔여 대금에 대한 이자가 높고, 대출 승인 심사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배경 때문에 예전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중고 수입차를 구입하던 고객들도 이제는 신차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병행 수입차 구매하면서 비자금 조성하기도

해외에서 전시 및 시승용으로 쓰이던 차를 국내로 수입하는 차를 ‘중고(수입) 신차’ 또는 ‘살짝 중고차’라고 일컫기도 한다. 국내 통관 과정에서는 중고차로 분류된다. 국내 판매 가격은 현지 공장도 가격에 국내외 물류비 및 제세금, 통관 비용과 딜러 마진이 포함된다. 완성차 업체 출신으로 중고차 수출을 하는 김 아무개씨는 “벤츠, BMW, 아우디 등 프리미엄급 차 중 고객 시승차, 전시용 차들을 한국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알아봐달라는 현지 거래선의 요청이 있다”라고 언급해 해외에서도 한국의 병행 수입 신차 및 중고차 시장에 관심이 있음을 시사해준다.
벤츠, BMW 등 유명 유럽산 중고차의 한국행 저수지 노릇을 하는 곳은 일본 수입 중고차 시장이다. 국내 업체들 중에는 일본 내 47개 자동차 경매 시장에 한국에서 원격 입찰에 참여한 다음 낙찰받아 국내로 들여오는 전문 업체들도 등장하고 있다. 신차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 이들 업체는 서브 딜러까지 두고 있을 정도이다.
공식 수입차이든 비공식 수입차이든 차를 운행하다 보면 부품이 필요해진다. 운행 대수가 늘수록 유지·보수 시장은 커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수입차 부품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각 브랜드의 보증 기간이 끝난 차들에 대해 적용하는 부품 판매 단가는 보증 기간에 제공되는 가격에 비해 훨씬 높다. 따라서 이러한 차들을 전문으로 하는 정비 공장이 있으며, 이들 공장에 순정 부품을 공급하는 부품상들도 늘어나고 있다.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병행 수입차 전문 정비 공장의 숙련된 기술자들이 해외 현지에 직접 부품 오더를 할 능력이 되지 않아, 완성차나 무역 상사의 수출입 부서에 근무했던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해외 인맥을 활용해 만든 부품 전문상들로부터 공급받고 있다”라고 실태를 전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서유럽 및 동유럽 각지로부터 부품을 공급받고 있는데, AS(보수) 시장용 부품을 장악한 독일 현지인들이 국내 부품 사업자들과 제휴해 국내에 공급을 확대하는 경우도 있다. 독일은 어떤 부품이든 특정 메이커나 업체가 독점할 수 없도록 규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현지에서의 순정 부품 조달은 항상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업성 측면에서 병행 수입차 부품 사업이 신차나 중고차 판매보다도 효율성 면에서 더 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금맥이 추가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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