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들었다 놓았다 갈팡질팡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 승인 2008.01.0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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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신당, 손학규 당 대표 추대 놓고 경선·외부영입 등 계파 간 갈등으로 내홍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또 다시 산에 올랐다. 손 전 지사는 지난해 12월31일 부인 이윤영씨와 함께 서울을 떠나 강원도 양양에서 신년 일출을 본 후 낙산사를 찾아 주지인 정념 스님을 만났다. 그는 서울을 떠나기 전 측근들에게 “2~3일 쉬며 머리를 정리하겠다”라고 말했다.
손 전 지사의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기에 그는 서울을 떠나 조용한 산사에서 생각을 정리하고는 했다. 지난해 3월에도 낙산사를 찾았다. 닷새 만에 상경한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탈당’을 전격 선언했다.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중순에도 칩거에 들어간 적이 있다. 경선 과정의 구태를 비판하면서 TV토론회에도 불참했던 손 전 지사는 천주교 순교 성지를 여러 곳 둘러본 후 홀연히 지방으로 떠났다. 결국 경선 복귀를 선택했지만 정치 행로를 놓고 상당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는 당 대표 추대론과 비토론 공방이 그를 산사로 이끈 것으로 보인다.
대선에서 참패한 후 ‘통합신당호’는 4월에 치러질 총선을 이끌 새로운 ‘선장’을 구하지 못한 채 난항을 거듭해 왔다. 여러 인사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손 전 지사 이름이 우선 거론되었다. 특히 수도권 초·재선 및 386 의원들이 ‘손학규 추대론’을 주도했다.
몇 가지 근거가 제시되었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과 그 정부의 ‘실정’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주장이다. 노대통령과 수차례 대립각을 세워온 손 전 지사는 참여정부 기간 당·정·청 어느 곳에서도 특별한 역할을 맡지 않았다. 당 유력 정치인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책임론에 얽혀 있는 것과 대비된다.
다음으로 ‘호남당’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라도 수도권 출신인 손 전 지사가 당 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동영 후보를 앞세운 대선에서 통합신당은 호남에서만 압승을 거두어 사실상 지역 정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영남권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총선 패배에 대한 위기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책임 벗어난 손학규 추대해야”

합의 추대 형식이 갖는 이점도 거론된다. 당내 계파 간 대립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전당대회를 통해 경선이 치러질 경우 당 쇄신보다 책임 공방에 휘말려 갈등만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내 의원 97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70% 이상이 경선보다 합의 추대로 당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한다.
당 쇄신위원회(위원장 김호진)는 지난 1월3일 이를 토대로 최종적인 쇄신안을 마련했다. 당 대표를 합의 추대하고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확립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당의 조기 안정화와 강력한 리더십 창출을 위해서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새 지도부 구성 원칙으로 당·정·청 관계에서 큰 권한을 행사했던 인사들 중 책임이 무거운 인사와 비리·구태 등 구시대적 행태로 국민 지탄을 받은 인사는 제외하기로 했다. 또한 당 쇄신을 위해 현역 의원의 기득권이나 계파 간 이해관계를 철저히 배제하는 혁명적 수준의 공천을 실시하기로 했다.
순조롭게 진행될 듯이 보였던 ‘손학규 합의 추대’는 정대철 상임고문과 김한길 의원을 중심으로 한 ‘경선파’가 강력하게 문제 제기를 하면서 발목이 잡혔다.
대표 경선 출마의사를 밝힌 정고문은 기자회견을 통해 “합의 추대론은 위기를 덮고 가자는 미봉책일 뿐이다. 경선만이 당의 유일한 비상구이다”라고 강조했다. 김한길 의원도 합의 추대 방식이 아닌 경선을 통한 당 대표 선출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쇄신파 초선 의원 15명이 모임을 갖고 “손학규 합의 추대는 안 된다”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공방은 가열되었다. 이들은 “소수 계파의 수장이 다수 계파를 이끄는 수장이 된다면 중진들과 각 계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지적하며 ‘외부 인사 영입’을 제안했다.
모임을 주도한 문병호 의원은 “손학규 추대론은 결국 계파별로 나누어 먹는 식의 현실 안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비판해온 ‘회전문 인사’와 다를 바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손 전 지사의 정체성 논란과 관련해 “모임 차원에서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쇄신에 적합한 분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추대에 반대하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점 역시 ‘걸림돌’로 지적되었다. 손 전 지사가 통합신당의 당 대표가 될 경우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보수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이회창 전 총재 등 주요 정당의 ‘간판’이 모두 한나라당 출신이 된다. “차별성이 있겠느냐”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문의원은 또 “본인 스스로 안 받을 것이다. 손 전 지사가 ‘내 손에 피를 묻히겠으니 전권을 달라’라고 하면 한번 해볼 수도 있겠지만 대권에 도전한 현실 정치인이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그는 “손 전 지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상처를 입히지 않고 아껴두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는 외부 인사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한승헌 전 감사원장, 박원순 변호사 등이다. 문의원은 “개인적인 부탁보다는 ‘원로 7인’에게 추천을 요청할 계획이다. 현재 여러 방면으로 영입을 추진 중이다. 개혁 세력이 궤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어 힘을 보태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상황이 심각해 몇 분은 적극적이다”라고 전했다.
‘손학규 추대론’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은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통합신당이 현재 처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선 참패 이후 당을 추슬러 총선을 준비해야 할 시점에 구심점조차 찾지 못하는 ‘대안 부재’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지도부가 대선 민심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이다’라는 지적에서부터 ‘이미 끝난 총선을 두고 왜 옥신각신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손 전 지사 추대 움직임도 ‘사분오열 직전인 당을 그나마 이끌어나갈 수 있는 적임자’라는 측면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측 “구원투수 맡으라며 경선?” 떨떠름

시민사회 세력으로 당 쇄신위원회에 참여한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손학규 추대론을 협의한 적은 없다”라고 밝힌 후, “외부에서 존경받는 분이 들어와 역할을 해주면 좋겠지만 외부만 쳐다보다가 (영입이) 가능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인재 영입이 중요하지만 그 가능성을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 계파별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수도권 초·재선, 386 그룹은 손 전 지사를 합의 추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김한길 그룹은 경선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 초선 그룹 15인은 외부 인사 영입에 우선 나서고 여의치 않을 경우 경선을 치르자는 입장이다.
친노 그룹 역시 외부 인사 영입에 우선 순위를 두는 분위기이다. 김근태 그룹과 시민사회 그룹은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다 계파 내에서도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어 혼돈 양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손 전 지사 측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추대론이 논란이 되는 상황이 내심 불쾌하다는 분위기이다. 경선에서 손 전 지사의 대변인을 지낸 우상호 의원은 “당이 어려우니까 구원투수를 맡으라는 것인데 여기서도 경선을 하자는 사람들이 있으니 당황스럽다”라고 밝혔다. 우의원은 “지금 대표를 맡아서 정치적으로 유리할 것이 없다. 다만 부탁을 해오면 거절하기가 어려워 고민하고 있는데 이조차 당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선으로 가게 되면 지역에서는 사실상 총선 예비 후보 간 대리전이 펼쳐질 것이다. 중앙은 중앙대로 책임 공방이 치열해질 텐데 국민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과연 당이 쇄신한다고 생각을 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같은 반응은 손 전 지사가 범여권에 합류한 후 경선을 치르면서 쌓였던 ‘불만’이 더해진 것으로도 여겨진다. 손 전 지사를 영입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유력 인사들은 정작 그가 경선에 참여하자 과거 전력과 정체성 등을 문제 삼으며 ‘집단 공격’을 퍼부었다. 결과적으로 ‘치어리더 역할’에 머물렀다는 불만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당 대표로 합의 추대되어야 하고, 또 강력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손 전 지사측의 입장으로 보인다. 우의원은 “경선은 원래 할 생각이 없었다”라고 일축한 후, 초선 그룹의 ‘손학규 불가론’에 대해 “대안 없이 반대하는 것은 열린우리당 때부터 문제였다.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우의원은 또 “참여하겠다는 분이 없는데도 외부 인사를 영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통합신당 창당 당시 현재 거론되는 인사들에게 지도부 참여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던 점을 상기시키며 “외부 인사 영입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을 나와 범여권의 대권 주자로 나선 손학규 전 지사가 이번에는 어떤 선택과 역할을 하게 될까. 또 ‘합의 추대’를 놓고 내홍을 앓은 통합신당이 어떤 형태로 당 체제를 정비해 총선을 준비할까. 이 과정에서 계파 간 갈등이 폭발해 정계 개편의 소용돌이가 일어날까. 정치권의 관심이 통합신당의 내부 변화에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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